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영 기자]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각계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탄소중립과 혁신' 기획 시리즈가 '시즌4'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시즌4에서는 기후·에너지 정책 거버넌스 변화,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RE100 산업단지 조성 등 정책적 변화에 앞서 산학연 전문가들의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앞두고, 우리는 흥미로운 역설과 마주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에 의존할수록, 정작 가장 오래되고 검증된 해법들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을 돌릴수록, 역설적으로 수천 년간 인류가 축적해 온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의 가치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대 도시의 탄소중립 전략을 살펴보면, 주로 에너지 효율성 제고와 신재생 에너지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기술 중심적 접근은 분명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자연이 내재적으로 보유한 통합적 문제해결 역량이다.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각계 전문가들의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탄소중립과 혁신' 기획 시리즈가 '시즌4'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시즌4에서는 기후·에너지 정책 거버넌스 변화,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 RE100 산업단지 조성 등 정책적 변화에 앞서 산학연 전문가들의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주>
/사진=제미나이 |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앞두고, 우리는 흥미로운 역설과 마주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에 의존할수록, 정작 가장 오래되고 검증된 해법들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을 돌릴수록, 역설적으로 수천 년간 인류가 축적해 온 자연기반해법(Nature-based Solutions, NBS)의 가치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대 도시의 탄소중립 전략을 살펴보면, 주로 에너지 효율성 제고와 신재생 에너지 확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기술 중심적 접근은 분명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자연이 내재적으로 보유한 통합적 문제해결 역량이다.
자연기반해법은 탄소 격리와 순환은 물론, 홍수 조절, 열섬 현상 완화, 대기질 정화, 생물다양성 증진, 나아가 도시민의 심리적 복지 향상까지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다기능적 솔루션이다. 이는 단순한 조경 차원을 넘어서, 수천 년간 자연이 최적화해 온 생태계의 복합적 기능을 도시 환경에 체계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탄소중립 도시, 자연 속에 답이 있다
1965년 싱가포르 초대 총리 리콴유가 제시한 '정원 도시' 비전은 당시로서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열대 기후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열대우림 생태계가 가진 자연 냉각 메커니즘을 도시 설계에 적용한다면, 인공 냉방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에너지 효율적인 열대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녹지율 47%를 달성하면서도 고밀도 개발을 실현한 것은, 자연의 시스템을 기술적으로 정교하게 재해석한 결과다.
더욱 놀라운 사례는 베네수엘라 아마존의 테라 프레타(Terra Preta) 토양이다. 원주민들이 창조한 이 인공 토양은 일반 토양 대비 10배 이상의 탄소를 저장하며, 그 효과가 수백 년간 지속된다. 현대 토양과학으로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은 이 기술의 핵심은 미생물 군집의 정교한 설계에 있다.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대기로 방출되는 대신, 안정적인 형태로 토양에 고정되도록 하는 생화학적 프로세스를 구현한 것이다.
한국의 전통적 마을 숲 조성과 네덜란드의 습지 관리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단순한 환경 보전이 아니라, 자연의 물순환과 대기순환을 활용한 정교한 도시 기후 조절 시스템이었다. 마을 숲의 경우, 수종 선택부터 식재 배치까지 모든 것이 바람 패턴과 미기후 조절을 고려해 설계되었다. 네덜란드의 습지 시스템은 담수 확보와 홍수 조절을 동시에 해결하면서 생물다양성 보전과 탄소 저장 기능까지 수행하는 다기능 인프라였다.
AI, 자연의 원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내다
인공지능(AI)은 이제 이런 전통 지식의 숨겨진 패턴들을 발굴하고 있다. 기후 데이터, 토양 분석, 생태계 모델링을 통해 과거의 NBS 기법들이 왜 효과적이었는지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현대 도시 환경에 맞게 최적화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의 도심 열섬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숲 배치를 AI로 분석하고, 현재의 건물 밀도와 교통 패턴에 맞춰 재설계하는 프로젝트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접근법이 중요한 이유는 확장성과 지속가능성에 있다. 첨단 기술 기반의 탄소중립 솔루션들은 종종 높은 초기 투자비용과 복잡한 유지관리를 요구한다. 반면 잘 설계된 NBS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가 증대되고, 유지비용은 오히려 감소하는 특성을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이 일상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환경 개선 효과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물론 전통적 NBS만으로 현대 도시의 모든 탄소중립 과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산업단지의 온실가스 감축이나 대규모 에너지 시스템 전환에는 여전히 첨단 기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도시 생활 공간의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동시에 개선하는 영역에서는 NBS가 가진 잠재력이 매우 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런 전통 지식과 현대 기술의 융합 가능성이다. 사물인터넷(IoT) 센서를 활용해 도시 숲의 탄소 흡수량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빅데이터 분석으로 최적의 녹지 배치를 설계하며, AI를 통해 계절별 관리 방안을 최적화하는 것. 이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검증된 자연의 원리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미래 지향적 접근이다.
탄소중립 도시를 만드는 여정에서 우리는 때로 가장 복잡한 해법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진정한 혁신은 때로 가장 단순한 원리에서 시작된다. 자연이 수백만 년간 완성해 온 탄소 순환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것을 도시라는 인공 환경에 적용하는 것. 이것이 바로 AI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탄소중립의 새로운 지평이다.
글=전승준 인포쉐어 대표
정리=남도영 기자 hyun@techm.kr
전승준 인포쉐어 대표
또한 환경 센서와 인공지능을 결합한 실시간 모니터링 및 분석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 인포쉐어(Infoshare)의 대표로서, 연구 성과가 실제 산업 및 정책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외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탄소중립 정책 수립을 위한 기술 평가, 환경영향 분석 플랫폼 개발 등의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과학적 근거 기반의 정책 기획과 실용적 환경 전략 마련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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