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1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안컵 대회에 앞서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선수들이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홍명보 감독)
“라이벌과 동료로 협력하자.”(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감독)
1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5 동아시안컵 한-일전 앞뒤로 두 나라 대표팀 감독이 한 말이다. 홍 감독은 이겨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선수들이 더 중요한 “전술과 경기력”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랐다.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냉정하자는 뜻이다. 모리야스 감독도 “세계 강호들과 친선경기를 잡는 게 힘들다. 서로 절차탁마해(갈고 닦아) 세계를 향해 함께 도전하자”고 강조했다. 한-일전 맞수 대결을 활용하자는 의미다.
한-일전은 1953년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월드컵(1954) 아시아 예선 원정 두 경기(1승1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82회(한국의 42승23무17패) 이뤄졌다. “지면 현해탄(대한해협)에 빠져라”는 설이 나올 정도로 초창기 한국팀의 각오는 비장했다.
그로부터 70년 안팎이 지난 시점에서도 한-일전의 후폭풍은 있다. 2021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일 친선 경기에서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이 패배(0-3)하자,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내야 했다. 2011년 3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한-일 평가전에서 패배(0-3)한 조광래 감독은 경질되는 아픔을 겪었다.
한-일전 결과에 따라 두 나라 감독이 입는 내상이 크다 보니, 한동안 이어지던 한-일간의 교류전은 매우 뜨문뜨문해졌다. 두 나라는 1972~1991년 15차례의 정기 교류전을 펼쳤고, 1997~2010년 8차례의 친선 경기를 했다.
하지만 이후 횟수는 2회(2011, 2021)로 줄었고, 아시안컵이나 월드컵 예선 등 공식 경기에서나 대결하고 있다. 전임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일본과의 친선전에 적극적인 뜻을 품고 있었지만, 한국과 격차를 벌린 일본이 쉽게 응하지 않았다.
한-일 축구의 접점이 다시 확장되고 있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현역 시절 일본 프로축구 무대에서 뛰었던 홍명보와 모리야스 감독은 최근 교도통신이 주최한 한-일 수교 60년 기념 대담에서 “함께 레벨 업하자”(모리야스) “새로운 미래를 열자”(홍명보)며 덕담을 주고 받았다.
이호재가 15일 경기도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동아시안컵 일본전에서 발리슛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실용적 차원에서 한국은 일본과의 교류가 나쁘지 않다. 일본은 1990년대부터 일관된 비전 아래 대표팀 전력을 강화했다. 15일 동아시안컵 한-일전 전반에 드러났듯이, 일본 선수들의 기본기와 탈압박 능력은 한국보다 한 수 위다. 선수층이 얕은 한국은 일본과의 대결을 통해 자극을 받을 수 있다. 동아시안컵 대회 기간 한-일 축구협회의 전문가들이 기술·대표팀 운영 철학을 공유한 것은 상징적인 움직임이다.
홍 감독은 “예전에는 일본에 지면 안 된다는 게 있었다. 나도 그렇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게 다는 아니라고 느꼈다”고 했다. 세계 축구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한-일전 승패에 일희일비하는 시야에서 탈피해야 한다. 일본이 세계 어떤 팀을 만나도 이겨내는 힘을 갖고 있다면, 한국은 그것을 보고 배우고 따라잡아야 한다. 그것이 서로 윈-윈하는 라이벌이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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