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진짜 마녀는 누구?”…22년간 이어온 ‘위키드’의 질문

한겨레
원문보기

“진짜 마녀는 누구?”…22년간 이어온 ‘위키드’의 질문

서울맑음 / -3.9 °
뮤지컬 ‘위키드’의 명넘버 ‘디파잉 그래비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뮤지컬 ‘위키드’의 명넘버 ‘디파잉 그래비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진짜 마녀는 누구일까?”



뮤지컬 ‘위키드’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초록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마녀’로 낙인찍힌 소녀의 이야기다. 이 무대에서 기존의 선악 구도는 해체되고,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온 정의는 흔들린다. ‘위키드’는 판타지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현실보다 날카로운 통찰이 살아 숨 쉰다.



2003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20년 넘게 7500회 공연을 하며 7천만명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토니상, 그래미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쓴 이 작품은 단순한 흥행작을 넘어섰다. 시대를 관통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린 질문과 공감을 품은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13년 만의 오리지널팀 내한으로 개막한 ‘위키드’는 2021년 라이선스 공연으로 삼연을 마치며 한국에서도 꾸준히 사랑받아온 작품이다. 지난해 동명 영화 개봉으로 대중에게 이름이 더욱 알려졌다.



뮤지컬 ‘위키드’의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뮤지컬 ‘위키드’의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오즈의 마법사’를 전복적으로 재해석한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가 원작인 작품은 ‘서쪽의 나쁜 마녀’로 불린 엘파바의 삶을 중심에 놓고, 그가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다. 녹색 피부로 인해 차별받고 소외된 엘파바의 다른 한 축은 동급생이자 친구인 글린다로, 그는 아름다운 외모와 인기라는 특권 속에서 정체성과 윤리적 딜레마에 부딪힌다.



오랜 기간 사랑받아온 이유로 눈을 휘둥그레하게 하는 압도적인 무대 연출을 빼놓을 수 없다. 천장에서 내려온 거대한 ‘타임 드래곤’은 공연의 상징이자 오프닝 장면의 장관을 이룬다. 명넘버 ‘디파잉 그래비티’ 장면은 절로 관객의 탄성을 터지게 하는 무대 연출의 기술적 정수를 보여준다. 총 350벌에 이르는 의상과 엘이디(LED)를 활용한 시각 효과는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오즈 세계를 완성한다.



뮤지컬 ‘위키드’의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뮤지컬 ‘위키드’의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그렇다고 단순한 볼거리로만 그치지 않는다. ‘위키드’는 외모, 출신, 권력 유무에 따른 차별과 억압, 그리고 그로 인해 왜곡된 진실을 이야기한다. 엘파바는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기에 배척당하며, 그를 향한 편견은 점점 공포와 혐오로 확대된다. 이는 현실 사회에서 소수자와 이단자를 대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위키드’는 묻는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진실은 과연 누구의 편인가? 겉모습이나 권위에 따라 정의가 결정되는 사회에서, ‘위키드’는 우리가 외면한 진실과 마주하도록 만든다. 현실에서도 수많은 엘파바들이 존재하며, 그들에 대한 편견을 거두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마법’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뮤지컬 ‘위키드’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뮤지컬 ‘위키드’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위키드’는 단순히 한편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은 단지 엘파바의 노래를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가 품었던 용기와 외침이 우리 사회에 어떤 울림을 남기는지를 곱씹게 된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찬란히 빛나며, 세대와 경계를 넘어 지속적으로 회자되는 것이다.



공연이 영어로 진행되는 까닭에 마치 실제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 앉아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오리지널 연출진과 전세계 투어 배우들이 이끄는 무대는 캐릭터의 내면과 사회적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글린다 역은 사랑스러운 눈망울과 청아한 보이스로 ‘글린다의 정석’이라 불리는 코트니 몬스마, 엘파바 역은 오디션에서 명넘버 ‘디파잉 그래비티’를 부르며 곧장 주역으로 발탁된 셰리든 애덤스가 맡았다. 애덤스는 400회 이상 공연을 소화하며 엘파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애덤스는 현재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다른 배우들이 엘파바를 번갈아 연기하고 있다. 이 밖에도 마법사(사이먼 버크), 모리블 학장(제니퍼 불레틱) 등 탄탄한 내공을 지닌 브로드웨이 배우들이 무대의 중심을 잡는다.



뮤지컬 ‘위키드’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뮤지컬 ‘위키드’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뮤지컬 평론가 지혜원 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우리가 아는 진실이 정말로 진실일까라는 문제의식과 함께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우정 이야기가 지역과 세대를 아우른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며 “오는 11월 영화 속편 개봉과 맞물려 향후 국내 라이선스 공연도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원어 공연 특성상 자막을 따라가야 한다는 점은 몰입도를 다소 떨어뜨리는 요소다. 최고 19만원에 달하는 입장료는 관객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화려한 감동만큼이나 현실적 진입 장벽도 존재한다. 서울 공연은 10월26일까지 이어지며, 이후 부산과 대구에서도 순차적으로 막을 올릴 예정이다.



뮤지컬 ‘위키드’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뮤지컬 ‘위키드’ 공연 장면. ⓒ제프 버즈비(Jeff Busby)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