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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고 조인 다음에 할 일은?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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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고 조인 다음에 할 일은? [한겨레 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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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김경락 | 사회정책팀장



닦고 조이고 기름치기. 이재명 대통령 취임 한달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듯싶다. 윤석열 정부 때 한껏 느슨해진 공조직을 다잡는 모습에서 국정 정상화가 빠르게 진행 중임을 실감한다. 현장에 밀착해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는 모습에서 ‘이재명표 실용주의’를 체감한다. 장마철을 앞두고 빗물받이 담배꽁초 제거 방법론을 마주할 땐 시장·도지사로 재직하며 몸에 밴 행정가만의 디테일이 확 다가왔다. 금산분리 완화, 법인세 인하, 전봇대 뽑기와 같이 보수 이념에 기대 관념적이거나 전시행정에 가까웠던 ‘이명박표 실용주의’와는 확연히 다르다.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 앞에 관성에 빠진 일부 공무원들은 정신이 번쩍 들 법하다. 많은 이들이 이 대통령을 ‘일할 줄 아는’, ‘공무원에게 일 시킬 줄 아는’ 리더라고 느끼는 까닭일 것이다. 효능감 있는 행정이다.



국정에는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일도 있지만 해야 하는데도 하기 힘든 일도 있다. 기득권 저항이 거세 뚫고 가기 어렵거나 이해관계가 복잡한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문제를 ‘구조적 과제’라고들 부른다. 심화한 소득·자산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로 상징되는 인구구조 변화,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와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재정 난맥, 비대해진 수도권과 왜소화한 지방으로 상징되는 국토 불균형 발전 등 구조적 과제는 셀 수 없이 많다. 의사들은 늘어나지만 필수의료는 부족인 왜곡된 의료 시장이나 분절화되고 다층화된 노동 시장도 빼놓을 수 없으며, 학벌 서열 체제에 기반을 둔 연간 30조원은 훌쩍 넘는 사교육비와 다른 나라에 견줘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 시달리는 대학 재정이 상징하는 일그러진 교육 시장도 구조적 과제 목록에 올라 있다.



구조적 난제가 많다는 건 우리 사회에 각종 ‘지대’(Rent)가 넘쳐나고 있다는 뜻이다. 지대를 누리는 이는 웃지만 지대를 얻지 못한 이는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지대는 경쟁을 제약하고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탓에 경제 성장을 늦추며, 공정성과 형평성을 무너뜨려 사회 분열마저 낳는다. 1%대 잠재성장률이나 여론 양극화, 인기영합주의 보편화는 지대 사회로서 우리 사회의 성격을 웅변한다.



보수든 진보든 간에 역대 정부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지대에 맞서려 했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미완의 성과를 거뒀으며, 시작은 거창했으나 유능함 부재로 주권자의 기대만 끌어올려 놓고 실망만 안긴 때도 있었다. 개혁이라 이름은 붙였으되 과녁을 오조준해 국정을 사적 이해추구 세력들의 놀이터로 만들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는 대선 때부터 현재까지 사법 개혁을 제외하고는 지대 타파를 위한 복안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타파해야 할 지대가 무엇인지도 명확히 제시하지 않은 터다.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눈에 띄지만 그마저도 구체 전략은 오리무중이다. 공약집이 허술하다는 평가는 일찌감치 있었지만 이를 탓하는 목소리는 작았다. 창졸간에 벌어진 내란부터 종식하는 게 가장 시급히 풀어야 할 현안이라는 데 ‘주권자’의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취임 한달이 훌쩍 지났고 국정과제를 정하는 국정기획위원회 활동도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내란 종식’이란 현안에 주목하며 기다려온 주권자의 인내심도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지대 타파는커녕 ‘지대 쌓기’(논문 가로채기)나 ‘지대 누리기’(갑질)에 열정 있던 이들이 장관 후보로 지명된 점은 유감이다.



두 종류의 수험생이 있다. 쉬운 문제를 푼 다음 배점이 높은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는 수험생과 어려운 문제부터 풀고 나서 남은 시간에 후딱 쉬운 문제의 답을 찾는 수험생이다. 후자는 시험을 통째로 망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면 쉬운 문제만 푼 수험생도 우등생이 되긴 어렵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현안은 속도감 있게 풀어야 하지만 현안만 풀다가는 지대 추구에 복지부동한 정부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국정의 수레바퀴를 닦고 조이는 데서 나아가 재질을 티타늄으로 바꾸고 날개도 붙이는 수레의 ‘구조 개혁’에도 당장 힘써야 한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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