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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실용주의’ 정부의 사람 찾는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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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실용주의’ 정부의 사람 찾는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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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이래 지금까지 교육부 장관은 모두 28명이었다. 그 가운데 유은혜 장관처럼 3년 이상 재임하거나 안병영, 이주호 장관처럼 두 정부에 걸쳐서 재등용된 장관도 있지만, 장관직을 초단기로 사임하거나 후보자 자격 단계에서 사퇴한 분도 6명이나 있다. 이 중 3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였고, 또 다른 3명은 박근혜, 윤석열 정부 때였다. 어떤 경우이건, 조기 사퇴자가 나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중요한 직책에 인재를 중용하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일이며, 문제가 두드러졌을 때 빨리 결단을 내리는 일도 좋은 정부의 덕목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지명된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도 발빠른 결심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논란이 되는 부분은 특히 논문 표절에 집중되고 있으며, 학자로서의 기본적 태도와 도덕성의 문제는 결코 작은 흠결이라고 하기 어렵다. 청문회 이후 조만간 자진 사퇴 혹은 지명 철회 등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 정상적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후보자가 과연 교육부 장관으로서의 정책 수립과 집행 역량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다. 교육부 장관에게 기대되는 능력이란 어떤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우선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를 겸하고 있는 부분에서 찾아야 한다. 지난 정부까지 교육부 장관은 단순히 학교와 교사 정책을 총괄하는 위치로만 이해됐고, 교육과 함께 사회정책 전반을 융합적으로 조정하는 기능은 간과됐다. 반면, 지금 당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복잡한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부처 간 장벽을 허물고 융합적·복합적으로 문제를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교육부 안에 갇혀 있었고, 그사이 교육 문제는 안으로 곪아가면서 옴짝달싹 못하는 지경이 됐다. 이런 한계는 고용정책이나 복지정책도 마찬가지였다.

교육 문제의 대부분은 내부의 교육 상황을 얽매는 외부 지형의 맥락적·외연적 특성 때문에 나타난다. 실타래를 풀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교육이 놓인 사회맥락적 제한성을 간파하고 여기에 얽혀 있는 관련 정책들, 예컨대 입시 문제, 고용구조, 복지제도, 사회 양극화 문제 등을 동시에 풀어갈 포괄적 지혜와 리더십이 필요하다.

나아가, 미래 교육을 장착한 새로운 한국형 학교 체계, 즉 학교 중심 교육체제를 넘어 새롭게 정착시켜야 하는 평생학습 기반의 새로운 한국 교육체제가 필요하다. 그 안에는 학교나 대학 차원의 문제 이외에도 학교와 노동시장, 사회 양극화, 4060세대의 대규모 경력 전환, 역사교육과 민주주의 학습, 인공지능 디지털 학습 등 전 사회적 문제들이 함께 포함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교육-노동-복지-과학의 복잡계를 연결하는 ‘미래적으로 확장된 교육 생태계’를 교육개혁의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요청된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부터 이런 일을 하라고 준비한 것이 국가교육위원회이지만 그 조직 체계와 기능 방식에서 볼 때 정파성을 떠나 합의된 미래를 구성하기는 어렵다. 구조적으로 실패작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오히려 교육부 안에 실질적 싱크탱크를 내장하고 조금씩 현안을 밀고 나가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래서 교육부 장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한편 이번처럼 대학 총장 출신을 지명하는 것은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대학 총장 경험은 주로 대학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는 데 집중돼 있으며, 근본적인 개혁을 위해 자신의 몸에 칼을 대려고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막중한 역할을 맡기에는 국립대 총장의 경험이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계획이 지역거점국립대들의 이익이 직결된 사업이라는 점과 동시에 바로 그 대학들을 철저하게 해체하고 다시 디자인하는 사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치 검찰이 자기 조직을 스스로 개선하기 어렵듯이 지방 국립대 총장 출신 장관은 지역거점대학에 대해 제대로 된 수술을 하기 어렵다.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변화는 김영삼 대통령 때 실시된 5·31 교육개혁이다. 이에 대한 비판이 많기는 하지만 어쨌든 당시의 교육개혁은 그가 펼쳤던 강단 있는 변화들, 예컨대 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5·31 개혁에 버금가는 교육의 대규모 구조 변화가 필요하며, 이러한 교육개혁은 검찰개혁, 연금개혁, 사회 양극화 해소만큼이나 시급하다. 이 일을 감당할 만한 분이 정말로 대한민국에 있지 않다고는 믿지 않는다. 다만 정파적 차원에서 추천되지 않을 뿐이다. 더 눈을 크게 뜨고 ‘실용주의 정부’의 사람 찾는 실력을 보여주시라.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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