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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이이의 걱정, 우리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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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이이의 걱정, 우리의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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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도 집권 초기부터 개혁을 말했다. 검색해보니 국무회의에서 “의료, 연금, 노동, 교육 4대 개혁이 곧 민생”이라는 커다란 글씨를 배경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발언하는 사진을 담은 2024년 10월29일자 기사가 뜬다. 많이들 그랬겠지만 지난 정부에서 국정 개혁이 실제로 이뤄지리라 예상하지는 않았다. 국정 개혁은 국정 최고 권력자가 단지 주장하거나 명령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게 쉬우면 개혁을 이루지 못하는 나라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드물다. 개혁은커녕 전임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정부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기초적 이해도 갖지 못했다.

지난 7월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위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에 서명했다. 소위 ‘BBB’라 불리는 이 법의 골간은 각종 세금 감면, 복지·공공부문 예산 삭감, 군사·국경·이민 분야 예산 증액을 내용으로 한다. 미국 의회예산국은 이 법으로 미국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BBB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다. BBB로 인해 더해질 미국의 국가부채를 상당 정도 관세로 충당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보통의 정부라면 피할 수 없는 가장 고통스러운 세금 개혁정책을 다른 나라에 대한 관세로 해결하려는 무리한 시도이다. 오직 세계적 패권국 미국만 시도할 수 있지만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은 정책이다.

조선은 연산군부터 명종 때까지 장기간 국정 혼란을 겪었다. 중간에 국정 개혁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혼란의 장기화 끝에 심지어 정상적 국정운영이 어떤 모습인지를 국정 참여자들도 모르게 되는 형편이 됐다. 선조의 즉위로 사림이 의욕적으로 집권하게 되지만 국정의 핵심을 모르기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율곡 이이가 마침내 국정운영의 기본 철학과 얼개를 제시했다. 그가 선조 7년 1월에 발표한 그 유명한 ‘만언봉사’가 그것이다. 이후 조선의 지식인들과 관리들이 조선에서 경세론, 즉 국정운영론을 처음 천명한 이로 이이를 드는 이유이다.

이이는 국정에서 걱정되는 7가지를 제시했다. 그중 6번째로 “여러 국가 정책들에 백성을 구제하는 실상이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 “군자가 조정에 진출하고 신하가 의논을 내더라도 민생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서 어떤 사람은 벼슬이 높아져서 출세했으니 부러운 일이라고나 할 뿐, 어떤 사람이 등용된 덕분에 그 혜택이 백성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비유하건대 (국정의 혼란은) 마치 만 칸이나 되는 큰 집을 오래도록 수리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크게는 들보에서 작게는 서까래에 이르기까지 썩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서로 떠받치며 지탱하여 근근이 하루하루를 보내고는 있지만 동쪽을 수리하려 하면 서쪽이 기울고 남쪽을 수리하려 하면 북쪽이 기울어 무너져버릴 형편입니다. 여러 목수들이 둘러서서 구경만 하고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형편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대로 방치하고 수리하지 않으면 날로 더욱 썩고 기울어져 장차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니, 오늘날의 형세가 이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새 정부가 들어서서 한 달 남짓 시간이 흘렀다. 새 정부는 3중의 과제를 마주하는 듯이 보인다. 1차로 궤도에서 이탈했던 국정운영을 정상화해야 할 것이고, 2차로 윤석열 정부도 제기했던 국정 개혁 과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 거기에 미국과의 힘겨운 관세 협상을 앞두고 있다. 일상적인 국정운영은 곧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겠지만 나머지 두 과제는 누가 보아도 어려운 과제다. 정부만의 노력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이 과제 해결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 걱정스럽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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