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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나 정치나 질문이 반이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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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나 정치나 질문이 반이다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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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29일 기초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 등 5개 단체가 정부의 의료급여 정률제 전환 추진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빈곤사회연대 누리집 갈무리

지난해 10월29일 기초법 바로세우기 공동행동 등 5개 단체가 정부의 의료급여 정률제 전환 추진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빈곤사회연대 누리집 갈무리




임재희 | 이슈팀 기자



“그런 걸 여기 와서 물어보면 누가 대답을 해주겠어? 기자가 질문을 제대로 해야지!”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관저를 나와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로 돌아갔던 4월11일, 주변 주민들의 반응을 묻다가 들은 말이다. 한 주민은 임기를 제대로 마치고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동네 이웃이 퍽도 잘 대답해주겠다고 했다. 내란 이야기는 신문에 이미 많이 나왔으니, 새로운 문제나 찾아보라는 충고도 곁들였다.



‘기사를 못 썼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안 좋지만, ‘질문이 잘못됐다’는 말을 들으면 아프다. 경험상 질문이 잘못됐을 때는 ‘사전 준비가 부족했을 때’ 아니면 ‘질문할 사람을 제대로 찾지 못했을 때’로 나뉜다. 코로나19 대유행 초기가 그랬다. 바이러스나 의료 분야를 잘 알지 못한 채 다짜고짜 앞으로 유행 양상을 묻다 보면 금세 밑천이 드러났다.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왔을 때도 그 분야 전문가를 만나기 전까지 “잘못 전화했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질문은 기자만 던지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윤석열 정부 때부터 이재명 정부에서까지 ‘의료급여 정률제’를 추진했다. 지금은 생활이 어려운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는 병의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을 때 정해진 금액(1천∼2천원)만 낸다. 정률제란 전체 진료비에 비례해 일정 비율(4∼8%)로 부담하도록 한다. 복지부가 이 과정에서 던진 질문은 이렇다. ‘18년간 동결된 본인부담금으로 의료급여 제도가 지속가능한가?’ ‘본인부담금이 적어 의료 서비스를 남용하는 것 아닌가?’



필요한 질문이지만, 과녁 중심에선 벗어났다. 의료급여가 의료보장제도인데도 수급권자의 건강을 묻지 않고 있어서다.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 가운데 일할 수 없거나 희소·난치성 질환 등이 있는 경우다. 수급권자는 30.1%가 장애인이며, 69.9%가 만성질환자다. 애초 의료기관을 자주 찾을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정률제가 도입되면 건강이 나아질까. 재산을 환산해 더한 소득이 월 95만원 이하인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은 효과가 있어도 고액 진료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질문할 사람을 제대로 찾았는지도 의문이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실을 통해 확인해보니, 복지부는 지난해 7월25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의료급여 정률제 도입을 결정하기 하루 전에 중앙의료급여심의위원회를 열어 해당 안건을 의결했다. 교수나 의료공급자 관련 단체 대표들이 참석한 이 자리가 논의의 전부였다. 올해 4월25일에도 정률제 개편이 뼈대인 의료급여법 시행령을 개정하기 전에 심의위원회를 열었을 뿐이다. 의료급여 수급권자 당사자나 시민단체가 참여한 공청회는 이뤄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당사자들에게 일일이 물어보다가 언제 정책을 시행하느냐 묻겠지만, 밀어붙이기식 정책은 당사자들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복지부는 이달 10일 시민단체와 집담회를 열었다. 대통령실이 지난달 ‘시민단체 반대 의견도 들어보라’ 지시한 데 따라 잡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입법예고 기간 이후 정률제 개편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률제를 발표한 지 1년이 다 돼서야 당사자에게 첫 질문을 던진 셈이다. 답을 정해놓고 무작정 인터뷰부터 시도했다가 몇번씩 더 확인하기보다 질문을 잘 다듬어 적합한 당사자에게 한번 물어보는 쪽이 빠른 건 언론이나 정치나 비슷한 모양이다.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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