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필리조선소 4도크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을 건조하고 있다. 뒤편에 해저암석설치선(SRIV)가 보인다. 한화오션 제공 |
“역사적인 날에 오셨습니다.”
지난 16일 오후 3시10분께(현지시각) 미국 필라델피아 한화필리조선소 4도크(건조대). 폭 30m, 길이 140m에 달하는 배가 바다를 향해 조금씩 나아갔다. 조립이 완료된 선박을 처음으로 물에 띄우는 ‘진수’였다. 육상 공정을 마치고 해상 공정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인 진수식은 1년에 1척 남짓 건조하는 이 조선소에서 1년에 1~2번 있는 드문 행사다.
이날 진수식은 좀 더 특별했다. 지난해 12월 필리조선소를 인수할 당시 건조 중이던 이 배(해저암석설치선·SRIV)의 목표 진수일은 올해 12월이었다. 한화팀은 5개월을 당기자고 했다. 이종무 한화필리조선소 소장은 미디어데이를 맞아 조선소를 찾은 한국 특파원단에게 “한달 전까지도 모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밤을 낮 삼아 일했고, 앞당겨 진수하겠다고 한 그 날 정확히 배를 띄웠다”며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뒤 관세·방위비 등으로 갈등을 빚는 와중에도 ‘조선업’은 한미 협력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화필리조선소는 한국의 자본과 선진기술 유입을 바라는 미국과 천문학적 금액이 투자될 미국의 상선·군함 건조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한국 간 ‘윈-윈’이 가능할지 판단해볼 가늠자로 꼽힌다.
한화에게도, 미국에게도 최우선 관심사는 필리조선소의 생산성 향상 여부였다. 1년에 40척을 생산하는 조선소를 가진 한화오션(한화필리조선소의 지분 40% 보유) 눈에 1년에 1~1.5척을 생산하는 한화필리조선소의 공정은 손볼 곳이 많았다. 이 소장은 “‘1년에 1척 생산하던 회사를 어떻게 10척 만드는 회사로 만드는가’하는 지점이 미국인들이 가장 관심 갖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최우선 과제는 조선소의 상징 ‘골리앗 크레인’의 회전율 높이기였다. 조선소는 선박을 블록 단위로 나눠 제작한다. 골리앗 크레인은 무게 수백 톤에 달하는 이 블록을 들어 올려 도크에 정확히 배치하는 역할을 한다. 인수 전 필리조선소 골리앗 크레인은 배 한척을 만들기 위해 80번 블록을 날랐다. 한화는 블록 사전 조립을 확대하는 등의 개선을 통해 이를 40번으로 줄였다. 블록 하나당 탑재 시간도 3일에서 4시간으로 줄였다. 사전에 블록의 치수를 광파기로 정확히 측정하고, 오차가 없도록 사전 절단한 덕분이다. 예전에는 설치 중 미세한 오차를 맞추느라 시간이 낭비됐다.
한국 조선소에선 ‘가장 비싼 땅’으로 꼽히는 골리앗 크레인 바로 아래 부지도 600만 달러를 투자해 조립·생산 공간으로 개조 중이다. 조립이 끝난 블록을 바로 들어 올려 도크로 옮기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전엔 부자재 적치장으로 사용됐다. 골리앗 크레인이 ‘분 단위’로 짜인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크레인 상단에 ‘HANWHA’ 로고를 칠해 넣는데도 긴 시간이 걸렸다. 이 소장은 “(조선소가 쉬는) 일요일 야간에만 (크레인을 멈추고) 페인트 작업을 할 수 있다 보니 석 달째 칠하고 있다”며 웃었다. 병목공정 개선, 공법 대체, 기술 도입 등도 뒤따랐거나 계획 중이다. 이 소장은 “조선소 한 쪽에 마련되어 있는 1000대 수용 가능한 광활한 주차장도 우리 눈에는 ‘유휴 부지’”라며 “곧 건조장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 내 교육장에서 제임스 투니아가 용접 교육을 받고 있다. 필라델피아/김원철 특파원 |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 내 교육장에서 한 견습생이 용접 교육을 받고 있다. 필라델피아/김원철 특파원 |
시설 투자, 공정 개선만큼 중요한 인력 양성이다. 조선소 내 트레이닝 아카데미가 이를 담당하고 있다. 이날도 여러 견습생들이 용접 훈련을 받고 있었다. 훈련생 제임스 투니아(33)는 한겨레와 만나 “시작 시급이 23달러 10센트이고 6개월마다 오른다. 매우 좋은 보수다. 가족을 부양할 수 있게 돼 기쁘다”라며 “매일 10시간씩 주4일 배운다. 8주간 배운 뒤 부서에 배치돼 배우면서 일하게 된다. 한국인 강사도 있다”고 말했다. 견습생 때부터 매년 5만 달러 이상을 받으며 숙련노동을 배울 수 있다 보니 120명 모집에 1000명 이상이 지원한다고 한다. 한화필리조선소는 1500명가량인 생산인력을 두배로 늘리기 위해 이곳에서 매년 200명을 길러낼 계획이다.
목표는 1년에 10척 이상을 생산하는 조선소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공정 개선을 통해 1년에 1~1.5척을 건조하는 ‘4번 도크’에서 4척까지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 옆 ‘5번 도크’에 ‘복사-붙여넣기’해 1년 8척 건조 조선소로 만들 수 있다는 구상이다. 설비투자가 동반되면 한 도크에서 1년 8척, 조선소 전체로는 16척을 건조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소장은 “10년 내 10척 생산은 무조건 되는 목표”라며 “우리의 목표는 5년 내로 당기는 것이다. 이를 목표로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필리조선소는 미국전투지원함 건조 프로젝트 참여를 위한 절차도 밟고 있다. 데이비드 김 필리조선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한국 특파원단과의 간담회에서 “해군의 전투함뿐 아니라 전투지원함 건조에 쓸 추가 국방 예산 200억 달러(약 27조8000억원) 이상이 이미 승인됐다. 그중 일부 지원함은 우리가 건조할 수 있는 유형의 함정”이라며 “우리는 그 프로그램(입찰)을 따내기 위해 사업 신청과 입찰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라델피아(미국 펜실베이니아주)/김원철 특파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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