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게티이미지뱅크 |
미국의 생명공학 기업이 제공하는 배아 유전체 검사 서비스가 ‘슈퍼베이비' 논란을 낳고 있다.
17일(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보면, 난임 스타트업 ‘오키드헬스'(Orchid Health)는 배아를 대상으로 향후 발병 소지가 있는 수천 가지 질병을 검사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서비스를 통해 예비 부모는 자녀의 유전정보를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이 알 수 있다.
현재는 시험관 시술을 받는 여성과 커플들이 낭포성 섬유증이나 다운증후군 같은 단일 유전자 변이나 염색체 이상을 검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이 스타트업은 자신들이 최초로 30억 염기쌍의 배아 전체 유전체를 시퀀싱(DNA의 염기 배열 분석)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배아에서 채취한 5개 세포만으로 전체 유전체를 분석하고, 조현병·알츠하이머·비만 등 1200여개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질병 가능성은 점수화되는데, 이 데이터를 통해 아이를 선별해 낳을 수 있는 셈이다.
오키드헬스 창업자 누르 시디키(30)는 “사람들은 자녀를 낳는 것처럼 중요한 일에는 주사위를 굴리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오키드는 질병을 피할 수 있는 유전적 축복을 받는 세대를 만들고 있다”고 소개하며 “섹스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고, 배아 스크리닝은 아기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오키드헬스의 유전자 스크리닝은 시험관 시술의 성공률을 높이고 부모들의 유전 질환에 대한 불안감을 줄임으로써 출산을 장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스타트업은 단순히 아이를 갖는 것을 돕는 수준을 넘어 미래의 자녀를 선별하고 설계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지적했다.
이를 두고 인간의 우수한 유전형질만을 선별해 개량하는 ‘현대판 우생학'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부유한 이들이 유전적으로 더 뛰어난 아이를 골라 태어나게 하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스타트업의 검사 비용은 배아 하나당 2500달러(350만원), 시험관 시술 1회 평균 비용은 2만달러(2800만원)에 달한다. 서민들은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스타트업의 고객 중에는 일론 머스크와 사이에서 4명의 자녀를 낳은 전 뉴럴링크 임원 시본 질리스도 포함돼 있다고 두 명의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머스크와 질리스의 자녀 중 최소한 한 명은 오키드헬스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이들은 전했다. 최근 이 사실에 대해 시디키와 머스크, 질리스는 답변을 거부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오키드헬스는 “지적 장애는 선별하지만 지능 예측은 제공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회사 관계자는 머스크와 질리스 커플을 포함해 일부 커플에 지능 관련 선별 서비스를 비공식적으로 제공했다고 말했다.
미국 임신협회는 오키드헬스와 같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유전자 선별 기술을 두고 “이건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인간 배아의 미래를 실질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앨리슨 브룩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생명윤리학 교수도 “우리는 지금, 아이들이 선택받은 이유와 선택받지 못한 이유를 아는 사회로 가고 있다”며 오키드헬스의 서비스가 “건강을 위한 선택을 넘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이 스타트업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학자들은 작은 배아의 표본에서 정확한 유전 정보를 추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타액이나 혈액 샘플을 가지고 유전자 검사를 할 때는 수십만개의 세포를 수집한다. 표본이 적다면 이를 증폭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정확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스베틀라나 야첸코 스탠퍼드대 교수는 “5개 세포로 전체 유전체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류가 발생한다”며 “특정 질병 유전자가 없다고 단언하는 건 사실상 러시안룰렛에 가까운 위험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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