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늘’ 건강한 노동자만 필요하다고? [세상읽기]

한겨레
원문보기

‘늘’ 건강한 노동자만 필요하다고? [세상읽기]

서울맑음 / 1.1 °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얼마 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한 의원의 병력이 화제가 되었다. 급성간염이 병역면제 사유가 될 수 있느냐는 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 한 의원의 지적이 귀에 꽂혔다. 급성간염이 아니라 만성간염이었다는 해명에 대해 만성간염이 있으면 일을 할 수 없고 검사로 임용도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과거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규정에 비형 간염이 포함되어 있었던 사실을 근거로 한 지적일 것이다.



실제로 만성 활동성 간염은 2005년까지 공무원 신체검사 불합격 기준에 포함되어 있었다. 2005년 12월 규정이 개정되면서 만성 활동성 간염이 있는 경우 업무수행에 지장이 있을 정도인지 전문의 소견에 따라 합격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실제로 그 이전에는 공무원 신체검사 항목에 비형 간염이 포함되어 있었고, 비형 간염 보균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오해가 팽배하기도 했다. 비형 간염 예방을 위해 술잔을 돌리지 말라는 과거의 공익 광고가 만든 오해이기도 했다.



2000년대에 비형 간염 보균자에 대한 취업 차별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견들이 모이면서 공무원 신체검사 불합격 기준에서 간염을 제외하는 개정이 이루어졌다. 공무원 신체검사 불합격 규정을 준용하는 민간기업들도 많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고용노동부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질병이 있는 자의 고용 기회를 제한하는 검진으로 잘못 활용되는 문제점”이 있다며 채용 시 건강검진 시행 의무를 폐지하였다.



비형 간염에 대한 오해가 불러온 채용에서의 차별은 에이치아이브이(HIV) 감염인에 대해서도 반복됐고, 특정 암에 대해 재발이 잦다는 이유로 채용이 거절되어 법원의 판단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특정 경비직에서 정신질환자를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 표명이 있었던 게 2023년이니,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발생하는 문제인 것 같다. 건강검진 기록이 입사 지원 시 필수 첨부 서류인 경우도 있으니 개인의 질병 상태가 취업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는 어쩌면 자연스럽기도 하다.



한편, 질병이 있는 노동자가 현장에서 일하면 과로사나 사고 등 산업재해 발생이나 신청이 많아질 수 있다는 이유로 사업주들이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이 있는 노동자의 고용을 꺼린다는 인식도 있다. 건설 일용직의 현장 투입 전에 혈압을 측정한다는 소문도 있었고, 고혈압이 있지만 현장에서 일해도 된다거나 악화되지 않을 거라는 의사 소견서를 요청한다는 하소연이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비공개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아픔’은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다. 2023년 30살 이상 전체 국민의 고혈압 유병률은 25.5%였다. 50대의 33.7%, 60대의 47.3%는 고혈압이 있었다. 당뇨는 30살 이상 전체 유병률이 11.7%였는데 50대는 16.9%, 60대는 24.2%였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약 1800만명 중 400만명 이상이 매년 하루 이상 무슨 이유에서건 입원한다. 어깨나 허리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전전하는 건설 일용직이나 청소 노동자, 간병 노동자와 조리 노동자들도 있다. 중장년 육체노동자뿐만이 아니라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배달 노동자, 방송영상업계 노동자, 웹툰 작가들도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교사나 감정노동 종사자도 많다. 고혈압이나 당뇨는 온열질환 발생의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열악한 노동자들이 더 아프고, 더 많이 죽는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1995년 28.8살이던 전체 인구의 중위 연령이 2024년 45.5살이 되었고, 2050년 59.5살이 된다. 20대이던 노동자들이 50대, 60대가 되어간다.



괜찮은 일자리에서는 건강을 이유로 채용을 차별하고,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는 아픈 노동자들이 더 병들어간다면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건강과 질병이 동전의 양면처럼 구분되는 것이 아닌데, 건강한 노동자라는 정의도 쉽지 않다. 공공병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에서 모든 건강 문제를 의료화하는 것은 별도 논의가 필요한 사안이지만, 아픈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줄여주고 보편적 건강 보장을 위해 정부 부처 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역할을 재조정하고 사각지대를 세밀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건강한 노동자라는 전제에서 만들어진 보건의료정책과 안전보건정책, 사회보험을 전면적으로 검토해야 할 때이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