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상장기업 300곳 설문조사
77% “상법 추가 개정시 기업성장 위축”
“중견→대기업 성장 메커니즘 왜곡될 것”
74%,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경영 위협”
77% “상법 추가 개정시 기업성장 위축”
“중견→대기업 성장 메커니즘 왜곡될 것”
74%, 집중투표제 의무화에 “경영 위협”
서울 시내 밀집해 있는 주요 기업의 건물 모습 [헤럴드 DB] |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상법 추가 개정이 현실화할 시 기업 성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또한 기업들은 상법 추가 개정에 앞서 광범위한 배임죄 적용 대상 등 1차 상법 개정안 보완부터 시급하다고 말했다.
24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발표한 300개 상장기업 대상 ‘상법개정에 따른 기업 영향 및 개선방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장기업 76.7%는 2차 상법 개정안이 자산 2조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회귀한 기업은 2023년 말 기준 574개사에 달했다. 반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301개사에 불과했다. 대한상의는 “2차 상법이 개정되면 ‘중견→대기업’ 성장 메커니즘에도 심각한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 확대를 동시 개정하는 경우 경영권 위협 가능성에 대해선 상장기업 74.0%가 ‘있다’고 답했다. 이중 38.6%는 ‘경영권 위협 우려는 낮지만 가능성 자체는 존재’, 28.7%는 ‘주주 구성상 경영권 위협 가능성 높음’으로, 6.7%는 ‘시뮬레이션 결과 실제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수 있다고 판단’으로 답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위원을 개정안대로 현행 1명에서 2명으로 확대할 경우 상장기업 39.8%는 ‘외부세력 추천 인사가 감사위원회를 주도해 이사회 견제가 심화’된다고 답했다. 이밖에 ‘감사위원 후보 확보 및 검증 부담 증가(37.9%)’, ‘감사위원이 이사 겸직하고 있어 이사회 내 의사결정 방해·지연(16.5%)’, ‘경쟁기업 추천 감사위원의 기업기밀 유출 가능성 확대(5.8%) 등의 답변이 나왔다.
여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에 담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모두 ‘주주친화’ 정책의 일환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이를 두고 경영권에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란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이사 2명 이상을 선임할 경우 주식 1주마다 선임할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한다. 소액주주가 원하는 후보의 이사회 진입을 용이하게 하자는 취지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역시 대주주가 뽑은 이사가 아닌, 대주주로부터 독립적 지위를 가진 감사위원을 선임하는 제도다. 상법 추가 개정안에는 이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늘리도록 했다.
기업들은 현재 한국 경제가 불황을 지나고 있는만큼 주주 권리 보호보다는 경영권 보장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8단체는 이날 호소문을 내고 상법 추가 개정 추진에 대해 “과도한 배당확대, 핵심자산 매각 등 해외 투기자본의 무리한 요구나 경영권 위협에 취약해질 우려를 낳고 있다”며 “경영활동 위축 등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상법 추가 개정보다는 1차 상법개정 보완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상장사 38.7%는 ‘정부의 법해석 가이드 마련’, 27.0%는 ‘배임죄 개선·경영판단 원칙 명문화’, 18.3%는 ‘하위법령 정비’가 필요하다고 각각 답했다.
상의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됨에 따라 주주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는지, 기존 판례로 인정되던 경영판단 원칙이 여전히 유효한지 등에 대해 기업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면서 “향후 주주에 의한 고소·고발 증가가 예상되는 만큼 불확실성 해소 위해 배임죄 개선 등 입법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배임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상장기업 44.3%가 ‘모호한 구성요건’을 꼽았다. 실제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손해 위험이 있거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배임 목적 없이 리스크를 감수한 경우까지 배임죄 대상이다. 이어 ‘지나친 가중처벌(20.7%)’, ‘쉬운 고소·고발 절차(18.3%)’, ‘40년 전 처벌기준(12.0%)’, ‘경쟁기업 기밀입수 위한 수단으로 배임죄 고소 악용(4.7%’ 등이 꼽혔다.
상의는 “이중 특경법 배임죄는 주요국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가중처벌 규정으로, 처벌 기준인 5억원·50억원은 40년 전 제도 도입 당시(1984년)와 동일해 시대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개정안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는 것에 대해서도 기업들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는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면 원칙적으로 3년 이내에 의사회 결의를 통해 소각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업들은 임직원 보상 수단이나, 적대적 M&A에 대응하는 방어 수단이 사라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도 17일 경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대해 “자사주를 살 사람이 앞으로 이걸 과연 사겠느냐”며 “지금까지 자사주를 쓸 수 있는 자유가 어느 정도 있었는데 이게 줄어든다는 이야기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외부 세력에 의한 경영권 공격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특히 외국과 달리 차등의결권이나 포이즌필, 황금주 등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는 우리 현실에서 자사주는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여겨지는 만큼 위기감이 더욱 크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 논의되는 집중투표제 도입과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 등이 도입될 경우를 시뮬레이션 해보면 대기업 집단 평균 이사 7.5명 중 4명 정도가 대주주가 아닌 세력에 의해 장악될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방어 수단이 자사주인데 그것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주주에게 손발을 묶고 싸우라는 것이고,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자사주를 누가 취득하겠나”고 강조했다.
경영권 위협이 현실화하는 상황은 우리 경제 성장에 있어서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이제는 경영권을 지키는 노력이 더욱 커질 것이고, 할 수 있으면 대기업 기준인 자산 2조원을 넘기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돈 들여서 키우면 남이 가져갈 텐데 누가 애써서 회사를 키우겠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작은 기업만 많아질 것”이라며 “사이즈가 문제인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박혜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