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경쟁에 마케팅 과열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해야
공정한 시장 질서 구축해야
위약금 면제 후폭풍은 거셌다. 발표 직후 일주일간 20만명 넘게 번호이동에 나섰고, 지난 12일에는 하루 4만2307명이 통신사를 바꿨다. 해킹사고가 처음 알려진 지난 4월22일 이후 세 번째로 많은 하루 이동 규모다.
정부도 사태를 인지하고 지난 7일 이통 3사 마케팅 임원을 긴급 소집해 자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번호이동 건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문제는 이 과열이 단말기유통법(단통법) 폐지를 불과 한 주 앞둔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도적 장치가 사라지면, 시장은 더욱 무방비 상태가 된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통신업계는 인공지능(AI)에 투자를 집중하며 출혈 경쟁은 과거의 일이 될 거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단통법 폐지를 코앞에 둔 지금,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SKT 해킹 사태가 도화선이 돼 '고객 빼가기' 전쟁이 재점화됐고, 대리점들은 벌써 "단통법 폐지 디데이(D-DAY)"를 외치며 전투 태세에 돌입했다.
서울 시내 한 KT 대리점 통창에 단통법 폐지 이후 보조금과 요금할인 등 신규가입시 혜택 제공을 광고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사진=박유진 기자 |
단통법 폐지의 본래 취지는 '시장 자율성 확대'와 '소비자 선택권 강화'다. 하지만 SKT 해킹 사태를 계기로 벌어진 소동을 보면 우리 통신시장이 과연 자율 경쟁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우려스럽다.
고객 유치를 위한 경쟁은 화려하지만 그 이면은 어둡다. '신규 가입자'와 '성지 순례자'에게만 보조금이 집중되는 사이 장기 가입자와 정보 접근성이 낮은 소비자들은 늘 소외당한다. 같은 요금제를 쓰더라도 누구는 수십만 원의 혜택을 받고 누구는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구조다. 고가 요금제에 묶인 보조금 조건은 실질적인 통신비 절감 효과도 제한적이다. 혜택의 크기보다 혜택을 받는 방식의 공정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단통법 폐지 이후 자율 시장으로 간다 해도 구조적 문제들이 방치된다면 또다시 보조금 쏠림과 형평성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자급제 활성화, 통신사의 단말기 판매 권한 분리 같은 근본적인 대책을 꺼내야 한다. '혜택 경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공정한 선택지를 보장하는 시장 질서가 필요하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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