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왼쪽)과 한성존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증 핵심의료 재건을 위한 간담회‘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
의대생들이 전격 수업 복귀를 선언한 데 이어 전공의들도 정치권과 만나 대화를 시작했다. 전공의들은 필수의료 중심의 수련환경 개선과 법적 안전망 마련을 요구했다. 다만 전공의들은 유급·제적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의대생들과 달리 수련과목과 군입대 여부 등 처한 상황이 달라서, 앞으로 복귀를 위한 요구사항을 한 데 모으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공의-국회 첫 공개 간담회서 “필수의료진 떠나게 하는 수련환경 개선해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14일 오후 5시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과 만나 간담회를 가졌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의대생들이 복귀하겠다고 해서 의료교육의 토대로 세울 수 있는 상황이 된 것 같다”며 “이 흐름이 이어져 전공의들도 복귀할 수 있는 기반들이 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회복”이라며 “그동안 수차례 만나면서 어느 정도 신뢰는 복원됐지 않나”고 말했다.
한성존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을 넘어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살아가야 할 미래 세대”라며 “(오늘 이 자리는) 국회와 함께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재건하는 중요한 초석을 다지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이 자리를 빌어 그간의 사태로 환자와 보호자 여러분들께서 겪으셨을 불안함에 마음이 무겁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날 간담회에서 대전협은 열악한 수련환경과 필수의료진의 의료사고 소송 리스크 개선을 요구했다. 대전협은 간담회에 앞서 사직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일방적 의료 정책 추진으로 인해 수련을 포기한 전공의들의 비율은 전공 과목에 관계없이 비슷했다. 하지만 의도치 않은 의료 사고로 인한 법적 부담, 불합리한 수련 환경으로 인해 수련을 포기한 비율은 필수과목 전공의들이 각각 2.15배, 1.3배 더 높게 나타났다.
김재연 대전협 비대위원은 “저희 전공의들은 피교육자인 동시에 근로자인 특수한 상황에 놓여져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전공의 1년차가 전문의 없이 사법 리스크를 온전히 지고 혼자 당직을 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환자 역시 위험에 노출되는 구조가 크게 바뀌지 않았다”며 “실질적인 수련 환경 개선 없이는 유사한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대전협 요구사항을 전달한 앞부분만 공개로 진행된 후 비공개로 전환됐다.
군 입대 전공의 제대 후 수련자리 보장이 관건, 해법 쉽지 않아
최근 ‘강경파’로 불리던 박단 전 대전협 비대위원장이 사퇴한 이후, 대전협 새 지도부는 복귀를 위해 정치권과 소통을 시작했다. 정치권과의 대화에 앞서 이달 초 대전협은 전국 사직 전공의 8500여명을 대상으로 ‘수련 재개를 위한 선결 조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공의들은 ‘윤석열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료개혁 실행방안 재검토’를 1순위로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군입대한 전공의 및 입영대기 상태의 전공의에 대한 수련의 연속성 보장’,‘불가항력의 의료 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등이 꼽혔다.
앞으로 진행될 의·정 대화에서 가장 큰 안건은 사직 후 군에 입대했거나 입영대기 상태인 전공의들의 수련 연속성 보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들이 지난해 대거 집단 사직하면서 통상 1000명 남짓인 의무사관후보생은 올해 3300여명 수준이다. 이중 880여명만이 올해 3월 입대하고 나머지는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입대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사직 후 군입대를 한 전공의들은 기존 수련병원·과목으로 가기 위해 다시 모집절차를 거쳐야 하나, 이들 중 다수는 제대 후 기존 수련자리가 보장되길 원한다.
하지만 의·정 갈등이 길어지면서 전공의들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는 상황이 복잡해졌다. 정재훈 고려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전공의들은 조율해야 할 상황이 너무 많아서 모두가 만족하면서 돌아오는 방안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정부가 이미 세 차례 전공의 수련 특례 기회를 제공하면서, 인기 수련병원·수련과목 위주로 전공의 정원을 다 채운 곳들이 생겼다. 이들이 원래 자리로 복귀하도록 보장할 경우, 인기과 위주로 수련 정원을 더 늘려야 한다. 반면 교수 사직으로 인해 수련과목 자체가 폐지되면서 아예 돌아갈 곳이 없어진 경우도 있다. 정 교수는 “우선 전공의들의 제각기 다른 요구를 파악할 수 있는 실태조사부터 실시하고, 이후에는 소위 필수의료과라고 불리는 과목 위주로 복귀를 장려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협은 오는 19일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고 다시 한 번 전공의들의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담당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아직은 특례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한편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는 의대생·전공의 복귀를 두고 ‘선처성 특혜조치’는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입장문을 내고, 의대생 복귀에 대해 “다행스러운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복귀 조건으로 의료계가 학사일정 유연화나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고 정부가 이를 수용한다면 국민과 환자의 안전을 위협한 의료계의 부적절한 집단행동을 정당화해주고 버티면 이긴다는 의료계의 그릇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해줄 것”이라며 “특혜성 학사 유연화나 수련시간 단축을 허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의대 학사 일정 유연화 여부에 대해 “종합적 검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딱 잘라서 한다, 안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정부와 국회는 복귀한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특혜성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며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조건 없이 복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주 3일 10분 뉴스 완전 정복! 내 메일함에 점선면 구독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