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섬나라가 쏘아 올린 '각국 기후 책임' 판단
ICJ "기후변화, 지구 위협하는 존재론적 문제"
탄소 감축 목표 미이행 국가에 '배상 책임' 언급
"韓 탄소 배출량 OECD 5위, 감축 책임 크다"
유엔 최고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모든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은 지구온난화를 '1.5도'(산업화 이전 대비) 이하로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할 의무가 있으며, 이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국제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80년 ICJ 역사상 5번째로 만장일치 채택된 '권고적 의견'으로, 향후 글로벌 기후대응 거버넌스와 각국 기후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ICJ는 23일(현지시간) 오후 네덜란드 헤이그 법정에서 이러한 내용의 의견을 발표했다. ICJ는 기후위기에 대해 "모든 생명과 지구 자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론적 문제"라면서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당사국에 엄격한 의무를 부과하며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다.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은 판결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나, 각국 법원과 국제법 재판소의 법적 판단, 국제사회 외교 협상에서 중요하게 고려된다.
국제사회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에 따른 지구온난화 심각성을 인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왔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맺고 교토의정서(1997년)와 파리협정(2015년) 채택을 통해, 현재는 전 세계 190여 개 국가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지키도록 돼 있다. 한국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한 상태다.
ICJ "기후변화, 지구 위협하는 존재론적 문제"
탄소 감축 목표 미이행 국가에 '배상 책임' 언급
"韓 탄소 배출량 OECD 5위, 감축 책임 크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관들이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ICJ는 '국제법상 국가들의 기후변화 대응 의무'에 관한 첫 번째 권고적 의견을 발표했다. 헤이그=AFP 연합뉴스 |
"재판부는 인류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서 우리의 습관과 편의, 생활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결론을 맺는다. 법원(국제사법재판소)의 역할이 법적 명확성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실질적인 (기후)행동의 주요 책임은 각국 정부와 민간 주체들에게 있다. 이들은 공동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본질적 전환을 위해, 자신들의 정책을 재평가하고 개혁해야 한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3일 발표한 '국제법상 국가의 기후변화 대응 의무' 권고적 의견 중
유엔 최고 사법기관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모든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은 지구온난화를 '1.5도'(산업화 이전 대비) 이하로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할 의무가 있으며, 이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국제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80년 ICJ 역사상 5번째로 만장일치 채택된 '권고적 의견'으로, 향후 글로벌 기후대응 거버넌스와 각국 기후소송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ICJ는 23일(현지시간) 오후 네덜란드 헤이그 법정에서 이러한 내용의 의견을 발표했다. ICJ는 기후위기에 대해 "모든 생명과 지구 자체의 건강을 위협하는 존재론적 문제"라면서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당사국에 엄격한 의무를 부과하며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했다. 권고적 의견(Advisory Opinion)은 판결과 달리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나, 각국 법원과 국제법 재판소의 법적 판단, 국제사회 외교 협상에서 중요하게 고려된다.
남태평양 오세아니아의 섬나라 '바누아투'의 랄프 레게나바누(가운데) 기후변화부 장관이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국제사법재판소(ICJ) 회의를 앞두고 열린 시위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위대가 '법원이 말했다-정부들은 당장 행동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이날 ICJ 재판부는 유엔 기후변화 조약에 비준한 당사국들은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로부터 기후 시스템과 다른 환경 요소를 보호할 국제법적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헤이그=AFP 연합뉴스 |
기후대응 안 하면 배상 책임 물 수도
국제사회는 지난 30여 년 동안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에 따른 지구온난화 심각성을 인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왔다. 1992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을 맺고 교토의정서(1997년)와 파리협정(2015년) 채택을 통해, 현재는 전 세계 190여 개 국가가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자발적으로 결정하고 지키도록 돼 있다. 한국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국제 사회에 약속한 상태다.
ICJ는 특정 국가가 NDC 이행 노력을 하지 않는 등 국제법상 의무를 어기고 다른 국가에 피해를 입힐 경우, 피해국에 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도 밝혔다. 다만 국가 간 배상 조건을 '불법 행위와 피해 사이에 충분히 직접적이고 확실한 인과관계가 제시되는 경우'로 명시했다. ICJ에 의한 국가 간 손해배상 재판은 흔한 일은 아니지만, 가장 최근에는 2022년 '콩고 분쟁'을 일으킨 우간다에 3억2,500만 달러(약 4,400억 원)를 민주콩고에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ICJ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참여"
지난 19일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 포트빌라에 위치한 주택들이 사이클론과 지진으로 인해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일부 침수된 채로 방치돼 있다. 인구 약 32만 명의 작은 섬나라인 바누아투는 태풍과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나라로, 이번 ICJ 권고적 의견 절차를 처음 제안한 국가다. 포트빌라=AP |
이번 발표는 2023년 4월 유엔 총회가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ICJ에 의뢰한 결과로,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 의무'를 명확히 밝힌 첫 사례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공개 변론엔 한국을 비롯한 96개 국가와 11개 국제기구가 참여했는데, 이는 1945년 설립된 ICJ 및 전신 상설국제사법재판소(1922년 설립)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참여"였다. 그만큼 기후변화가 전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과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내 기후변화 싱크탱크인 플랜 1.5는 환영 논평을 내고 "ICJ는 각국 온실가스 감축 책임에 관한 핵심 원칙으로 '배출 책임이 크고 감축 역량이 강한 나라가 전지구적 감축 노력에서 더 많은 몫을 기여해야 한다'는 파리협정 원칙을 인용했다"면서 "한국은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5위, 1990년 이후 누적 배출량 전 세계 15위로 온실가스 배출 책임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플랜 1.5는 오는 9월까지 유엔에 제출해야 할 2035 NDC 목표 역시 국제법상 의무에 부합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