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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계엄과 남영동 대공분실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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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의 계엄과 남영동 대공분실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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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지난 6월10일 개관했다. 기자간담회가 열린 지난 5월20일 오전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구관(대공분실동) 5층 509호 조사실 모습. 이곳에서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다 숨졌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지난 6월10일 개관했다. 기자간담회가 열린 지난 5월20일 오전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구관(대공분실동) 5층 509호 조사실 모습. 이곳에서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다 숨졌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비가 내리던 지난주 금요일에 서울 용산구 남영역 인근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방문했다. 옛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이었던 이곳은 이전의 민주인권기념관을 확장해 올해 6월10일 재개관한 공간이다. 기념관 곳곳을 둘러보며, 이 땅에서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피어린 역사와 인권 탄압의 실상을 기억하고자 하는 세심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민주화와 인권 교육에 이만큼 맞춤한 장소가 더 있을까 싶었다.



최근에 출간된 김명인 비평가의 ‘두번의 계엄 사이에서: 김명인 회성록(回省錄)’과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 ‘혼모노’에 수록된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를 읽은 깊은 여운이 바로 이곳 방문을 이끈 요인이리라.



김명인의 책은 일종의 증언문학이다. 대학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는 그의 인생 여정을 다룬 이 책에서 여러 대목이 마음에 다가왔지만, 그중에서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기술자 이근안과 대면한 스토리는 백미다.



그는 이른바 무림사건으로 불리는 학생운동 과정에서 구속돼 회현동 시경 대공분실을 거쳐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온다. 김명인은 자신이 체험한 이근안의 행태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이근안은 어떻게 준비했는지 커다란 배 한알을 가져와 내가 보는 앞에서 한 손으로 그 배를 으스러뜨리면서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곳에서 “다양한 고문을 끝도 없이 견뎌야” 했던 김명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어쨌든 나는 일주일여 만에 결국 서울대 내의 ‘언더조직’을 발설했고,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그 전모를 그들에게 전부 털어놓았다.”



비록 인간성을 극한적으로 파괴하는 잔인한 폭력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 해도, 그 처절한 체험은 김명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혹독한 상처로 작용했을 테다. 김명인이 고문을 견뎠던 그 공간은 작고한 민주화 투사 김근태가 극심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번갈아 가며 받았던 곳이자 박종철이 물고문을 받다가 숨진 자리이기도 하다.



성해나의 소설 ‘구의 집’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설계한 건축가의 스토리를 다룬 작품이다.(이 건물의 설계는 건축 거장 김수근의 건축연구소에 의뢰됐다.) 이 작품에 의하면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문제적 공간은 “취조를 해도 실토하지 않는 이들이 최후로 방문하는 밀실”이다.



소설 속에서 스승 여재화의 부탁으로 남영동 대공분실 설계에 참여하게 된 구보승은 애초에 창문을 없애려고 하다가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그만 창문을 만든다. 실제로 잔악한 고문이 자행되던 남영동 대공분실 5층 창문은 추락과 탈출을 막기 위해 사람의 머리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매우 좁다. ‘구의 집’에 의해 이 건물을 만든 사람의 음험한 욕망과 의도가 선연하게 펼쳐진다.



두시간에 걸친 민주화운동기념관 전시 해설 투어를 통해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립 배경과 역사, 건물의 구조, 인권 탄압의 잔혹한 실상을 구체적으로 접했다. 그 과정에서 녹음된 실제 이근안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고, 김명인을 비롯한 당시 고문 피해자들의 자료와 기록도 보았다.



만약 지난해 12월3일 선포된 계엄이 계획대로 수행되었다면, 또 다른 비밀공간에서 고문과 인권 탄압이 자행됐을지도 모른다. 시민들의 저항과 의지로 그 위기를 통과하며 새로운 시대의 초입에 있다는 생각이 기념관을 나오며 평화로운 거리를 바라보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푸근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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