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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ID 대신 CD' '북한 대신 한반도'... 한미, 대북 대화엔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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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VID 대신 CD' '북한 대신 한반도'... 한미, 대북 대화엔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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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F 의장성명서 대북 자극 회피 흔적
북미 합의 당시 '완전한 비핵화' 사용
이재명 정부 출범 따른 기조 반영한 듯


인도·태평양 지역 외교장관들이 1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우려하면서 평화·번영을 위한 대화를 촉구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이번 ARF 회의 의장성명에서는 지난 3년간 이어졌던 북핵에 대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표현이 빠졌다. 우리나라에선 박윤주(앞줄 가운데) 외교부 1차관이 참석했다. 쿠알라룸푸르=외교부 제공

인도·태평양 지역 외교장관들이 1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우려하면서 평화·번영을 위한 대화를 촉구하는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이번 ARF 회의 의장성명에서는 지난 3년간 이어졌던 북핵에 대한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표현이 빠졌다. 우리나라에선 박윤주(앞줄 가운데) 외교부 1차관이 참석했다. 쿠알라룸푸르=외교부 제공


한미일 등 주요국과 동남아 국가들 간 안보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 회원국들이 북한 비핵화를 촉구하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이번 성명에선 북한이 반대해 온 비핵화 개념 대신 북미가 과거 합의했던 용어로 대체됐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대북 대화 여지를 열어두려는 한미 간 교감의 흔적으로 풀이된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ARF는 11일(현지시간) 폐막과 동시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CD·complete denuclearization)를 강조한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지난 3년간 성명에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라는 표현이 들어갔던 것과 대비된다.

북한 비핵화 개념은 한미의 대북 기조에 따라 CD·CVID·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최종적이고 충분히 검증된 비핵화) 등이 혼용돼 왔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 시절 만들어진 CVID의 경우, 북한이 "패전국에나 강요하는 굴욕적인 요구"라며 강력 반발해 왔다.

이에 비해 CD는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문에 명시했던 개념이다. 올해 ARF 의장성명 도출 과정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한미 양국 간 공감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 비핵화' 대신 북한이 선호하는 '한반도 비핵화'(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사용된 점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실제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같은 날 ARF를 무대로 별도 개최된 한미일 외교장관회의 등에서 최근 이재명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이 대남 방송을 멈췄던 사례 등을 들어 대북 대화 기대감을 강조했다고 외교부가 13일 전했다. 박 차관은 현지에서 "많은 국가가 남북 소통 재개를 위한 (한국) 정부 노력에 지지를 표했다"고 전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해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다자 외교 무대에서 대북 대화 의지를 드러냈고, 북한과 재차 협상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도 성명에 반영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표현 변화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핵화 수위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명시했느냐의 차이지, '검증'을 거쳐 '쉽게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북핵 폐기를 의미하는 점은 CD든 CVID든 크게 다르지 않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일단 한미 간 '북한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수준의 교감이 확인된 것"이라고 짚었다.


물론 올해 성명에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의 행위에 '엄중한 우려'(grave concern)를 표명한다"는 문구는 예년과 다름없이 포함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를 충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는 문항도 담겼다. 남중국해 분쟁 등과 관련해 중국을 겨냥한 내용은 예년 수준으로 담겼다. 성명은 "남중국해에서 평화·안보·안정·안전·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유지하고 증진하는 것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ARF는 1994년에 창설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표적인 안보 협의체로 아세안 10개국과 한국·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연합(EU) 등 27개국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연례 회의다. 2000년 가입한 북한은 올해 회의에 사상 처음으로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