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의 영혼들' |
한국의 인공지능(AI) 기반 애니메이션이 UN 산하 국제기구가 주최한 국제 영화제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AI 기술을 창작에 창의적으로 접목시키는 능력을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AI 기반 콘텐츠 산업의 기술 기반 전환을 가시화한 계기다.
수상작은 이윤선 감독과 홍정민 감독, 음악을 맡은 이경수(판다곰) 프로듀서가 협업한 단편 애니메이션 '난파선의 영혼들'이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가 올해 처음 개최한 'AI 포 굿 영화제'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됐다.
'난파선의 영혼들'은 태풍으로 난파된 배들 사이에서 한 여인이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길 잃은 영혼들을 이끄는 여정을 그린 시적 내러티브 작품이다. '미드저니', '런웨이ML', '클링' 등 다양한 AI 도구를 활용해 모든 장면을 제작했다. 캐나다와 한국에 각각 거주하는 제작진은 원격 협업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이번 성과는 정부 부처의 실질적 지원과 인재 양성 정책의 성과가 결합된 사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협업을 통해 감독과 제작진이 영화제 현지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윤선·홍정민 감독과 판다곰 프로듀서는 모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운영하는 '뉴콘텐츠아카데미' 교육생 출신이다. AI 기반 창작 생태계 조성에 있어 공공의 실질적 역할과 제도적 뒷받침이 중요하다는 점을 방증한 결과물로 평가된다.
스위스 제네바에 열린 'AI 포 굿 영화제' 현장. (사진 왼쪽부터) 판다곰(이경수) 프로듀서, 이윤선 감독, 홍정민 감독 |
〈인터뷰〉이윤선·홍정민 감독 “48시간 만에 만든 영화, 세계 1위…한국적 스타일 구현은 한계”
“AI는 아직 완성된 기술이 아니지만, 상상력의 실행력을 확대해 주는 도구입니다.”
이윤선·홍정민 감독은 '난파선의 영혼들'이 '48시간 만에, 서로 다른 대륙에서,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만들어진 영화라고 소개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이윤선 감독은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미드저니'로 톤앤매너를 잡아 전 샷을 구성했다. 이 이미지를 밴쿠버에 있는 홍정민 감독이 '런웨이ML'로 영상화하고 편집했고 사운드수퍼바이저 판다곰 프로듀서가 '클링'으로 음향과 사운드를 덧붙였다.
제작비는 AI 툴 구독료 외에 거의 들지 않았다. 단돈 10만 원 이하에서 완성된 셈이다. 다만 창작의 자유가 기술에 의해 제한되는 모순도 있었다. 이윤선 감독은 “AI는 팝콘 무더기는 손쉽게 만들어내지만, 단 하나의 팝콘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창작자가 지나치게 독창적인 샷이나 구도를 상상하면 구현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AI가 한국적 스타일을 구현하는 데 한계가 뚜렷했다는 점도 짚었다. 한국적 복식이나 건축, 난파선(배)의 형태가 일본·중국풍으로 왜곡되기 일쑤였다. 이 감독은 “음악도 동양적 사운드 AI 제작이 어려워 일부는 직접 작곡해 완성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국인 아티스트로서 여전히 한계로 느껴졌다”고 밝혔다.
이번 영화 제작을 계기로 두 감독은 AI 콘텐츠의 산업적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홍정민 감독은 “AI가 그동안 상상해왔던 많은 부분을 확장시킬 것”이라며 “개인 단위 창작자들에게도 산업적으로 열려 있는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앞으로도 '4Eyes'라는 팀을 중심으로 AI 기반 협업을 이어가고자 한다. 영화연출을 전공한 이 감독은 AI 뮤직비디오 등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홍정민 감독은 벤쿠버에서 확장현실(XR) 프로젝트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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