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 / 사진=팽현준 기자 |
[용인=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우리 선수들이 더 잘했다고 생각한다"
안방에서 숙명의 라이벌에게 패해 우승 트로피를 내준 팀의 사령탑의 말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5일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남자부 최종전에서 일본에 0-1로 졌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2승1패(승점 6)를 기록, 2위로 대회를 마무리 지었다. 반면 일본은 3전 전승(승점 9)을 기록하며 지난 2022년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한국 축구에게는 뼈아픈 패배였다. 한일전 연패의 늪을 끊지 못하며 3연패 수렁에 빠졌다. 또한 안방에서 라이벌 팀이 우승 세리머니를 펼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한국 축구 팬들의 자존심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그러나 정작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홍명보 감독은 상처 입은 팬들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
홍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전체적으로 양 팀을 놓고 봤을 때 우리 선수들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가진 장점을 많이 발휘하진 못했다"며 "볼 점유율, 슈팅 수 등 모든 수치에서 우리가 앞섰다"고 자평했다.
이어 "물론 결과를 내지 못한 것은 아쉽고 팬들에게 미안하지만, 희망을 본 경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홍 감독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홍 감독의 말처럼 한국은 이날 경기에서 슈팅 수(9-1), 볼 점유율(59%-41%), 패스횟수(465회-345회) 등에서 일본 보다 앞섰다.
다만 이날 경기는 안방에서 열린 홈팬들이 지켜보는 경기였고, 우승이 걸린 경기였다. 저런 숫자들보다 결과가 훨씬 더 중요했다. 홈에서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한 채 라이벌 팀에게 우승 트로피를 헌납한 상황에서 상대 팀은 깎아내린 채 자화자찬하는 홍 감독의 발언은 경기 결과 만큼이나 축구팬들의 분통이 터지게 했다.
반면 일본을 우승으로 이끈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기자회견은 훨씬 더 성숙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초반부터 매우 힘들었고 한국의 압박을 받으면서 선수들이 상황마다 격렬하고 치열하지만 끈기 있게 싸워왔다. 두 팀 모두 서로 가진 퀄리티를 발휘했다. 우리 선수들은 수비하면서도 공격을 시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고, 회복력을 발휘하면서 우리 팀이 한국 팀 개개인의 능력과 팀으로서의 파워를 능가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한국 대표팀에 대해 존중을 표하면서도, 승리팀으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낸 발언이었다.
이후에도 모리야스 감독은 "한국은 피지컬적인 면에서 매우 강력한 팀이다. 강력한 플레이를 구사하면서 테크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우리가 오늘 이겼고 한일전 3연승을 거뒀지만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였다"며 한국을 추켜 올렸고, "일본과 한국은 좋은 라이벌이자 동료로 아시아를 이끌어 나가고 세계에서 이기기 위해서 서로 절차탁마하며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함께 발전해 나갈 것을 강조했다.
앞서 홍명보 감독의 발언을 들은 이후 모리야스 감독의 발언을 들은 한국 취재진들은 민망함을 느껴야 했다.
이날 한국 축구는 그라운드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일본에 졌다.
[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sports@st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