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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실각설’과 한-미 극우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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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실각설’과 한-미 극우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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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을 방문한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시작하며 환영하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중국을 방문한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시작하며 환영하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2025년 한국인들이 중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려면, 들불처럼 번진 ‘시진핑 실각설’의 막전막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부터 국외의 ‘반중·반공산당’ 유튜브를 중심으로 시작된 소문은 올 들어 한국의 유튜브에서 맹렬하게 확산하다가 이제는 주요 언론들에서도 가장 뜨거운 중국 관련 ‘뉴스’로 등장했다. 중국군 2인자인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쿠데타를 일으켜 시진핑 국가주석의 군 통수권을 빼앗았고, 후진타오 전 주석과 원자바오 전 총리 등 당 원로들이 정치권력도 장악해 시 주석은 이미 실권 없는 ‘허수아비 지도자’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지난 5월 당 원로와 퇴역 군 장성들까지 참석한 공산당 정치국 비밀 확대회의가 열려 다음달 27~30일 공산당 4중전회에서 시진핑 주석의 퇴진을 공식 결정하기로 했다고도 주장한다.



중국 최고 지도부 내부의 동향은 외부에서 파악할 수 없는 블랙박스다. 중국 권력투쟁을 낱낱이 들여다보듯 드라마처럼 그려낸 ‘시진핑 실각설’은 호기심을 자극해 조회 수를 높인다. 하지만, 그 내용은 근거가 불분명하고 일부 현상을 과장해 짜맞춘 것이라고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한다. 오랫동안 중국 정치를 연구해온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퍼시픽 리포트’ 최신호에 쓴 글에서 시진핑 주석이 중국공산당의 강력한 정풍운동과 15차 5개년 계획 수립을 총괄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면서 관세, 첨단기술 등에 대한 담판을 지휘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을 방문해 정상외교를 하는 등 권력이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치평론가인 덩위원도 지난 7일 ‘도이치 벨레’에 쓴 글에서 시진핑이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다면 당의 공식 선전에서 반드시 변화가 나타나야 하지만 그런 조짐은 없고, 시진핑 권력 약화설의 증거라며 제시되는 주장들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시진핑이 지난달 초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을 만날 때 딸 시밍저가 동행해 가족 만찬 형식으로 진행한 것을 두고 국외의 반시진핑 세력이 ‘권력을 잃은 시진핑이 딸의 후사를 루카셴코에게 부탁했다’고 주장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아닌 벨라루스 대통령에게 후사를 부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말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을 기리는 기념관이 세워졌는데, ‘시중쉰 기념관’이 아닌 ‘관중혁명기념관’으로 개관한 것은 시진핑이 권력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덩위원은 시중쉰 사망 23주기에 맞춰 시중쉰의 묘 옆에 기념관을 세운 것을 볼 때 시진핑 권력 약화의 흔적은 전혀 없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도 여러 해석의 여지가 있는 상황을 시진핑 실각설에 단정적으로 끼워 맞추면서, 음모론은 계속 부풀어 오른다. 중국 군부에서 시진핑이 발탁한 먀오화 정치공작부 주임, 허웨위둥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이 잇따라 실각해 중앙군사위원회 7명 가운데 3명이 공석이 된 상황은 시진핑 권력 이상설의 가장 주요한 근거로 거론된다. 하지만, ‘(미국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군 내부 부패와 파벌을 척결하려는 시진핑의 결의가 단호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4중전회에서 중앙군사위 인사를 지켜봐야 할 사안이다.



지난달 말 중국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당 중앙의 정책결정의사협조기구 업무조례’를 심의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퇴임한 원로 지도자들이 정책 결정에 간여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 결정 기구가 설립된 것처럼 단정하는 주장도 난무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시진핑 주석이 퇴역 장성들을 초청한 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시 주석 뒤쪽이 중국군 2인자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이다. 베이징/신화통신 연합뉴스

지난해 1월 시진핑 주석이 퇴역 장성들을 초청한 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시 주석 뒤쪽이 중국군 2인자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이다. 베이징/신화통신 연합뉴스


‘반시진핑 쿠데타설’이나 ‘시진핑 실각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가 열리기 직전인 2022년 9월 말에도 시 주석이 쿠데타로 축출되어 가택연금 상태라는 소문이 확산한 적이 있다. 실제로 열린 20차 당대회에서는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고 최고 지도부가 시 주석의 충성파들로만 구성돼 시 주석의 권력이 역대 최고로 강화됐다.



2022년에 이어 2024~2025년에도 되풀이된 시진핑 실각설과 반시진핑 쿠데타설 가짜뉴스는 명백히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지고 유포된 것으로 보인다. ‘반중국공산당’ 성향이 뚜렷한 파룬궁 관련 매체인 에포크타임스나 엔디티(NDT)에서 시작돼 미국·대만의 반중 유튜브 채널과 ‘전문가’들을 거쳐 확산했다. 그런데 올해 ‘시진핑 실각설’은 유독 미국과 한국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든 창, 마이클 플린 등 시진핑 실각설을 앞장서 주장하는 미국 내 인사들은 중국 붕괴론을 비롯해 ‘중국의 한국 선거 개입설’을 주장하고 윤석열을 지지했던 이들이다. 이들을 비롯해 미국 내 반중국 논객들이 시진핑 권력 이상설을 주장하면, 국내에서 와이타임즈를 비롯해 여러 극우 유튜브 채널들이 이들의 주장을 가져다 확산시키고 증폭시키는 ‘무한 순환 루프’가 작동하고 있다. ‘중국 선거 개입설’로 대표되는 극우 혐중 음모론의 토양과 채널이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윤석열 계엄령’을 고리로 미국과 한국 극우세력이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 결과다. 일본에서 아주 드물게 관련 보도가 나오기는 했지만 ‘시진핑 실각설’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거의 없는 상황과도 대비된다.



장기 집권 중인 시진핑의 권력 행사 방식에 ‘변화’의 신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중국 지도부가 경제와 개혁개방을 이전보다 훨씬 강조하는 ‘유화노선’ 쪽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눈에 띈다. 그 직전인 7월 중국공산당 20기 3중전회와 8월 베이다이허 회의를 거치면서 이런 변화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이 주도한 엄격한 제로코로나 봉쇄 정책으로 타격을 입은 중국 민간 경제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첨단기술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현실이지만 한편에서 실업, 저조한 민간 소비와 디플레이션, 과잉 생산, 부동산 침체 등에 대한 불만과 불안의 아우성도 커졌다. 민생 경제의 어려움 속에서 시 주석도 안보 일변도가 아닌 성장을 강조하는 쪽으로 정책 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변화는 ‘리창 총리의 부상’이다. 리창 총리는 전임자 리커창 총리에 비해 훨씬 존재감이 약한 ‘시진핑 주석의 그림자’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그 존재감이 주목받고 있다. 리창 총리는 이달 초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 시진핑 주석을 대신해 참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중국 정치 분석가인 닐 토머스는 지난달 포린폴리시에 쓴 ‘리창의 조용한 부상’에서 시진핑 주석이 최근 경제 분야를 리창 총리에게 위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최종 의사 결정권은 여전히 시 주석이 장악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정책 결정은 믿을 수 있는 충성파 총리에게 맡기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72살의 시 주석이 이전처럼 경제·외교·안보의 실무까지 직접 챙기는 것은 무리인 상황에서 부담을 덜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리창 총리가 책임을 지도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창 총리의 권한은 철저히 시 주석에 종속되어 있다. 브릭스 정상회의에 리창 총리가 참석하고 있던 지난 7일 인민일보 1면에 리창 총리와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손을 맞잡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과 기사가 실렸지만, 머리기사는 ‘시진핑 생태문명 선집’ 출간 소식이다. 시진핑 사상을 깊이 학습하고 시진핑을 핵심으로 하는 당의 단결을 강조하는 내용이 1면 머리기사와 2면 전면에 걸쳐 담겨 있다. 시 주석의 일인자 지위가 확고함을 보여준다.



지난 7일 인민일보 1면, 리창 총리의 브릭스 정상회의 참석 기사 위에 시진핑 생태문명 선집 발간 소식이 머리기사로 실려 있다.

지난 7일 인민일보 1면, 리창 총리의 브릭스 정상회의 참석 기사 위에 시진핑 생태문명 선집 발간 소식이 머리기사로 실려 있다.


시 주석의 건강은 주목해야 할 변수일 수 있다. 이미 13년 동안 당·정·군의 절대 권력을 쥐고 10여개 위원회를 직접 관할하면서 ‘격무’를 해온 시 주석은 점점 더 노쇠해갈 것이고, 그의 건강과 후계 문제가 중국 정국의 주요 이슈로 계속 부상할 것이다. 시 주석이 올해 처음으로 브릭스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리창 총리를 대신 참석시키면서 건강 이상설이 재점화하기도 했다. 미국과 대만에서 시 주석이 심장병이나 뇌졸중 등을 앓았다는 주장이 확산했다. 2027년 21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4연임을 할지, 어떤 후계구도를 반영해 최고 지도부를 구성할지 등이 뜨거운 문제가 되겠지만, 지금 수군대는 소문처럼 시 주석의 급작스러운 권력 상실의 형태는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 전반이 ‘시진핑 실각설’에 과몰입하는 것은 위험 신호다. 보고 싶지 않은 중국의 현실을 회피하고, ‘바라는 대로의 중국’으로 도피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불안정한 중국’ ‘곧 물러날 지도자’와의 외교에 공들일 필요가 없다는 의도도 깔린 음모론이다. 시진핑 주석이 ‘허수아비 지도자’가 되었다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왜 시 주석과 정상통화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까. 신중하고 냉철한 중국 관찰이 절실한 시기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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