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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친 결정장애 [인문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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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망친 결정장애 [인문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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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선택을 앞두고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심리를 결정장애라고 한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유행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독일의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의 <결정장애 세대(generation maybe)>라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1980년대 이후 세대를 결정장애 세대라고 이름붙였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이 세대가 급변하는 세상에 던져진 결과, 주체적인 선택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지는 모르겠다. 심각한 결정장애에 시달린 사람들은 옛날에도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노나라 계문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모든 일을 세 번 생각한 다음에 결정했다. 한번은 이웃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는데, 마침 이웃나라 임금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병문안하면서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는 정도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계문자는 혹시 이웃나라 임금이 병 때문에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전부 알아보고 나서야 길을 떠났다. 항상 세 번 생각하고 모든 변수를 계산에 넣었던 것이다. 공자가 충고했다. “두 번만 생각하면 된다.” 두 번만 생각하면 충분하고, 세 번 생각하면 사심이 끼어들어서 도리어 잘못된 결정을 내린다는 이유였다.

공자가 우려한대로 계문자는 세 번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훗날 큰 잘못을 저지른다. 노나라 임금이 죽은 뒤 임금의 서자가 적자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다. 계문자는 어떻게 할지 망설이다가 때를 놓쳤고, 결국 찬탈을 묵인하는 결과가 되고 말았기에 호된 비난을 받았다. 세 번 생각하는 신중함의 폐단이다.

살다보면 선택이 필요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하는 사소한 문제부터 결혼이나 취업처럼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항상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선택은 즐거운 것이기도 하지만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선택을 망설이는 심리가 결정장애다. 중국집 메뉴에 ‘짬짜면’이 있고, 술집에 ‘아무거나’라는 안주가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결정장애가 심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째서일까.

우리 역사를 보면 우리가 뭔가 주체적으로 결정해 본 경험이 많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임금님이 결정하고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가 결정하고 미군정기에는 미군이 결정하고 군사독재 시절에는 군인이 결정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로도 한국식 보스 정치 문화 때문에 위에서 결정하는대로 따르기만 했다.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났지만 그 여파인지 남의 눈치를 보고 책임을 회피하며 누군가의 결정을 기다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왈가왈부하는 문화, 실패를 좀처럼 용납하지 않고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불가능한 사회환경도 결정장애를 부채질한다. 결정장애는 개인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