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강한 도시국가, 비즈니스 하기 좋은 나라, 1인당 국민소득 9만달러, 혁신 스타트업 허브.
싱가포르의 국가 정체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표현들이다.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하나에서 지금의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기까지 어떠한 비결이 있었을까.
쌍용건설이 건설한 세 개의 타워, 최상층을 연결하는 인피니티 풀로 유명한 마리나베이샌즈 호텔 맞은편에서는 14세기 수마트라 왕자가 처음 발견했다는 전설적 존재 ‘멀라이언’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물고기인 이 상징물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해상 물류 거점으로서 싱가푸라(Singapura)라는 기원과 맞닿아있다.
그런데 이 건국 신화는 놀랍게도 사실 1964년 싱가포르 관광청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다.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돼 독립 국가가 되기 1년 전, 자치 정부가 도시 브랜딩을 위한 관광 마케팅 요소로 창조한 것이다. 올해 건국 60주년을 맞이하는 싱가포르지만, 61년 전부터 스토리 텔링에 주목하며 6세기를 거슬러 올라간 셈이다.
최근 세계 관광객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어 한국에도 1호 매장을 오픈한 ‘바샤커피’는 ‘커피계 에르메스’라는 호칭을 얻으며 싱가포르를 방문하면 꼭 사야하는 필수 기념품이 됐다. 화려한 오렌지 색깔 패키징과 함께 1910년 모로코 마라케시의 문화를 표방하며 멋진 향을 풍기는 이 커피 역시 알고보면 2019년 프리미엄 시장을 타겟팅하기 위해 론칭된 것으로 역사가 비교적 짧은 브랜드다.
이러한 브랜딩과 마케팅 전략은 국가적 차원의 투자유치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지난 4월 기준 싱가포르에는 61만5000여개의 사업체가 존재하는데,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은 2023년 기준 주요 기업 아태 지역본부의 약 59%가 싱가포르에 있다고 발표했다.
EDB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싱가포르가 유치한 고정자산투자(FAI)의 9.9%, 총 비즈니스 지출(TBE)의 66.9%가 본부 및 전문서비스로부터 이뤄졌다. 지난 10여년간 아태지역에서 가장 많은 지역본부를 유치한 국가답게 한국기업들의 진입도 활발하다. 여기에는 EDB를 중심으로 하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 인센티브 제공과 밀착 지원이 숨어 있다.
일례로 2022년 싱가포르는 영국계 프리미엄 가전 제조사인 다이슨의 글로벌 본부를 유치하며 4년간 15억 싱가포르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약속받았다. 브렉시트 이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법인세 감면 혜택과 최초의 석탄 화력 발전소라는 문화유산을 사옥으로 개조하여 제공한 덕이다. ‘Chat GPT’로 잘 알려진 ‘Open AI’가 작년 10월 싱가포르를 핵심 기지로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의 기술 자립 한계를 극복코자 개방형 기술 생태계를 추구하며, ‘국가 AI(인공지능) 전략(NAIS 2.0)’ 등으로 AI 프레임워크를 선도한다는 명성을 쌓고 있다.
결국 작지만 강한 나라의 비결은 스토리와 정체성을 일관되게 설계하고 걸맞는 지원책으로 이를 실현하는 데 있다.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혁신기업 마케팅, 뛰어난 제조 기술과 문화 콘텐츠 역량이 결합된 국가 브랜딩을 통해 뉴노멀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할 시점이다.
윤수현 코트라 싱가포르 무역관 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