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이코노믹리뷰 언론사 이미지

SK, 이름 바꾸고 미래를 입다

이코노믹리뷰
원문보기

SK, 이름 바꾸고 미래를 입다

서울맑음 / -3.9 °
[최진홍 기자] SK그룹의 지각변동이 그룹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최근 SK C&C가 SK AX로, SK이노베이션이 SK E&S와 합병해 SK이노베이션 E&S로 재탄생한 데 이어 생활가전 기업 SK매직마저 SK인텔릭스(intellix)로 간판을 바꿔 달았기 때문이다.

개별 계열사의 단편적인 변화가 아니다. 최태원 회장의 '딥체인지(Deep Change)' 철학 아래, 그룹의 정체성과 미래 성장 공식을 뿌리부터 재설계하는 거대한 구조적 재편의 완성이다. 리밸런싱의 결정체인 이유다. SK는 이제 'AI'와 '그린 에너지'라는 양대 축을 넘어, 기술을 인간의 삶으로 연결하는 'AI 웰니스'라는 다양한 가능성 타진에 나서고 있다.


왜 지금 '딥체인지'와 '리밸런싱'인가
그 변화의 기저에는 생존을 위한 절박함이 깔려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최태원 회장의 '딥체인지'는 점진적 개선을 넘어선 '근본적 파괴와 재창조'를 의미한다. 200개가 넘는 방대한 계열사, 사업 부문 간의 비효율적 중복, 그리고 특히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대규모 투자로 누적된 재무적 압박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실행 방안이 바로 '리밸런싱(Rebalancing)'이다. 단순히 군살을 빼는 다이어트가 아니라, 미래 가치가 낮은 사업은 과감히 가지치기하고 핵심 성장축에 모든 영양분을 집중시키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 기간 동안 다수의 계열사를 정리하고 순차입금을 수십조 원 감축한 것은, 확보된 체력을 바탕으로 미래에 '올인'하기 위한 사전 작업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파이낸셜 스토리(Financial Story)'는 시장과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한 핵심 무기다.

사실 배터리, AI처럼 막대한 초기 투자와 장기적인 회수 기간이 필요한 사업은 분기별 재무제표만으로는 가치를 증명하기 어렵다. SK는 매력적인 성장 청사진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담은 '성장 서사'를 제시함으로써, 단기적 실적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인내 자본(patient capital)'을 유치하고 기업 가치의 패러다임을 바꾸려 하고 있다.


"양면 공세"

SK의 미래 전략에서 가장 날카로운 창은 단연 AI이며, 그 공세는 산업과 일상을 동시에 파고드는 양면 전략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 첫 번째 축은 기업과 산업을 겨냥한 거대 AI 엔진의 구축이다. 특히 IT 서비스 기업 SK C&C가 SK AX로 재탄생한 것은 그 상징이다.


사명의 'AX(AI Transformation)'는 과거의 시스템 통합(SI) 기업이라는 굴레를 벗고, 고객사의 AI 혁신을 주도하는 글로벌 파트너로 도약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선언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SK는 그룹 내 AI 역량을 하나의 거대한 퍼즐로 맞췄다. 이 전략적 연계는 SK하이닉스가 AI의 두뇌인 HBM 반도체를 생산하면 SK브로드밴드가 이를 구동할 데이터센터라는 물리적 공간을 운영하고, 그 위에서 SK AX가 기업용 AI 솔루션을 개발하며 최종적으로 SK텔레콤이 '에이닷' 같은 서비스와 통신망으로 이를 확산시키는 구조다.

나아가 AI 공세는 개인의 삶 속으로 파고드는 두 번째 축을 통해 완성된다. 생활가전 기업 SK매직이 'AI 웰니스 플랫폼 기업'을 선언하며 SK인텔릭스로 탈바꿈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명은 지능을 뜻하는 '인텔리전트(Intelligent)'와 고객 경험의 혁신을 의미하는 '엑스(X)'의 조합으로, AI 기술로 고객의 건강한 삶을 책임지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이는 단순히 정수기, 비데를 파는 회사를 넘어 웰니스 로보틱스 '나무엑스'와 같은 혁신 기기를 AI 기반 플랫폼으로 연결하겠다는 청사진이다.

SK AX가 산업의 B2B 시장을 공략한다면, SK인텔릭스는 가정의 B2C 시장을 파고들어 그룹의 거대한 AI 비전을 소비자의 일상에 구현하는 첨병 역할을 맡은 셈이다.

한편 AI가 날카로운 창이라면 그린 에너지는 이 모든 것을 받쳐줄 튼튼한 방패이자 또 다른 성장 엔진이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이 대표적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자산 백조 원이 넘는 초대형 에너지 기업의 탄생이지만 그 이면에는 'SK온 구하기'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십 분기 이상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그룹의 재무 부담을 가중시킨 SK온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그렇기에 이번 합병으로 연간 조 단위의 안정적인 이익을 내는 우량 자회사 SK E&S는 SK온의 '현금 공급원(Cash Cow)' 역할을 맡게 됐다는 설명이다.

외부 자금 조달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그룹 내부의 힘으로 배터리 사업의 '죽음의 계곡'을 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다. 동시에 이는 유가 변동에 민감한 정유·화학 사업과 안정적인 LNG·발전 사업을 결합함으로써 에너지 전환 시대에 걸맞은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효과도 노린다. 이는 앞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할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감당할 에너지 대동맥을 확보하는, 미래를 위한 핵심 포석이기도 하다.

장밋빛 청사진 뒤에 가려진 험로

SK그룹의 전략은 논리적이고 방향성도 명확하다. 산업용 AI, 생활 AI,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그린 에너지라는 세 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려는 청사진도 매우 정교하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그룹의 모든 재무적·전략적 지원이 쏟아지는 SK온의 턴어라운드 여부다. 만약 SK온이 그룹의 성장 동력이 아닌 현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경우 리밸런싱 전략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조 단위 자금이 투입되는 수많은 사업 재편과 통합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엄청난 실행 리스크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특히 통합 과정의 조직 문화 충돌이나 예상치 못한 문제들은 계획된 시너지를 갉아먹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투자는 자본시장의 꾸준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SK가 제시하는 '파이낸셜 스토리'가 시장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성장 전략은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Copyright ⓒ 이코노믹리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