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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광장] 이재명 대통령 외교의 입구와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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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광장] 이재명 대통령 외교의 입구와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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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종종 질문을 받곤 한다. 필자는 “대통령이 외교의 입구에 막 들어서고 있는데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오히려 격려가 필요한 때”라고 답한다. 이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관세 협상,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 참석 여부 등 당장 대응해야할 많은 난제에 직면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들은 늘 주변국들이 던지는 미끼와 덫의 유혹과 협박, 그리고 국내정치 분열이라는 함정에 포위된 채 외교를 시작하게 된다. 정권교체 시기에는 특히 국민 불안감이나 역사적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외신 뉴스들이 많아진다.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 논란이 그랬고,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에 관한 뉴스와 논란도 단골 메뉴가 됐다. 중국의 전승절 행사 초청도 일종의 덫이다. 그런 뉴스가 큰 정치적 논쟁을 일으키고 새 정부에 외교적 부담을 지운다. 이런 함정을 잘 극복하는 것이 모든 대통령이 짊어져야할 과제가 됐다.

한국에는 내부의 적들도 많다. 언론과 외교전문가들은 미중 양자택일 담론을 강요하고 당장 주한미군이 철수할 것 같이 과장하며 국민을 겁주는 것을 권위로 삼는다. 정치는 어떤 외교든 반대한다. 다행히 최근 미 의회에서 의결된 내년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주한미군 감축을 조건부로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돼 관련 논란을 잠재웠다. 대통령들의 외교는 늘 이전 정부의 외교를 부정하며 더 화려한 품재기로 시작된다. 그래서 입구는 화려하지만 출구는 초라했다. 외교 전문성을 경시하는 국내정치 욕망과 외교관료들의 기회주의적 안이함이 외교 실패와 비용을 초래한다. 북핵폐기 협상외교와 대북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도 그렇다. 일본의 사도금광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둘러싼 외교는 더 참담하다. 2015년 군함도로 일본에 당하고도 10년 뒤 사도금광으로 똑같이 당한다.

대통령의 외교 업적은 임기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지난 뒤에야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다. 외교는 연속성도 중요하지만 변화도 중요하다. 특히 한국 외교는 전문적 기술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 외교에서 외교부 장관이 전권을 가지고 외교를 이끌어가기는 어렵다. 장관의 역할은 대통령의 생각에 현실적 외교전략이 잘 반영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장관은 외교사안의 개념과 대응방안을 대통령과 국민에게 잘 설명하고, 과도한 기대나 잘못된 담론은 적시에 정리해야 한다.

지금은 한미정상회담이 늦어진다고 안달하는 여론을 다스리는 것이 당면 과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트럼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위세를 떨칠 때 재빨리 정상회담을 했지만 높은 관세를 맞고 정치적 곤경에 처했다. 어차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는 전세계에 가하는 ‘단체기합’이니 늦게 매를 맞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대통령실이 “전작권 환수 논의가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논란을 진정시킨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외교의 입구와 출구를 비슷하게 잘 관리한다는 것은 곧 여론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여론은 존중해야하지만 ‘중구’(衆口)에 휩쓸리는 외교가 반드시 민주주의 외교는 아니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