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우 VR 콘서트: 메모리즈'의 한 장면. (사진제공=어메이즈) |
떼창에 오열까지… 티켓팅 전부터 손꼽아 기다려온 만큼 '내 돌(아이돌)'의 공연에서는 벅차오르기 마련입니다. 공연이 끝나도 이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죠.
이 여운, 이제는 더욱 길게 추억할 수 있습니다. 최근 극장가에 낯익은 얼굴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아이돌 그룹부터 트로트 가수까지 수많은 아티스트가 공연 실황이나 무대 뒤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잇달아 개봉하는 중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기술의 발전까지 체감할 수 있죠. 가수가 눈앞에서 생생한 공연을 펼치고요. 심지어 엔딩을 내가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눈 떠보니 내가 영화 속 여주인공?!'과도 같은 연출이죠.
한때는 팬들만 챙겨보던 '특별 상영회' 같던 공연 실황 영화. 이제는 대놓고 박스오피스를 노리는 흥행 콘텐츠가 됐는데요. 이 변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영화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CJ CGV 스크린X) |
아이돌 그룹의 공연 실황 영화가 처음부터 이 체급(?)이었던 건 아닙니다.
우선 시작은 1세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젝스키스의 '세븐틴'(1998)과 H.O.T '평화의 시대'(2000년)가 대표적입니다. 이후 2세대 아이돌부터 본격적으로 스크린 도전에 힘을 줬습니다. 슈퍼주니어는 '꽃미남 연쇄 테러 사건'(2007)에서 열연(?)을 펼쳤고요. 2012년에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미국 뉴욕 공연을 조명한 '아이엠'이 개봉했습니다. 보아,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샤이니, 에프엑스(f(x)) 등 인기 가수들의 무대 뒤 감춰진 땀과 눈물을 공개했죠. 빅뱅은 2016년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영화 '메이드'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2015년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막을 내린 동명의 월드투어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총 340일간의 여정이 밀착 다큐멘터리 방식으로 담겼죠. 트와이스도 두 번째 월드투어 '트와이스랜드'와 동명의 영화를 2018년 공개했습니다.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던 라이브, 퍼포먼스는 극장에서 재현됐습니다. 극장의 대형 스크린과 입체 음향 시스템 덕분이었는데요. 공연에 가는 중요한 이유인 '현장감'을 살리기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는 거죠.
다만 이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공연 실황 영화는 팬덤을 대상으로 한 이벤트성 상영에 가까웠습니다. '공연 복습용', 혹은 티켓팅에 실패한 팬들을 위한 '대안' 기능 이상을 넘어서긴 어려웠다는 건데요. 영화 외적의 매력 포인트도 포스터나 스페셜 티켓 증정, 무대 인사 정도에 그쳤죠.
분위기가 바뀐 건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점이었습니다. 콘서트, 페스티벌 등 무대가 줄줄이 취소·연기된 가요계와 신작 수급에 어려움을 겪던 극장가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공연 실황 영화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데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하죠. 진화한 굿즈와 싱어롱 상영 등 팬덤 맞춤형 마케팅까지 더해지면서 이들 영화는 박스오피스 상위권까지 진출했습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콘서트 실황 영화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이 약 34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한 게 대표적입니다.
최근에는 아이돌을 넘어 트로트, 밴드 등 다양한 장르와 아티스트로 확장되는 흐름도 뚜렷합니다. 가수 임영웅의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은 누적 관객 수 35만 명을 돌파하면서 역대 공연 실황 영화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한 바 있습니다. 극장들도 공연 실황 영화의 가능성을 주목하면서 단독 상영과 이벤트를 기획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중이죠. 특히 K팝 아티스트들의 실황 영화는 일본, 동남아, 북미 등 해외 극장에서도 동시 개봉하며 글로벌 팬덤과의 소통 창구로도 기능하는데요. 세븐틴의 월드투어를 담은 '세븐틴 [라이트 히어] 월드투어 인 시네마스'는 4~5월 한국, 미국, 영국 등 총 69개 국가·지역의 1900여 개 상영관에서 개봉했습니다.
'엔하이픈 VR 콘서트 이머전' 포스터. (사진제공=어메이즈) |
여기에 기술 발전까지 더해지면서 관객의 즐거움은 배가 됐습니다. 직접 무대에 올라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시야를 선사하거나 심지어는 서사 흐름을 선택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진화한 겁니다.
지난달 CGV연남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개봉한 가수 겸 배우 차은우의 첫 번째 가상현실(VR) 콘서트 '차은우 VR 콘서트 : 메모리즈'(이하 메모리즈)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보는 '메모리즈'의 특별한 매력은 '엔딩 선택형 구조'라는 겁니다. 기존의 공연 실황을 인터랙티브 콘서트형 로맨스 판타지 콘텐츠로 확장한 건데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차은우가 말 그대로 '눈 앞'에 있어서 놀라움을 자아내고요. 공연 중 등장하는 물건이나 장소를 관객이 선택하면 감정선과 엔딩이 달라져 재미를 줍니다.
상영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VR인데도 눈을 못 마주치겠다", "공연장 앞줄에서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른 생생한 체험", "재관람 각" 등 호평이 이어졌는데요. 상영 특전인 포카(포토카드)도 팬들 사이 인기를 끌었죠.
다음 달엔 엔하이픈의 역대급 VR 콘서트 '엔하이픈 VR 콘서트 : 이머전'(이하 이머전)이 개봉합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중국 등 약 40개 도시에서 개봉을 사전 확정한 최초의 VR 콘서트죠.
티저부터 강렬했습니다. 멤버 제이크의 내레이션을 바탕으로 멤버들이 차례로 등장,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공간 속에서 엔하이픈의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는데요. 이어 엔하이픈의 인기 곡 '바이트 미(Bite Me)' 무대의 일부가 짧게 베일을 벗어 콘서트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렸습니다.
'이머전'에서는 가까운 거리에서 팀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강렬한 퍼포먼스를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거대한 사무실, 폐공장, 핑크문과 레드문이 공존하는 루프탑 등 끊임없이 변화하는 공간에서 엔하이픈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지면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려놓을 예정이죠.
이런 몰입감의 핵심에는 기술이 있는데요. 제작사 어메이즈 측은 "초고화질 12K 실 촬영, 언리얼 엔진 기반 시각효과(VFX), 인공지능(AI) 슈퍼 레졸루션 등 독자적 기술력을 활용해 기존 VR 콘서트를 넘어선 몰입과 감동을 제공한다"며 "눈앞에서 실제 무대를 마주한 듯한 생생한 경험을 통해 엔하이픈의 무대와 감정선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요즘의 콘서트 실황 영화는 '감상'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모습입니다. 무대 한복판에 뛰어든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하거나 가수와 감정선까지 공유할 수 있게 하는데요. 감성과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영화 '식스데이즈' 메인 예고편의 한 장면. (사진제공=CGV ICECON) |
공연 실황 영화는 극장가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순한 팬덤 이벤트를 넘어 실제 매출에서 뚜렷한 성장세까지 기록 중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월 발간한 '2024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 영화는 2019년 42억 원에서 지난해 264억 원으로 6배가량 증가, 2019년 장르별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팬덤을 기반으로 한 공연 실황 영화는 사운드 등 후반작업이 추가되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싱어롱과 함성 및 응원 등 리액션이 가능한 방식으로 상영돼 관람료를 차등화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실로 지난해 특수상영 개봉작 가운데 평균 관람요금이 가장 비싼 영화는 '하이퍼포커스 :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브이알 콘서트'였는데요. 평균 관람 요금이 3만1000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의 특수상영 관람요금은 두 번째 비싼 영화로 기록됐죠.
이에 한국영화 특수상영 관객 수는 111만 명으로 전년 대비 5%(6만 명) 감소했지만 오히려 매출은 전년 대비 8.0%(16억 원) 오른 21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임영웅│아임 히어로 더 스타디움'이 26억 원의 스크린X(ScreenX) 매출을 기록하면서 스크린X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는 등 팬덤을 기반으로 한 공연 장르 영화의 흥행이 한국영화 특수상영 매출액 증가에 큰 역할을 한 건데요. 한국영화 4D 매출 1위도 공연 실황 영화로 9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세븐틴 투어 '팔로우' 어게인 투 시네마'로 나타났습니다. 일반 영화 대비 스크린 점유율은 낮지만 좌석당 단가가 높고 몰입형 체험을 원하는 관객이 늘면서 단위 매출이 더 높은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입니다.
상영 편수 역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2019년 17편에 불과하던 공연 실황 영화는 지난해 43편으로 2배 이상 확대됐고요. 매출 점유율은 2019년 1.4%에서 2024년 2.2%로 상승, 관객 점유율도 0.9%까지 올라섰습니다.
이 같은 흐름은 침체된 극장 산업 속에서 공연 실황 영화가 '대안'을 넘어 흥행 전략으로도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데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주요 멀티플렉스는 VR·4DX·스크린X 등 특화 기술을 활용해 공연 콘텐츠에 최적화된 상영 환경을 제공하죠. 'N차 관람'과 굿즈 소비가 활발한 공연 영화는 재방문율이 높은 장르로도 인식됩니다.
팬덤 기반의 충성도 높은 소비 패턴, 다양한 아티스트의 참여, 그리고 특수관 확대가 맞물리면서 아이돌 그룹의 공연과 무대 뒤를 조명하는 영화는 극장가의 위기 돌파구이자 흥행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모습인데요. 데이식스의 '식스데이즈', 레이베이의 '레이베이의 할리우드 밤', 스파이에어의 '스파이에어 저스트 라이크 디스 2024' 등 다채로운 아티스트들의 영화가 개봉할 예정입니다. 특히 롯데시네마와 CGV는 다음 달 17일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의 콘서트 '2025 플레이브 아시아 투어 [대시: 퀀텀 리프] 인 서울'(2025 PLAVE Asia Tour [DASH : Quantum Leap] in Seoul)을 생중계, 무대의 감동을 더 많은 관객과 더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할 계획이죠.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프리미엄 경제신문 이투데이 ▶비즈엔터
이투데이(www.etoday.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