일러스트 김대중 |
“나이가 들어도 나잇값을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앉기만 하면 자기 자랑 아니면 남 얘기…. 만나면 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죠. 듣고 싶지 않아도 계속 듣고 있자니 제 정신건강이 갉아먹히는 기분입니다.”
최근 직장인 심리상담 현장에서 놀랍도록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나이 드신 분들을 응대하는 직업이 늘어난 요즘 시대의 단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나요? 대화의 물꼬만 트면 과거의 무용담, 집안 자랑, 그리고 끊임없는 남 험담으로 이어지는 사람들…. 그들은 왜 그럴까요? 정말로 “예전엔 잘나갔던” 시절에 머물러 있어서일까요? 아니면 타인의 허물만 크게 보이는 예민한 성격 탓일까요?
이러한 행동은 단순히 개인의 성격 문제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심리적 방어 기제의 산물이죠.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회적 역할과 관계망이 줄어들 때 더욱 두드러지곤 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 욕구가 있습니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강조했듯 ‘타인에게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심리 욕구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위치가 낮아지고, 직장이나 역할에서 인정받을 기회가 줄어들면 이 욕구는 종종 채워지지 못합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성취를 꺼내놓거나, 타인을 깎아내려 상대적으로 자신을 높이려는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확증 편향도 강하게 작동합니다. 과거의 성공은 과장해 기억하고, 실패나 부족한 부분은 축소하거나 타인 탓으로 돌립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더욱 벌어지고, 대화에서도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표출하게 되죠.
타인 험담은 종종 낮은 자존감을 보완하려는 시도로 나타납니다.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이를 ‘열등감 콤플렉스’라고 설명했습니다. 열등감을 감추려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타인의 약점을 들춰내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려 합니다. 하지만 그 우월감은 일시적일 뿐 관계는 점차 피로해지고 고립만 깊어질 뿐입니다.
이런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기 어렵다면 두 가지 원칙을 기억하세요. 첫째, 맞장구치지 마세요. 험담에 동의하는 순간, 대화는 끝없이 길어집니다. 둘째, 마음의 거리를 두세요. “이 사람은 사실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거구나” 하고 바라보면 감정적으로 덜 휘둘리게 됩니다. 공감은 하되, 그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휘말리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돌아보는 것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관계가 줄어들고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세상으로부터 점차 덜 인정받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더 큰 목소리로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존중받는 사람은 과거 이야기를 반복하기보다 현재에 집중하며 상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나잇값이란 무엇일까요? 자기 자랑이나 남 험담으로 존재감을 증명하기보다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마음가짐 아닐까요?
용인정신병원 스마트낮병원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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