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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의 ‘이메일 쓰는 법’을 질투하다 [회차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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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의 ‘이메일 쓰는 법’을 질투하다 [회차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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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슬아. 이훤 촬영, 이야기장수 제공

작가 이슬아. 이훤 촬영, 이야기장수 제공


거절에도 도가 있다. 에디터들이라면 작가 이슬아가 원고 청탁, 강연 및 행사 섭외 1순위 리스트에 있는 인물이라는 걸 알 것이다. 또한 그가 얼마나 정중히 거절하는지도 알 것이다. 이슬아 작가가 받았을 수많은 구애의 메일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수없이 거절해야만 했을지, 그 과정을 통해 어떻게 ‘거절의 도’를 익혔을 지도 충분히 헤아려진다.



다행히도 나는 이슬아 작가를 적재적소의 자리에 섭외한 적이 있다.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을 모은 파티 자리로, 여성 간의 교류와 격려가 목적이었다. 이슬아 작가는 단연 그날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파티에 참석하는 모든 여성에게 맞춤형 시집과 짧은 손 편지, 그리고 우정의 말을 준비해 왔고, 그 사랑스러운 이벤트는 모두를 가벼운 흥분과 도취 상태로 빠뜨렸다.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라, 준비된 술이 모두 동이 나 파티가 끝난 뒤 즉흥적인 2차 자리로 이어지기까지는 그의 공이 지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슬아 작가의 글솜씨와 호연지기를 존경해 왔지만, 이날의 파티를 계기로 그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반하게 된다. 시집의 무게만큼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각자에게 어울리는 시집의 제목처럼 충만한 선물. 자기소개 식순으로 마이크가 돌아가자 한 명 한 명 다정히 호명하여 선물을 건넨 행위까지, 모든 것이 적절해서 아름다웠다. (참고로 나는 박상수의 시집 ‘오늘 같이 있어’와 함께 “오늘 우리 모두를 같이 있게 한 주인공에게, 사랑을 담아”라는 짧은 글을 받았다. 이제야 말이지만 가슴이 시큰했다.)



이슬아 작가가 신작 도서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의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나는 정말이지 그에게 실무를 배우고 싶은 마음으로 구독을 신청했다. 여지를 주지 않지만 여운은 남기는 ‘쿨하고 따듯한 거절법’이라든가, 쓴 말을 꽃수레에 실어 보내는 ‘꽃수레 권법’이라든가, 상대의 마음에 내리꽂는 ‘특별 호명술’부터 ‘인기 많은 사람을 섭외하는 법’까지, 재치와 호의를 담아 정중하고 단호하게 자신의 의사를 전하는 법을 그는 전수하고 있었다.



작가 이슬아. 이훤 촬영, 이야기장수 제공

작가 이슬아. 이훤 촬영, 이야기장수 제공


인터뷰는 궁극의 ‘모시기’ 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떠받들고 찬사만 보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 안의 것을 꺼내어 말할 수 있는 상태로 상대를 만들기까지,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깊고 신뢰할 만한 인터뷰어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를 읽으며 숱한 섭외 요청을 받는 이슬아 작가 역시 어려운 이들을 나서서 섭외하곤 했고 그 경험들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역시, 역지사지가 무서운 법. 무려 고등학생 때 생면부지의 노희경 작가에게 메일로 만남을 청해 실제로 만난 이야기엔 혀를 내둘렀다. 노희경 작가는 어떤 섭외에도 응하지 않는 작가다. 그러니까 이슬아 작가는… 타고났다. 아니, 일찍이 다져졌다고 말해야 할까.



사실 ‘깨끗한 존경’을 비롯한 인터뷰집과 서간집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를 보면 이슬아 작가가 대화에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지녔는지는 이미 알 수 있다. 그녀는 누군가를 대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상대가 문을 열고 자신에게 올 수 있도록 주단을 깔고, 차를 내오기 전 찻잔을 데우듯 정성을 다하되, 상대에게 압도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하는 위엄과 유머를 갖췄다. 그런 사람들만이 타인에게서 진실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이쯤에서 고백하자면 그에게서 질투하는 것이 오직 ‘이메일 쓰는 법’이라고 말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이슬아 작가의 글솜씨는 마치 숙련된 칼솜씨 같아서, 도마 위에 올린 글감을 정성껏 다루면서도 단호하게 손질하여 정성스러운 한 그릇을 낸다. 속도와 물량의 일정함은 기본. 벌써 열네 권째 산문, 장편 소설, 인터뷰집, 서평집, 칼럼집을 두루 써온 다재다능함, 매일 같이 웨이트를 하고 책을 읽고 마감을 하고 강연을 다니는 성실함, 오직 글로서 가정을 부양하는 가녀장으로서 능력, 더 말해 뭐 할 플랫폼을 바꾼 개척자로서의 호방함… 무엇보다 심지가 있는 글을 질투한다. 동시에 매일 같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힘이 번쩍 나는 웨이트 영상을 올리는 이슬아 작가가 항상 경이로우면서도, 좋다.



작가 이슬아. 이훤 촬영, 이야기장수 제공

작가 이슬아. 이훤 촬영, 이야기장수 제공


한편 대중의 관심을 받는 유명인의 숙명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 그가 유명세를 타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이러쿵저러쿵하는 호사가들의 이야기가 있다면, 나는 그건 질투에서 비롯된 트집이라고 짚어주고 싶다. 한국 문단에 글 써서 한 가정을 부양하고 널찍한 서재가 있는 집을 사고 그 자체로 인플루언서가 되어 브랜드와 협업 등을 할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것도 만 서른세 살로서?



나는 이런 걸 아니꼽게 보는 순간 망한다, 고 단언하고 싶다. 한국 문단에 이런 작가들이 더 나타나야 한다. 더 많이 스타가 되어야 하고, 더 많이 떠들어야 하며, 더 많은 팔로워를 가져야 하고, 자신의 글로서 생계가 가능한 영역으로 진입해야 한다. 작가가 꼭 비밀스럽고 엄숙하고 배고플 필요는 없지 않나? 나는 문단에 더 많은 포스트 이슬아가 등장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이 다양한 수단으로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살기를 바란다.



이슬아 작가는 주변을 살피는 작가다. 동료 작가들의 등을 밀어준다는 뜻이다. 그는 원고 청탁을 거절해야 할 때면 자신의 동료 작가들을 추천해 주며 그들의 글을 볼 수 있는 링크까지 챙겨주곤 했다. 나는 그 마음이 좋았다. 그의 친구들마저 질투했다는 건 이 지면에서 처음 털어놓는 고백이다. 문단 최초로 메일링 서비스를 개시했을 때부터 자신의 장편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드라마화하기 위해 각본 작업 중인 지금까지, 이슬아 작가의 왕성한 확장이 어느 먼 곳까지 나아갈지 계속 지켜보고 싶다. 아니, 한 명의 독자로서 그 등을 힘껏 밀어주고 싶다. ▶당신의 힘이 될 더 많은 질투의 이야기가 한겨레 누리집 ‘오늘의 스페셜’ 코너(https://www.hani.co.kr/arti/SERIES/3196?h=s)에서 이어집니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에디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에디터가 ‘GQ’, ‘아레나’, ‘씨네21’, ‘코스모폴리탄’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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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모음 QR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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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의 증인, 소설가 김애란의 시선을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08193.html?h=s



▶AI는 만들 수 없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205809.html?h=s



▶장혜영 민주노동당 공동선대위원장의 ‘정치’가 다음 대안이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200998.html?h=s



▶시각장애인 작가 조승리의 ‘생의 열정’을 질투하다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98531.html?h=s





이예지 에디터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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