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데스크칼럼] ‘케데헌’ 돌풍을 보는 복잡 미묘한 심경

헤럴드경제 신소연
원문보기

[데스크칼럼] ‘케데헌’ 돌풍을 보는 복잡 미묘한 심경

속보
법관대표회의 "내란재판부·법왜곡죄, 위헌에 재판 독립성 침해 우려"

대한민국 서울을 배경으로 K-팝 걸그룹의 악령 퇴치 활약기를 그린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몬)’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부문 1위에 오르더니 극 중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미국 빌보드, 영국 오피셜 차트는 물론 ‘콘크리트 차트’로 악명이 높은 멜론까지 점령했다. 틱톡, 쇼츠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너도나도 케데몬 OST를 커버곡으로 부르고,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돌인 헌트릭스와 사자보이즈의 안무 챌린지에도 적극 동참한다.

K-팝과 무당, 악령의 조합이라니…. 사실 처음엔 독특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잘 가져다 쓰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또 한건 했나 싶었는데, 이건 알면 알 수록 묘하다. 우선 요즘 글로벌 차트까지 휩쓸고 있는 케데헌의 OST를 들어보면 진짜 K-팝 아이돌이 부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다. 헌트릭스가 부르는 ‘Golden(골든)’은 마치 블랙핑크 신곡인 듯 들리고, 사자보이즈의 ‘Soda Pop(소다 팝)’은 신인 보이그룹의 데뷔곡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심지어 어찌 이런 것까지 담았나 싶을 정도로 한국 문화를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헌트릭스가 무기로 들고 나오는 사인검이나 신칼, 사자보이즈의 의상인 갓이나 도포 정도는 차용할 수 있다고 치자. 여기에 헌트릭스가 힐링 푸드로 설렁탕을 찾고 목소리 치료를 위해 한의원에 가는 걸 보며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피로를 푼다고 대중목욕탕에 가고, 식당에 가서 휴지를 깔고 수저를 놓는 장면에선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감탄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렇게 한국을 잘 담아낸 콘텐츠가 우리 창작자가 주도로 만든 게 아니라는 점이다. 케데헌은 소니가 기획,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투자, 배급한 작품이다. 감독은 한국계이긴 하지만, 어릴 적 캐나다로 이민을 가 그곳 문화에 더 익숙한 매기강이다. 물론 주요 OST 작업엔 빅뱅, 블랙핑크 음악을 만든 더블랙레이블의 테디 사단 등이 참여했지만, 일부일 뿐이다. 글로벌 자본이 K-콘텐츠를 가져와 주도적으로 기획, 제작해 빅히트시킨 최초의 창작물인 것이다.

국내 문화계에선 이같은 케데헌의 흥행을 두고 K-팝, 나아가 K-컬처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한 게 아니냐는 분석을 한다. K-컬처가 글로벌 시장에서 주류 장르로 자리를 잡으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그간 우리가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었던 K-컬처에 대해 외부 제작자들이 그 특징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에 따라 콘텐츠를 만들어 대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K-컬처가 우리만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일종의 ‘범용 콘텐츠’가 됐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같은 현상은 특정 지역의 문화가 주류 문화로 편입되며 생길 수 있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문화적 보편성이란 차원에서 K-콘텐츠가 누구나 쓰고 만들어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다만 불안한 지점은 이 과정에서 혹여 ‘우리의 창작자가 소외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미 국내 영상산업이 글로벌 OTT의 하청업체화 된 상황에서 이런 하청조차 못 받을 수도 있을 거란 걱정은 단순한 기우일까.

신소연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