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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왜 자주 눈물을 보일까? [남성욱의 동북아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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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왜 자주 눈물을 보일까? [남성욱의 동북아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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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중에서 유달리 눈물 많은 김정은
러시아 파병 군인 희생자 앞에서도 눈물
진정한 애민 아닌, '악어의 눈물'에 불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9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방북 중인 올가 류비모바 러시아 문화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예술인 공연 중 무대 배경화면에 러시아 파병 북한 군인들의 활동 모습이 상영되자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조선중앙TV화면=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9일 평양 4.25문화회관에서 방북 중인 올가 류비모바 러시아 문화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예술인 공연 중 무대 배경화면에 러시아 파병 북한 군인들의 활동 모습이 상영되자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조선중앙TV화면=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전 세계 지도자 중에서 몇 가지 기네스북에 오를 기록을 갖고 있다. 3대 세습 지도자로 집권 14년 동안 정적 숙청을 가장 많이 했다. 불충(不忠)한 고위층은 물론 고모부 장성택 처형도 결단했다.

다른 하나는 공개 석상에서 가장 눈물을 많이 흘리는 지도자다. 김정은의 활동을 담은 기록영화를 보면 자주 눈물이 등장한다. 2023년 전국어머니대회에서는 보고를 듣다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조선중앙TV에 공개됐다. 2020년 7월 정전협정 70주년 열병식에서도 안경을 벗어서 눈물을 닦았다. 그러면서 “진정 우리 인민들에게 터놓고 싶은 마음속 고백, 마음속 진정은 ‘고맙습니다’ 이 한마디뿐 입니다”라는 신파조 연설까지 했다.

최근에도 김정은이 비장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공개됐다. 방북 러시아 대표단을 위한 평양 공연 도중 무대 화면에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의 모습이 등장했다. 러시아에 파병한 북한군의 활동과 전사자 유해가 송환되고 김정은이 유해 앞에서 울먹이는 모습도 담겼다. 송환된 전사자의 관을 어루만지는 비통한 모습과 함께 지난해 10월과 12월 세 차례 공격작전계획에 김정은이 직접 서명했다는 명령서도 처음 공개됐다.

송환된 유해 앞에서 침통하게 흘리는 김정은 눈물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우선 대외용 홍보 목적이다. 자신의 고뇌에 찬 결단으로 죽음의 파병이 이뤄졌으며 모스크바가 확실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최근 평양에 설치된 첨단 저·중고도 방공망 ‘판치르 S-1’는 러시아가 피의 대가로 제공했다.

다음은 대내용 선전선동이다. 평양은 반년 넘게 파병 사실을 감춰오다 4월에서야 참전을 공식화했다. 전선에서 군인들의 전투 모습을 공개한 건 최근이다. 1만1,000여 명의 파병 병력 중에서 30% 이상이 사망했기 때문에 파병 자체를 감추기는 어렵다. 하반기에 지뢰 제거용 및 공병대 병력 6,000여 명 추가 파견이 예정돼 있어 민심 관리가 중요한 과제다. 3만 명 추가 파병설도 확산된다. 북러 혈맹 관계의 부각과 함께 최고지도자의 애민 정신을 집중적으로 과시해야 한다.

그의 눈물은 거짓된 감정을 상징하는 '악어의 눈물' 인가, 인민을 사랑한다는 자기 확신적 나르시시즘인가. 또는 MBTI 성격 유형검사 중 감성형(F) 지도자인가. 김정은 눈물이 거짓 눈물인지 여부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풍부한 감정 표현은 리더십에서 중요하다. 북한처럼 폐쇄적이고 엄격한 사회에서 최고지도자가 자주 눈물을 보인다는 건 양면적 의미를 가진다. 주민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고난을 함께 극복하자는 인민친화적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는 가성비 높은 수단이다.


첨단 드론이 날아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최전선 사지에 무방비로 파견된 병사들이 생존하기는 쉽지 않다. 경제적 지원과 무기 제공 등 반대급부를 기대해서 파병해 놓고 유해 앞에서 흘리는 눈물은 위장전술의 하나인 카무플라주(camouflage)다. 김씨 일가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군인들을 소모품으로 희생해서 흘리는 눈물은 이율배반적이다. 행선지를 모르고 탄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죽음으로 가는 여행이었는지 10대의 새파란 젊은이들이 사전에 알기는 어려웠다.

독재자가 기획한 고도의 정치적 셈법을 정보에 무지한 어린 군인들이 알 수는 없다. 독재자가 눈물을 자주 흘려서 기네스북에 오르는 일은 '악어의 눈물'일 수밖에 없다. 눈물정치로 빈곤에 찌든 인민들의 삶이 나아진다면 매주 울어도 상관없다. 그렇지 않다면 독재자의 눈물은 위선과 가식의 겉치레일 뿐이다. 우는 시간에 하나라도 민생을 챙기는 것이 애민 통치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