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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정책의 시대…‘지역 혁신기업’ 위한 공공 투자금융 투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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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정책의 시대…‘지역 혁신기업’ 위한 공공 투자금융 투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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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광주시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광주 군공항 이전 관련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25일 광주시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광주 군공항 이전 관련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세계적 트렌드에 맞춰서 한국에도 산업정책의 시대가 오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인공지능 3강, 벤처 스타트업 육성 등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미래 먹거리 개척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중소 제조업의 고도화,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수도권 집중이라는 국가적 비효율을 지역산업전략과 함께 고려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산업정책의 원천인 연구개발의 기초를 다지는 차원에서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심의회는 내년도 공공 연구개발(R&D)을 올해 대비 5.1% 증액한 26조1천억원 규모로 잠정 결정했다. 윤석열 정부의 ‘입틀막’ 예산 삭감을 넘어 다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가운데 예산 대비 최대 투자 규모로 복귀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타운홀 미팅에서 과학기술인들의 처우 개선에 대해 분명하게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과 각급 연구소의 연구만으로 미래 먹거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연구의 성과로 창업을 하거나, 기술을 상용화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야 최종적인 결실로 볼 수 있다.





인재뿐만 아니라 투자금도 부족





재원을 마련하고 기업과 기금을 매칭하여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내는 공공 투자의 방식을 두고 여러 안이 경합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규모와 입지에 따라 투자 유치와 자금 조달 관점에서 다양한 편차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 유보금의 활용, 회사채 발행 등 다양한 옵션을 놓고 모든 단위의 금융적 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면, 신생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은 민간 벤처캐피털과 정책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에 소재한 기업은 벤처캐피털을 통한 투자 관점에서 약점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다양한 지역에서 창업과 혁신의 씨앗을 일구는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은 투자금과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신생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투자금융 활용은 입지한 지역의 투자금융 인프라 및 투자 유치 경험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인공지능 분야의 경우 대통령실에 인공지능(AI) 미래수석을 임명하고, 예산과 민간 투자를 통해 100조원가량의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고 했는데, 금융 인프라와 연결된 서울과 판교의 인공지능 관련 기업들을 제외하면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투자금융에서 소외된 부산·울산·경남 등 동남권 제조업 벨트에서 제조 인공지능이나 제조업 고도화를 위한 투자 기금을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유치하기 위해 기댈 수 있는 것은 공공의 정책금융 뿐이다.



호남의 산업정책인 에너지 고속도로, RE100 산단 조성을 위한 기금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이재명 대통령의 호남권 타운홀 미팅에서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들이 구체적이지 못한 아이디어를 낸다고 여론의 질타를 받았지만, 다양한 산업에 필요한 투자 유치와 프로젝트 진행 경험과 성공 사례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지역의 산업전략에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있는 투자금융이 조성되어야 할 강력한 근거가 된다.



성공한 비수도권의 지역전략산업 프로젝트는 손을 꼽는다. 1962년 울산공업센터 유치, 뒤이은 1970년대의 울산의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산업 클러스터 구축과 남동임해 공업지구 조성이 커 보이지만, 이는 국가가 하향식으로 정한 것에 가깝다. 그 뒤로는 1990년대 충남 서산의 대산산단 구축과 충북 청주의 반도체 클러스터 정도에 그친다. 호남의 경우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GM대우 군산공장,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현대인프라코어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마찬가지로 대기업의 분공장 유치 수준이다.





비수도권에서 성장한 스타트업 있나





공장 말고 구상(R&D, 설계, 마케팅) 기능을 함께 유치한 지역 전략산업 프로젝트는 희소하다. 지금까지는 지자체가 대기업의 분공장을 유치하면 고용에 큰 도움이 됐으나, 이제는 공장의 생산직 노동에 대한 구직 수요가 없다시피 하니 그마저도 성공하기 어렵다. 궁극적으로 비수도권에서 자생적으로 스타트업을 성장시켜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성장시켜 본 경험은 제조업이든 아이티(IT)산업이든 전무하다시피 한 셈이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대기업과 산단 유치만 목매는 지자체의 모습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지역에 절실한 것은 운영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은행과 새마을금고를 넘어, 새로 시작한 벤처기업이 대기업이 될 때까지 든든하게 투자받을 수 있는 공공투자금융의 구축과 동시에 지자체-기업-투자금융이 유니콘 기업 육성에 성공해 본 경험일 것이다.



현재 공공 투자금융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잘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며, 아직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국책은행의 경우, 한국은행의 외환 보유고를 활용한 한국투자공사(KIC)의 벤처투자펀드(KVG)가 매년 3천억원 내외로 조성되지만, 그 대상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들이다. 산업은행은 올해 한국 스타트업 기업에 직접 투자 5250억원, 간접 투자 1조1700억원을 포함한 1조7천억원의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지역 벤처 투자금융의 경우, 지난해 중기부, 모태펀드, 부산시, 산업은행이 함께 2600억원을 출자한 부산 미래성장 벤처펀드나 경남-산업은행 지역혁신 벤처펀드(647억원), 부산 산업전환 녹색펀드 조성(연 500원 규모) 등 지역의 벤처·중소기업으로 향하는 기금들이 생겼는데, 이는 산업은행 동남권투자금융센터가 설립된 까닭이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비수도권 기업에 270억원 직접투자를 했고, 창업육성 플랫폼인 ‘IBK창공’을 서울, 부산, 울산, 대전, 광주에 운영하지만 아직은 민간 벤처 캐피털과 매칭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친다. 현재의 투자 생태계의 관행을 고려하면 절대다수의 투자집행이 민간 자금 조달이 용이한 수도권으로 더 몰리기 쉽다.






적극적인 지역 공공투자 활성화 방안은





이런 이유로 적극적인 산업정책의 집행과 지역 산업에 밀착한 공공투자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합의 아래 몇 가지 방안을 강구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산업은행의 지역본부를 강화하는 안, 아예 산업은행을 제조업 특화 산업전략을 수행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동남권으로 보내는 안, 기업은행을 다시금 국책은행으로 재편하는 안 등이 제시됐다. 하지만 기존 조직의 고유한 경로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많다.



이에 최근 지역별 공사를 통한 투자금융을 활성화하자는 안이 대두하고 있다. 4월28일, 민주당 장철민 의원은 충청권산업투자 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자본금 3조원 규모로,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특화된 충청권 산업의 개발과 육성을 위한 자금을 공급하고 관리하는 투자공사를 초광역 단위에 설립하겠다는 안이다. 6월2일에는 민주당 민병덕 의원이 역시 동남권 투자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두 안은 기금운영의 키를 산업부와 금융위원회 중 누가 잡을 것이냐에 대한 이견이 있긴 하지만, 기존 공공 투자금융의 형태로 지역을 고려한 신산업 투자가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주체와 기관으로의 재구성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즉 국책 금융기관의 지역 이전, 공공 투자 주체(국책은행, 모태펀드, 투자공사 등)의 정리, 병렬적으로 운영되는 투자기금의 정리 등을 분명한 원칙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인프라 은행, 독일의 재건은행, 스위스의 광역공립은행 등의 사례도 살펴볼 만 하다.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인내자본으로 지역의 스타트업이 수익을 올릴 때까지 지원하고 이후 수익을 배분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K-엔비디아’와 유사한 형태의 유럽연합 모델도 참조해 볼 수도 있겠다.





5극 3특 투자 생태계 만들기





더불어 광역권 단위로 스타트업의 발굴, 멘토링, 사업의 확장을 지근거리에서 지원하는 소프트웨어 측면의 인큐베이터와 액셀러레이터 생태계 구축이 투자금융 기금조성과 동반되어야만 한다. 수도권에서 맛볼 수 있는 투자 기관, 기금이라는 인프라가 지역에 대등하게 구축되지 않으면 지역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이 스케일업을 통해 유니콘 기업으로 육성되는 사례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동남권이 희망하는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자산공사 등의 부산 이전도 중요하지만, 혁신 기업 생태계 구축의 촘촘한 설계 역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동남권만큼의 산업 여건이 불비한 권역까지 수도권과 대등한 ‘5극 3특’의 하나의 극점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만큼이나 투자 생태계를 잘 설계할 필요가 있다.



재벌 대기업을 선정해 산단을 조성하고 관치금융과 차관으로 집중 육성한 뒤 50년간 대규모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성장을 만들어 냈던 박정희 시대의 발전국가 산업정책은 더는 가능하지 않다. 더불어 수도권 집중의 맥락, 성숙도가 올라간 산업의 다양한 수요,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요구와 인공지능 전환과 그린 전환을 요구받는 국가적 미션의 존재 등을 고려할 때, 21세기 한국에 맞는 산업정책은 달라야만 한다. 지역의 혁신 스타트업과 성장하려는 중소기업을 유니콘으로 만들어 내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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