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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틴 파일’ 공개 두고…트럼프 진영 균열, 담당 검사는 돌연 해임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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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스틴 파일’ 공개 두고…트럼프 진영 균열, 담당 검사는 돌연 해임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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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97년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 자택에서 제프리 엡스틴과 찍은 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97년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 자택에서 제프리 엡스틴과 찍은 사진.


미성년자들을 성 착취한 제프리 엡스틴 사건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진영의 균열이 격화되며 공화당 의원들도 트럼프에 반기를 들고 있다. 또 엡스틴 사건을 수사한 검사가 돌연 해임돼, 의혹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제프리 엡스틴 수사 사건 자료를 공개하지 않겠다는 법무부의 결정을 비난하는 지지자들에 대해 “나의 과거 지지자들이 이 헛소리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며 ”나는 이런 지지를 더는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6개월 동안 아마 우리나라 역사상 어떤 대통령보다도 더 많은 성공을 했는데, 이 사람들은 가짜 뉴스와 성공에 굶주린 민주당원들의 강력한 선동으로 제프리 엡스틴 거짓말에 대해 말하기를 원한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그들은 지난 8년 동안 광적인 좌파들에게 사기당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했고, 아마 결코 얻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엡스틴 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결정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제 자신의 지지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부 지지자와의 결별도 감수하겠다는 것으로, 그의 대통령 취임 이후 지지층과의 가장 심각한 균열이다.



수많은 유력인사들과 교류한 백만장자 엡스틴은 미성년자 상습 성착취 혐의로 체포됐다가 2019년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의 범죄를 도왔던 여자친구 길레인 맥스웰은 2022년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날 법무부는 엡스틴과 맥스웰을 담당했던 맨해튼 연방지검의 모린 코미 검사를 돌연 해임했다. 코미 검사는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장의 딸이다. 지난 2016년 대선 때 코미 당시 연방수사국장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민간 이메일 사용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트럼프에게 공격받은 인물이다.



코미 검사의 해임 이유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이날 대통령의 권한을 규정한 헌법 제2조를 인용한 서한을 통해 해임을 통보받았다. 트럼프는 법무부가 ‘제프리 엡스틴 사건’과 관련해 ‘유명 인사 고객 명단’ 등 공개할 문건이 없다고 발표한 뒤, 엡스틴 범죄와 관련한 이른바 ‘엡스틴 파일’은 코미 전 국장, 조 바이든 및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다만, 전날 폴리티코의 보도에 따르면, 코미 검사는 엡스틴 수사 자료의 공개를 반대했다. 코미 검사는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와 관련된 민감한 사건에서는 특정 정보는 보호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프리 엡스틴과 그 파트너 길레인 맥스웰의 미성년자 성 착취를 담당한 모린 코미 검사.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장의 딸인 그는 엡스틴 사건을 둔 트럼프 진영의 분란이 커지던 16일 돌연 해임됐다. AP 연합뉴스

제프리 엡스틴과 그 파트너 길레인 맥스웰의 미성년자 성 착취를 담당한 모린 코미 검사.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장의 딸인 그는 엡스틴 사건을 둔 트럼프 진영의 분란이 커지던 16일 돌연 해임됐다. AP 연합뉴스


전날 의회에서는 공화당 의원들이 엡스틴 수사 자료 공개를 강제하는 조처를 발의해, 트럼프 진영의 균열은 더욱 격화됐다.



토머스 매시 공화당 하원의원은 하원 법사위에서 법안을 본 회의에 강제로 표결에 부치기 위한 절차인 ‘심사 배제’를 발의했다. 이는 특정 법안을 위원회에서 토론이나 보고서 없이도 본 회의에 강제로 표결에 회부할 수 있는 절차이며, 당의 원내 지도부 반대를 무력화하려고 진행하는 것이다. 엡스틴 관련 파일을 30일 이내에 온라인에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이 절차안은 하원에서 211대 210으로 부결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추가 표결을 예고했다.



의회에서 트럼프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던 마조리 그린 테일러를 비롯해 팀 버쳇, 에릭 벌리슨, 제프 드류 등 공화당 의원들이 지지했고, 민주당의 로 카나 의원도 동참했다. 발의한 매시 의원은 공화당에서 대표적인 반트럼프 의원인데, 그의 조처에 대표적인 친트럼프 의원이 그린 의원이 동참하고, 민주당 의원들까지 가세한 연대가 이뤄진 것이다. 트럼프의 지지층인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지도자인 그린 의원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에 “나는 자랑스럽게 심사배제를 지지하고 서명했다”며 “나는 결코 소아성애자나 엘리트 및 그 동아리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추가적인 수사 자료 공개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날 보수 언론인 베니 존슨과의 회견에서 엡스틴 수사 자료 공개와 관련해 “매우 민감한 사안이나 우리는 거기 있는 모든 것을 드러내고 사람들이 결정하게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이 문제와 관련해 질문받자, 정부는 내부고발자 및 피해자에 관한 민감한 정보들을 공개하는데 신중해야만 한다면서도 “우리는 투명성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트럼프 취임 이후 정국 주도권을 잃었던 민주당은 이 사안을 정국 반전의 호재로 보고 공세에 나섰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 사안과 관련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의 친구들이 수년 동안 엡스틴 고객 명단에 대해 거짓말을 했거나, 혹은 지금은 이를 은폐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미국인들은 진실을 알 자격이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법무부는 무엇을 숨기려 하는가?”라고 말했다.



억만장자로 미국 사교계의 거물이었던 엡스틴은 미성년자들을 자신의 파티에 데려와서 성 착취를 했다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지난 2019년 8월 교도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놓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엡스틴의 미성년 성 착취 파티에 다른 유명 인사들이 초대됐고, 이와 관련한 엡스틴 고객 명단이 있는데 수사 당국이 은폐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나왔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때 정부 내의 은밀한 권력 집단인 딥스테이트들이 엡스틴 고객 명단을 은폐하고 있다며, 자신이 집권하면 이를 공개하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7일 “엡스틴이 유명한 인사들을 협박했다는 신뢰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우리는 입건되지 않은 제3자들에 대한 수사를 촉발할 수 있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엡스틴이 자신의 성 착취 행위에 유명 인사들을 초대하고 이들의 명단을 작성해 협박해 왔다는 음모론은 근거가 없다는 발표이다. 하지만, 앞서 연방수사국에서는 패시 파텔 국장과 댄 번지노 부국장이 앞장서서 엡스틴 파일 존재를 주장해왔다.



법무부의 이런 발표에 마가 진영에서 엡스틴 파일 공개를 주장하던 이들은 딥스테이트가 트럼프 정부도 좌지우지하고, 트럼프도 딥스테이트에게 조종당하거나 야합했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일각에서는 트럼프도 엡스틴과 오래 전부터 교류해와서, 그의 사건에 연루됐을 수 있다는 지적이 일찌감치 나왔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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