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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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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모든 국민의 기본권이다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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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2일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9·2 노정합의 이행, 보건의료노동자 직종별 인력기준 제도화, 지역 의사제 도입 및 공공의대 설립, 주4일제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조합원들이 2일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총력투쟁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9·2 노정합의 이행, 보건의료노동자 직종별 인력기준 제도화, 지역 의사제 도입 및 공공의대 설립, 주4일제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서울특별시 서남병원은 전국에 몇 없는 흉부외과 개설 공공의료원이다. 몇 달 전 용인에 거주하는 60대 환자가 응급이송됐다. 식도에 5㎝ 크기 생선뼈가 걸렸는데, 7곳 대학병원에서 거절당한 후 성남시의료원을 통해 전원됐다. 경식도이물제거술로 잘 치료받았지만, 병원을 찾지 못했다면 식도천공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성남시의 40대 환자는 폐렴과 농흉으로 직접 상급종합병원을 찾았지만 받아주지 않아, 마찬가지로 성남시의료원을 통해 이송됐다. 패혈증 쇼크상태로 응급치료 및 수술이 필요했다.

성남과 용인은 종합병원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중증비율, 입원기간 단축을 중시하는 현재의 병원평가제도 아래에서는 병원은 수익성에 도움 되지 않는 감염, 응급환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병원을 바로 옆에 두고도 치료받을 수 없어 그 먼 거리를 와야 했다.

공공의료 시스템은 국방, 치안, 소방 등 사회안전망과 똑같은 이유, 즉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장치다. 적자 운영을 이유로 공공의료 시스템 자체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앞서 언급한 사례와 같은 '미충족의료'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묻고 싶다. 코로나19와 의료대란으로 우리는 '응급실 뺑뺑이'라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미충족의료 시대를 살고 있지만, 책임지는 이는 없다. 수용하지 않았으니 책임이 아니라는 병원, 환자를 받지 않는 의료계가 문제라는 정부의 갈등 사이에 갈 곳 없는 환자들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

공공의료원에 일하면서 감염질환, 외상 등과 같은 응급·급성기 질환은 정부에서 통제하는 게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민간 의료기관과 달리 공공의료원은 낮은 평가를 감수하더라도 환자 수용 장벽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관점을 바꿔 얘기하면 수익이 나지 않는 환자도 가리지 않고 수용한다는 얘기다. 비급여·과잉진료도 매우 적다. 지금처럼 환자나 구급대가 병원에 직접 연락해서 수용을 부탁하는 대신, 중앙 통제를 통해 지역 공공의료원으로 수용하고, 상급진료가 필요하면 국립대병원까지 연계되는 공공의료 네트워크를 통해 전원하도록 하면 치료받을 곳을 찾지 못하는 일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국방, 치안, 소방과 마찬가지로 공공의료에도 예산이 필요하다. 공공의료원에 급성기의료를 맡겨 필수의료인력을 의무채용하고,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면, 공공의료원의 진료 역량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집에 못 가고 잠도 못 자는 흉부외과 의사를 TV에서 보여주면서 흉부외과를 지원하게 만들겠다는 역설은 통하지 않는다. 필수의료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놓지 않는다면, 십여 년 후에나 양성될 공공의대 의사 수백 명 또한 기피진료과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박준석 서울시 서남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