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접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장소는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12일 원산을 찾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났다. 라브로프 장관은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2차 전략대화’를 한 뒤 한반도 상황에 대한 입장도 내놨다. 북러조약 체결 1주년을 맞아 지난 6월17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가안보서기가 방북한지 한달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방북하는 등 러시아가 북한에 부쩍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번 방북 기간 중 김정은 위원장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고리로 형성된 북러 군사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접견하면서 “조로(북러) 두 나라는 동맹관계 수준에 부합되게 모든 전략적 문제들에 대하여 견해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근원적 해결과 관련하여 로씨야(러시아) 지도부가 취하는 모든 조치들을 무조건적으로 지지성원할 용의”도 다시 확인했다. 라브로프 장관도 김 위원장에게 “국제무대에서 북러 사이의 전략전술적 협동과 공동보조를 보다 강화할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달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서기와 만나 북한군 6천명 추가 파병에 합의했는데, 이르면 이달 안에 이들 병력이 러시아로 이동하기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양국은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도 조율 중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김 위원장에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따뜻한 인사를 보냈고, 모든 합의를 이행할 의지를 확인했으며, 아주 가까운 미래에 김 위원장과 직접 접촉을 이어가기를 기다린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라브로프 장관이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고 김 위원장의 연내 방러와 정상회담을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북한 매체는 김 위원장이 러시아 대표단을 환대한 것을 자세히 보도하면서도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북러간에 미묘한 ‘온도차’가 있는 셈이다.
두진호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유라시아연구센터장은 “러시아의 전쟁 수행에서 북한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된 현실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태도가 변치 않도록 연내 김정은 방러를 추진하면서 극진하게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정은 위원장은 러시아로부터 파병에 대한 충분한 대가를 받아내 성과가 확실해진 뒤 방러하려고 신중하게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하노이 노딜’을 교훈 삼아 김정은이 섣불리 해외로 나가지 않고 최대한 북한으로 불러들여 이익을 극대화한 뒤 움직이는 전략”이라고 두 센터장은 해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라브로프 장관 접견과 북러 외교장관의 ‘전략대화’가 원산에서 진행된 것도 의미가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11일 밤 전용기로 원산공항에 도착해 13일까지 이곳에 머물렀다. 원산은 김정은 위원장이 10년 가까이 공들여 조성해 지난 1일 개장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가 있는 곳이다. 북한은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있는 명사십리호텔에서 라브로프 장관 일행의 방북을 환영하는 성대한 연회도 열었다. 북한이 러시아 관광객의 방문을 기대하고 있는 만큼, 러시아인들의 원산 관광 등을 통해 두 나라의 ‘경협’도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가 북한과의 전략대화에서 한반도에 대한 입장을 강조한 것도 주목된다. 라브로프 장관은 12일 원산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 ‘전략대화’를 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평양과 서울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틀 내에서만, 그리고 북한이 관심을 둔 문제에 대해서만 행동할 것”이라며,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이 이전 정부와 별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타스 통신 등이 전했다.
두진호 센터장은 “라브로프 장관의 한반도 관련 발언은 남북·북미 대화를 재개하려면 유일한 중재자는 이제 중국이 아닌 러시아이고, 러시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신호”라면서 “정부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추진하려면 러시아에도 특사를 파견하는 것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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