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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로봇은 인구문제 해결책일까?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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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로봇은 인구문제 해결책일까?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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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인구문제를 강의할 때,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시대에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속 미래상을 보면 이러한 지적이 타당해 보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1년 영화 ‘에이아이’(A.I.)는 로봇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온갖 궂은 작업을 대신 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한 부부는 불치병으로 냉동 상태에 들어간 아들을 대신하여 인간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에이아이 소년을 ‘입양’하기도 한다.



인구변화의 충격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그저 사람 수가 줄어드는 문제만은 아니다. 사실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아니어도 향후 수십년간은 인구변화로 인해 총량적인 노동력 부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이미 나타나고 있는 더 중요한 노동수급 문제는 특정한 직종·산업·지역에서 특정한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해지는 ‘불균형’ 문제이다.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원하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기술의 발전은 이와 같은 부문 간 불균형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까? 낙관하기는 어렵다. 가까운 장래에 인구·기술 변화로 한국에서 노동력 부족이 가장 심각하리라 예상되는 일자리는 사회복지서비스업, 음식점·주점업, 운송업, 소매업 등 산업의 준전문직과 비전문직으로 추정된다. 반면 인공지능이 대체할 가능성이 가장 큰 직업군은 컴퓨팅, 사무지원, 경영·금융, 건축·엔지니어, 법률서비스 등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인공지능이 부문별 인력 부족 해소에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그리 놀랍지 않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의 기술은 더 비싼 생산 요소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진보해왔다. 예컨대 산업혁명을 특징 짓는 노동 절약적 기술이 고임금 국가였던 18세기 영국에서 처음 발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고비용 인력을 대체하는 기술 개발에 대한 수요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장차 한국에서 노동력 부족이 예상되는 부문 가운데는 임금이 낮아서 신규 인력이 진입을 꺼리는 일자리가 많다. 돌봄서비스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부문의 인력 부족을 완화해줄 돌봄 로봇 개발은 기술적으로 가능할지 모르나, 현재의 임금구조하에서 상용화와 도입의 경제적 유인은 크지 않다.



다른 한편, 한국 청년들이 선호하여 취업하고 싶어 하는 일자리가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줄어드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인공지능 보급은 이미 적지 않은 전문직의 초급 인력을 대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인공지능은 대학원생 조교들이 담당했던 일들을 효율적으로 해주고 있다. 인공지능 도입 이후, 대형 로펌들이 신규 변호사 채용을 줄였다는 소식도 들린다. 중요한 신기술이 도입되는 결정적인 시기에, 이를 이용하여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세대와 대체되는 대상이 되어 일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세대의 운명이 극적으로 갈리는 것이다.



신기술 도입의 부작용은 세대 간 격차를 더 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험을 통한 인적자본 축적의 기회가 줄어들면서 많은 업종에서 경력 사다리가 끊어질 우려가 있다. 대학원생 연구조교나 새내기 변호사의 업무는 문헌 정리나 통계 분석처럼 인공지능이 해줄 수 있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당 분야의 암묵적인 규범과 문화를 익히고 인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고도의 소통·판단·결정 능력은 어쩌면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는 일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길러졌을 수 있다. 신기술 도입으로 사람을 길러내는 중요한 경로가 단절되면서, 기술을 통제하고 이용할 능력을 갖춘 사람의 미래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걱정은 과도한 것일까.



인공지능이나 로봇과 같은 신기술이 인구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기술을 개발하여 어디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이에 수반되는 부작용을 얼마나 잘 보완하는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지금처럼 기계가 세금을 내지 않고 그 수입이 배분되지 않는다면, 인구변화로 인한 세수와 소비 감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노동수급 불균형 문제는 완화될 수도, 악화할 수도 있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인공지능 3대 강국 도약과 같은 과학기술 정책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부문·지역·세대 간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떤 기술 진보든 그 궁극의 목적은 사람들의 후생 증진에 있음을 기억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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