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리포트]'국내 유일의 희귀 스타트업' 농업의 반도체 만드는 김연준 파이토리서치 대표

기후변화와 질병에 강한 농작물 종묘 보급
새로운 맛의 딸기 품종 개발, 한국판 썬키스트 겨냥
지난해 설립된 파이토리서치는 국내 유일의 희귀한 신생기업(스타트업)이다. 이곳은 농업의 반도체인 식물의 종자를 개량해 각종 질병에 강한 '무병묘'(無病苗)를 만드는 육묘(育苗) 스타트업이다. 농업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수확량과 맛을 결정하는 종자다. 그렇기에 전 세계 종자 시장은 비즈니스리서치 조사 결과 지난해 660억 달러(약 92조 원)에 이를 만큼 규모가 크다. 여기에 직원 6명의 작은 회사가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김연준(26) 파이토리서치 대표를 만나 농업보국(農業報國)의 꿈을 들어봤다.

김연준 파이토리서치 대표가 25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기후변화와 병충해를 잘 이겨내도록 개발한 딸기 등의 무병묘를 소개하고 있다. 남동균 인턴기자

고교생 때 종묘 배양해 수천만 원 벌어

중학생 때부터 농업에 관심을 가진 김 대표는 작정하고 농고와 농대에 진학했다. "어려서 식물 기르는 것을 좋아했고 사업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생 때 만난 농대 교수였던 친척이 앞으로 식용 허브 사용하는 식당이 늘어날 테니 돈 벌고 싶으면 허브를 심으라고 추천했죠. 그때부터 농업에 관심을 가졌어요."

수원농생명과학고 재학 시절 직접 종묘를 배양해 3,000만 원을 벌기도 했다. "농고에서 조직배양 기술을 배워 껍질에 흰 무늬가 들어간 희귀 바나나인 무늬 바나나 종묘를 배양해 팔아 돈을 벌었어요."

이때 종묘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립한국농수산대에서 화훼학을 전공했다. "새로운 품종 연구가 활발한 분야가 꽃이죠. 씨 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도 팬지꽃 연구로 시작했어요."

그는 종묘배양 기술로 농업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대학 3학년 때 창업했다. "기후변화 때문에 농업의 병충해가 심각해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 창업했죠."

김연준 파이토리서치 대표는 생명공학기술과 사물인터넷을 이용해 병충해를 이겨내는 무병묘를 배양한다. 무병묘는 식물의 생장점을 미세하게 잘라 세균 감염억제기술이 적용된 무균상태의 용기에서 배양해 6개월 동안 기르는 과정을 거친다. 남동균 인턴기자

달고 맛있는 과일 열리는 무병묘 개발

식물은 동물과 달리 병에 걸리면 스스로 퇴치하는 면역 기능이 없다. 대신 세포벽이 두꺼워 병균의 침입을 막는다. 그러나 상처가 나서 그 틈으로 세균이 침투하면 식물 전체에 퍼져 생육이 저하되고 열매를 덜 맺는다. 감자, 고구마, 딸기처럼 줄기를 끊어 심는 영양번식 식물은 절단면으로 세균이 침투한다. "사과, 배, 감, 포도, 딸기 등 많은 과일과 고구마, 감자 등 꽃이 피고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달리는 식물은 대부분 영양번식을 해요."

파이토리서치는 영양번식 식물에 한해 조직 배양기술로 기후변화를 견디고 병충해에 강한 무병묘를 개발해 공급한다.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업체처럼 원하는 식물을 요청하면 조직 배양 기술로 원하는 시기에 맞춰 세균 없는 무병묘를 제공해요."

무병묘는 생명공학기술을 이용해 식물의 체세포 복제로 탄생한다. "줄기나 뿌리의 맨 끝에 인간의 성장판 같은 생장점이 있어요. 생장점을 미세하게 잘라 무균상태의 용기에서 직접 개발한 감염억제기술로 배양해요. 생장점은 분열이 왕성해 세균이 물관을 타고 올라오는 속도보다 자라는 속도가 더 빨라 세균이 힘을 쓰지 못해요. 여기에 사물인터넷(IoT)을 결합해서 한 달 정도 키워 떡잎이 나오면 성장 호르몬을 투여해 더 빨리 자라게 하죠. 뿌리를 내리기까지 전체 배양 기간이 6개월 걸려요. 이렇게 만든 용기 하나로 무한복제가 가능하죠."

무균 상태에서 대량 증식한 무병묘는 과일의 당도가 높고 열매가 달리는 비율이 20% 이상 올라간다. "병에 걸리면 당도가 떨어져요. 그래서 국가에서도 당도와 착색이 좋고 수확량이 높은 무병묘를 권장하죠. 이제는 무병묘가 농사의 경쟁력이 됐어요."

결정적으로 과수의 기대 수명도 늘어난다. "과수는 최소 5, 6년 키울 수 있는데 오래되면 나무 안에 세균 농도가 늘어나 기대 수명이 줄어요. 무병묘는 나무 안에 세균이 없어 더 오래 살죠."

물론 무병묘도 자라면서 상처가 나면 세균에 감염될 수 있다. "처음부터 대량으로 무병묘를 심으면 세균 감염률을 떨어뜨려 작물의 수확량을 올릴 수 있어요."

현재 이 업체는 장미, 의료용 대마 등 1,920종의 작물을 무병묘로 개발했다. 요리에 비유하면 1,920가지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비법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딸기, 사과, 체리 등 시장성 있는 60종의 작물을 집중 배양한다. 종자별 육성 기술은 일부러 특허를 내지 않았다. 특허 신청 과정에서 기술 노출을 우려해서다. "원천 개발한 세균류 번식을 억제하는 기술만 국내외 특허를 출원했어요. 또 일부 품종 특허도 갖고 있죠."

배양은 경북 상주에 마련한 종묘실에서 한다. "500평 규모의 시설에서 8만 주의 종묘를 키울 수 있어요. 가격은 품종별로 달라요. 딸기의 경우 무병묘 한 병에 1만 원을 받아요."

김연준 파이토리서치 대표의 목표는 한국의 썬키스트가 되는 것이다. 그는 농업인에게 좋은 품종의 종자를 값싸게 공급하고 여기서 나온 과일을 구입해 유통하는 썬키스트 같은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남동균 인턴기자

바나나맛 우유의 바나나는 왜 사라졌을까

김 대표는 독자 개발한 배양 기술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육종 사업도 한다. 특히 기후변화에 잘 견디는 품종을 개발한다. "지구온난화로 병균과 해충이 늘었어요. 여기 맞춰 고온에 잘 견디고 병충해에 강한 저항성 품종을 만들어요."

육종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나나다. 김 대표에 따르면 원래 바나나는 바나나맛 우유와 같은 맛이었다. "1950년대 이전까지 달콤한 맛을 지닌 그로미셀 품종의 바나나를 먹었어요. 바나나맛 우유가 그로미셀을 토대로 개발됐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바나나를 썩게 만드는 파나마병이 퍼져 그로미셀이 멸종되다시피했고 세균에 강한 캐번디시 품종으로 대체됐죠. 지금 우리가 먹는 캐번디시 바나나는 질병에 강하지만 맛과 향이 그로미셀 품종보다 떨어져요."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딸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한국 딸기가 많이 팔린다. 육질이 두껍고 거친 맛의 미국 딸기보다 달고 맛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 대표는 "최근 일부 딸기 품종이 나온 지 오래돼 종이 퇴화되면서 단맛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로 일부 딸기품종이 빠르게 퇴화되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 딸기 농가가 비상이죠."

여기 맞춰 김 대표는 신품종 딸기를 개발 중이다. "2027년에 기후변화에 강한 신품종의 딸기 무병묘를 출시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농가 소득을 끌어 올리는 것이 목표죠."

매출은 1년 6개월 만에 2억6,000만 원을 기록했고 벌써 영업이익이 나고 있다. 올해 4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투자는 크립톤과 MY소셜컴퍼니 등에서 2억 원을 받았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한국의 썬키스트 같은 기업이 되는 것이다. "오렌지로 유명한 썬키스트는 세계 최대의 청과물 협동조합이에요. 농업인에게 좋은 품종의 종자를 값싸게 공급하고 여기서 나온 과일을 구입해 유통까지 하고 싶어요. 특히 딸기의 수직 계열화 사업 모델을 만들어서 딸기 분야의 썬키스트 같은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죠."

최연진 IT전문기자 wolfpac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