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 사진 = 국가유산청 제공 |
우리나라의 석기시대 유산 중 첫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반구천 암각화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울산 시민들의 식수원인 사연댐의 물이 넘칠 때마다 훼손될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보호 방안을 제 때 마련하지 못하면 세계유산 지정도 취소될 수 있다.
13일 학계에 따르면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 12일 반구천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의 유산 중 17번째다. 반구천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등 2개 그림으로 구성된 단일 유산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과 신석기시대 수렵도 등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그림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지난 5월 사실상의 확정 절차인 유네스코의 등재 권고를 받았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된 결과이지만, 학계는 세계유산위의 권고사항에 주목한다. 세계유산위는 암각화센터의 운영 보장, 개발계획 보고 등 조건에 더해 '사연댐 공사의 진척 상황을 보고하라'는 권고를 우리나라에 보냈다. 보고 기한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멸실 위기에 처한 유산으로 재지정되거나 최악의 경우 지정이 취소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오만의 아라비아 오릭스(영양의 일종) 보호지역과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 영국 리버풀의 해양산업도시 유산 등이 권고를 수용하지 못해 세계유산 목록에서 제외됐다.

사연댐은 암각화의 발견(1971년) 5년 전 약 4.5km 떨어진 곳에 건설된 길이 300m의 댐이다. 물의 높이를 조절하는 수문이 없어 댐 저수지가 가득 차면 암각화가 있는 곳까지 물에 잠길 우려가 있다.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0년간 암각화가 물에 잠겨 있었던 날은 연평균 42일이다.
바위에 쪼아서 새기는 암각화의 특성상 물에 잠기면 훼손이 우려된다. 바위는 물과 만나면 부식되거나 풍화 작용이 가속돼 표면이 멸실될 수 있다. 겨울에는 물이 얼어붙으면서 바위를 쪼개는 '동결쐐기작용'이 발생한다. 서울의 한 박물관 관계자는 "물과 바위가 만나면 예상보다 훼손 속도가 훨씬 더 빠르다"며 "이 추세라면 그림이 아예 없어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111만명이 사는 대도시 울산의 식수원 역할을 하는 사연댐을 섣불리 비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인근의 청도 운문댐이나 구미 해평취수장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수년간 답보 상태다. 지난 1월 울산시와 대구시가 취수원을 놓고 갈등을 빚자 환경부가 중재에 나서기도 했다. 울산시 등에 따르면 사연댐의 수위를 조절할 경우 하루 6만~8만톤 이상의 물이 부족해진다.
사연댐 전경. / 사진 = 환경부 제공 |
수문 설치 등 대안을 서둘러야 지정 취소를 막고 인근 암각화로의 등재 확대를 노려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북에는 반구천 암각화 외에도 경주 석장동 암각화, 포항의 칠포리 암각화 등 선사시대 유적이 산재해 있다. 반구천 일대에 암각화가 더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다만 수면 아래에 있어 현재로서는 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국가유산청과 울산시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반구천의 암각화 등재는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라며 "지방정부와 적극 협력해 유산을 잘 보존해 미래세대에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진영 기자 jahiyoun2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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