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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뉴스1 |
지난주 전국에 물 폭탄 수준의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서 밭작물 출하에 비상이 걸렸다. 농산물 작황 부진에 따른 공급 부족이 식탁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충남 금산, 전남 고흥, 경북 영양 등 고추 주산지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무·감자·수박 등 여름 채소·과일이 폭염과 폭우 피해를 받으면서 시장 가격이 출렁이고 있다.
2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6일부터 이어진 집중호우로 벼, 논콩, 고추, 수박 등 전국 농작물 2만8491헥타르(㏊, 1㏊=1만㎡)가 침수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는 축구장 4만개에 달하는 규모다.
피해 작물로는 벼가 2만5065㏊로 가장 면적이 넓었다. 이 외에 논콩 2050㏊, 고추 227㏊, 멜론 140㏊, 수박 133㏊, 딸기 110㏊ 등 주요 밭작물도 침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충남이 1만6710㏊로 전체 피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전남(7612㏊), 경남(3731㏊) 순으로 집계됐다. 특히 충남 금산, 경북 영양, 전남 고흥 등 고추 주산지에서는 장마철 폭우로 인한 도복(줄기 쓰러짐)과 침수 피해를 크게 입었다. 무·감자 같은 뿌리채소는 흙탕물이 덮쳐 썩는 피해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밭작물 공급 악화가 우려되면서 시장 가격은 폭등하는 모습이다. 이날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8일 기준 수박 한 통의 평균 소매가는 3만866원으로 집계됐다. 한 달 전보다 41.0%, 지난해 같은 날보다 44.6% 오른 가격이다. 참외(10개 기준)도 1만6856원으로, 1년 전보다 20.0% 상승했다. 농식품부는 수박과 멜론의 경우 부여(수박), 담양·곡성(멜론) 등 침수 피해와 제철 과일 수요 등이 겹쳐 당분간 전·평년보다 높은 가격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채소류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배추 한 포기의 평균 소매가는 4950원으로 전월 대비 43.1% 상승했고, 상추(100g)는 1283원으로 한 달 새 40.5%나 비싸졌다. 오이(10개 기준)도 1만2188원으로, 전월보다 15.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축산물도 폭염과 수해로 공급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닭·오리·돼지 등 가축 피해 규모는 총 157만마리에 달한다. 지난해 장마철 전체 피해(91만2000마리)를 넘어선 규모다. 이번 집중 호우로 100만마리 가량 폐사한 닭의 경우, 육계 소매가격(축산유통정보 다봄 기준)은 5880원(1㎏ 기준)으로 전월 대비 2.3%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달걀 가격은 6984원(30구 기준)으로 평년보다 3.4%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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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한 식당에서 식당 관계자가 폭우·정전 등으로 상해버린 감자를 폐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는 농축산물 수급 불안을 막기 위해 피해 조사와 복구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농식품부는 생육 상황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면서 농촌진흥청, 지방자치단체, 생산자단체 등과 협력해 배수로 정비, 비닐하우스 결속 강화 등 침수 예방 조치를 진행 중이다. 피해 농가에 대한 재해복구비와 농업재해보험금 지급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먹거리 가격 안정을 위해 총 350억원의 재정을 긴급 투입한다. 다음 달 6일까지 과일, 닭고기 등 주요 농축산물에 대해 1인당 주당 2만원 한도 내에서 최대 40%까지 할인 혜택을 제공할 계획이다.
대형마트들도 정부의 할인 정책에 호응해 자체적인 추가 할인에 들어갔다. 이마트는 복숭아, 수박 등 제철 과일과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농식품부 지원 할인에 자체 프로모션을 더해 최대 36%까지 가격을 낮췄다. 롯데마트 역시 과일, 채소, 곡물 등 약 10개 품목에 대해 중복 할인 행사를 병행하고 있다.
이에 더해 물가 안정에 대한 정부의 대응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구윤철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취임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수해로 인해 물가, 특히 생활물가를 안정화해야 한다”면서 “지금은 물가가 가장 중요한 단기 과제”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폭우로 농축산물 공급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날부터 지급이 시작된 ‘민생회복 소비쿠폰’이 수요를 자극해 단기적으로 밥상 물가를 끌어 올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계절 수요가 몰리는 수박 등 일부 품목은 가격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면서 “휴가철이라는 계절 요인과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 특정 품목 소비가 늘어나 물가 자극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구윤철 부총리는 “전반적으로 수요가 줄어 재고가 쌓이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다만 특정 품목에 수요가 집중될 경우엔 가격 상승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럴 경우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소비쿠폰으로 인한 가격 급등이 없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출하량을 조정해 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덧붙였다.
세종=김민정 기자(mj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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