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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론스타 도와줬던 사람들: 순왜와 세무조력자 '똑같은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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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론스타 도와줬던 사람들: 순왜와 세무조력자 '똑같은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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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 소장]

변호사ㆍ공인회계사 등 세무조력인들이 납세자를 돕는 행위를 제재해선 안 된다. 다만, '탈세 목적'의 조력까지 법적으로 허용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이들이 탈세상품을 직접 기획ㆍ실행했다면 공범 또는 정범에 해당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서다. 몇몇 해외국은 이미 관련 규정을 두고 있다. 세무조력인의 나쁜 관행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사모펀드 론스타 관련 최종심이 최근 나왔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바꿔야 할 점은 무엇일까.


제2의 론스타 사건을 막기 위해선 정비해야 할 제도가 많다. 사진은 2020년 론스타 봐주기 규탄 기자회견.[사진 | 뉴시스]

제2의 론스타 사건을 막기 위해선 정비해야 할 제도가 많다. 사진은 2020년 론스타 봐주기 규탄 기자회견.[사진 | 뉴시스]


"론스타는 법인세를 돌려받을 당사자가 아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취소된 법인세 중 돌려받지 못한 1535억원을 반환하라"는 소송에서 대법원이 내린 최종 판단이다(2024다295876 판결). 이로써 2003년 시작한 론스타의 한국 투자 관련 세금 소송사건들은 종지부를 찍었다.


1997년 외환위기 후 저평가되거나 파산 직전인 외환은행과 스타타워빌딩의 주식을 2003년 매입한 론스타는 4년 뒤 시세가 오르자 매각했고, 그 과정에서 배당금·주식양도차익 5조원을 얻었다. 그럼에도 론스타는 온갖 편법을 동원해 한국에는 주식양도소득에 단 한푼의 세금도 납부하지 않았다.


만약 한국기업이 5조원 정도의 수익을 냈다면 적어도 1조3700억원가량의 세금(당시 법인세율 25%+지방세율 2.5%)을 납부했어야 했다. 특히 론스타는 한국에서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조세피난처인 버뮤다 등지에 자회사를 여럿 설립했고(A), 이들이 다시 모여 벨기에에 페이퍼 컴퍼니 성격의 중간지주회사(B)를 만든 뒤, B를 통해 한국에 투자했다. 우회투자한 목적은 "벨기에 법인(B)의 한국 주식양도소득에는 한국에서 과세하지 않는다"는 한ㆍ벨기에 조세조약 규정(제13조)을 이용하기 위함이었다.


2007년 과세관청은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해 한국에 투자한 실체는 B가 아니라 A라고 판단해 한ㆍ벨기에 조세조약 적용을 배제했다. 여기에 A가 한국에 고정사업장(한국지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판단, 주식양도소득에 과세했다.[※참고: 이러면 한국법인이 외국에서 번 5조원에 부담하는 법인세액과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


당연히 론스타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수많은 소송을 제기했다.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확정판결했다(2010두5950 판결). "한국에 투자한 주체는 B가 아니라 A이기 때문에 한ㆍ벨기에 조세조약을 적용할 수 없다. 다만, A의 한국 고정사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 투자한 A는 유한 파트너십(limited partnership)이므로 양도소득세 대신 법인세로 과세해야 한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


이른바 '2010 대법원 판결'에 성이 차지 않았는지 론스타는 2012년 "한국의 세무조사가 부당하다"는 이유를 들어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2년 후 재판부는 론스타의 요구를 받아주지 않았지만, 한국 정부는 론스타의 막무가내식 소송에 대처하기 위해 수백억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과 인원을 투입해야 했다.


[※참고: 2012년 론스타는 ICSID에 금융위원회의 승인 절차가 더뎌 외환은행을 매각할 기회를 놓쳤다면서 6조300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다. ICSID 중재 판정부는 2022년 8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31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는데, 둘은 불복해 지금까지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같은 대규모 우회투자에는 세무조력인(변호사ㆍ공인회계사 등)의 세무 설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우린 납세자가 절세권을 남용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미국에서 한국에 직접 투자하는 게 정상인데도, 세금을 부당하게 줄이려는 목적으로 우회 투자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이 조세공평부담원칙에 타당한가"라는 질문도 던져야 한다. 조세피난처는 세무 정보 제공이 지극히 제한된다. 따라서 우회 투자의 정당함을 투자자 스스로 입증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무조력인의 납세자를 위한 정당한 조력을 제재할 수 없고, 제재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탈세 목적의 조력까지도 그래야 하는가. 이들이 탈세상품을 직접 기획ㆍ실행했다면 이는 조세범처벌법을 개정해 공범 또는 정범으로 다스릴 필요가 있다. 미국ㆍ영국ㆍ프랑스ㆍ독일은 이미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빠른 북상을 위해 길잡이를 한 자를 순왜順倭라고 불렀다. 이들은 왜군의 '길잡이 노릇'은 물론,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심지어 왜군에 들어가 직접 전쟁에 참여했다.



론스타 '먹튀'가 불거질 무렵, 정부나 학계에서는 외국자본의 한국 투자와 관련한 탈세를 효과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실질과세 원칙과 입증 책임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입법화하지 못했다. 일부 법기술자들의 반대가 극렬했다.


법 규정을 제대로 갖추면 설자리가 좁아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탈세는 '국가의 세입을 좀먹어 국가 존재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외부 침략과 비견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들 탈세 조력인들과 임진왜란 당시 순왜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론스타 먹튀 사건의 최종심이 나온 만큼 일련의 과정을 복기하면서 법 규정을 보완하고 탈세를 직접 조력한 세무 조력인들을 제재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제2의 론스타 사건'을 방지하는 지름길이다.


안창남 AnP 세금연구소장 | 더스쿠프

acnanp@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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