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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구여야 한다" …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 [ER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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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구여야 한다" …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 [ER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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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호 기자]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가 7월 16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했다.

원작 만화는 1970년에 시작해 1997년부터 영원히 휴재 중이다. TV판은 1973년부터 현재까지 방영 중이다. 극장판은 1980년 첫 극장판을 시작으로 2005년과 2021년을 빼고 빠짐없이 매해 개봉하며 45주년을 맞았다. 한국에서는 2008년 '마계대모험 7인의 마법사'를 시작으로 거의 매년 개봉하고 있다. '진구의 그림이야기'는 정식 넘버링으로는 44번째, 독립작품인 <스탠 바이 미> 시리즈를 포함하면 총 46번째 도라에몽 극장판이다.

어른들끼리 이야기지만...

어른들끼리 이야기지만, 솔직히 극장판 도라에몽은 '너무' 착하다. 싸움도 순하고, 갈등도 정답이 있다. 어떨 땐 TV판보다 더 착하다. 그래서 부모들에게는 고마운 시리즈다. 자극적이지 않아 안심하고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동시에 바로 그 '착함'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까지만 대부분 보고, 4학년을 넘기면 자연스럽게 찾지 않게 된다. 그렇게 도라에몽은 점점 잊히고 그러다가 사라진다.

울먹하다


그런데 이번 신작 '진구의 그림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기존에도 노스텔지어로 어른 관객의 감수성을 건드렸던 작품들은 있었다. 그게 극장판의 콘셉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그것과도 다르다. 상실, 이별, 성장. 누군가와 헤어지는 꿈을 꾸고, 깨어나서도 엉엉 울고 마는 그런 감정이다. 한마디로, '울먹'하다.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 진짜로?

이야기는 '진구의 그림'으로 시작한다. 여름방학 그림 그리기 숙제를 하던 진구가 오래된 그림 조각을 줍게 되고, 도라에몽이 꺼낸 '들어가는 라이트'를 사용해 친구들과 함께 그림 속 '아트리아' 세계로 들어간다. 진구와 도라에몽은 그림 속에서 갇혀 있던 클레어 공주를 데리고 실제 '아트리아' 왕국으로 탈출한다. 그러면서 특별한 색감을 만들어 주는 보석 '아트리아 블루'를 찾아 나서고, 동시에 세계 멸망 예언을 마주한다.

보통 "과연 도라에몽과 친구들은 전설을 뒤집고 세계를 구할 수 있을까?"라고 물으며 예고편이 끝나게 마련이다. 아무리 예고편이라지만, 하나 마나한 질문인 게, 설마 도라에몽인데 세계를 못 구할까? 보나 마나 세계는 구해진다. 그건 애들도 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말하지만, 다르다. 지켜낼 것이라는 그 안도감을 후반부에 불안감으로 바꾼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불안정한 감정으로 전환된다. '어차피 잘될 거야'라는 예측을 흔들 만큼, 적은 강력하고 전개는 무겁다.

진구가 살면서 겪는 최강 빌런은...

이번 적수는 실제로 역대 최고다. 빌런 특유의 전후 사정도 특별한 사연도 없다. 도라에몽 시리즈이기 때문에 이런 빌런은 더 설득력 있다. 부모 딴에는 아무리 '논리적인 상황'에서 화를 내도, 잘 놀고 있던 아이들에게는 '전후 사정 없는 재난'이나 마찬가지다.

최종 빌런과 전투 장면은 연출 면에서 국내에 개봉한 극장판 15편 전체를 통틀어서도, 그리고 다른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훌륭하다. 도라에몽이라는 이름을 달고서도 아동 장르를 벗어난 액션 영화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따라간 부모 관객도 그 장면에서만큼은 허리 세우고 볼 게 틀림없다.

게다가 빌런은 '절망'이라는 감정을 상징한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세계를 견디려는 아이들의 감정이 차곡차곡 쌓이고, 그것이 마지막 순간에 터진다. 아마도 이 장면들에서 유아 관객들은 울어버릴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제법 무섭다. 이런 거다. 아이들이 무섭게 느끼는 건 흉측하거나 잔인한 장면이 아니라 분위기다. 연출로 분위기를 무겁게 눌러버리면 그 무거운 기운이 전달되기 마련이고, 어린이 관객은 그런 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못말리는 어린양 숀' 같은 작품도 아이들은 무섭게 느낀다.)

자, 여기서 생각해 볼 게 있다. 극장판 '45년 짬밥'의 제작진이 그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이런 방식으로 밀어붙였다는 건 뭘까? '이제는 한 번쯤 그래도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무게가 결코 부정적인 자극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이런 류의 공포는 꽤 오랫동안 남게 마련이지만, 그런 감정은 낯선 세계에 한 발 나아가게 만든다. 그게 도라에몽에서 느꼈다면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그렇듯 '진구의 그림이야기'는 진구를 성장시킨다.

진구는 늘 도라에몽의 도구를 한 번 쓰고 잊어버린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다가, 금세 흥미를 잃고 다른 걸 찾는 아이들의 모습과도 같다.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진구는 '잃어버림'을 알게 된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못마땅했던 진구는 아빠의 말을 듣고 자기만의 그림을 인정한다. '잃어버림'을 알게 된 동시에 아빠는 진구에게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아니 '잃어버려선 안 되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그림이라는 소재 자체도 잘 활용된다. 영화는 세계적인 명화를 오마주하며 시각적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아이들이 영화를 본 뒤 해당 작품들을 접할 때 친숙하게 느끼게끔 돕는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우유 따르는 여인' 등이 장면 곳곳에 등장한다.

그런데 제작진이 색감이나 장면에 끼워 맞춰 고른 작품들이 아니다. 자신만의 색을 끝까지 붙들었던 이들이 남긴 그림들이다.

그 그림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진구의 이야기에서 멈춰 선다. 진구 역시 그런 '자기 그림'을 찾은 것이다.

'당신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 도라에몽이 우리에게 오래전부터 건네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당신은 진구여야만 한다.
You must COME BACK home.

도라에몽 극장판 시리즈는 올해로 극장판 45주년을 맞았다. '진구의 그림이야기'는 그 상징적인 숫자에 어울리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여전히 착하지만 가볍지 않고, 안전하지만 평이하지 않다. 초등학교 3학년은 물론, 5~6학년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성장한 아이일수록 더 오래 기억하게 될 작품이다. 그러니까 물어보자. 당신은 얼마나 성장한 진구인가?

1964년생 진구는 여전히 초등학생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방학, 그는 아주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본 '진구보다 더 어린' 어른 관객들은 잊어버렸던 꿈, 잃어버렸던 자신, '도라에몽'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어른이 된 당신은 혹시 '남의 꿈'이나 이루어 주려고 애쓰고 있는가?

아니, 당신은 진구여야 한다. 당신의 도라에몽들은 당신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무릎에 앉혀 영화를 보여줬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은 그러니 진구여야 한다. 잃어버린 색을 찾자. 당신의 그림을 그리자. 당신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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