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호 기자]
제인 버킨이 실제로 사용했던 '첫 번째 버킨백'. 닳은 모서리와 손때 묻은 가죽, 스트랩에 걸린 손톱깎이까지, 실용과 상징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방이다. 그런데 이 낡은 가방이 전 세계 핸드백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 가방은 에르메스 회장 장루이 뒤마와 제인 버킨의 우연한 대화에서 시작해, 이후 '명품의 신화'로 진화해왔다. 그런데 정작 제인에게 버킨백은 '모시는 명품'이 아닌 '사용하는 가방'이었다. 이번 경매는 그 기억과 상징이 하나의 문화유산이자 예술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1. "버킨이 아닙니다. 바로 그 버킨이죠."
제인 버킨이 실제로 사용했던 '첫 번째 버킨백'. 닳은 모서리와 손때 묻은 가죽, 스트랩에 걸린 손톱깎이까지, 실용과 상징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방이다. 그런데 이 낡은 가방이 전 세계 핸드백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 가방은 에르메스 회장 장루이 뒤마와 제인 버킨의 우연한 대화에서 시작해, 이후 '명품의 신화'로 진화해왔다. 그런데 정작 제인에게 버킨백은 '모시는 명품'이 아닌 '사용하는 가방'이었다. 이번 경매는 그 기억과 상징이 하나의 문화유산이자 예술품으로 인정받았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1. "버킨이 아닙니다. 바로 그 버킨이죠."
"5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가방 하나를요?"
"그건 가방이 아닙니다. 버킨이죠. It's not a bag. It's a Birkin."
단 세 문장으로, 명품은 '신분의 상징'이 되었다.
2001년,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시즌 4, 에피소드 11(쿠팡플레이 시청 가능). 사만다가 버킨백을 사려고 하자 에르메스 매장 직원은 대기만 5년이라고 한다. 사만다는 당황하며 그저 가방인데 그러냐고 되묻는다. 에르메스 매장 직원은 가방이 아니라며 고쳐 말하고 버킨의 위상을 말해준 것이다.
사만다는 극중 세 친구 중에 누구보다 명품을 잘 아는 캐릭터였다. 즉 버킨백은 '명품족도 모르는 명품'이라는 걸 인증한 장면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해당 에피소드를 계기로 버킨백은 그 지위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 받았다. 방송 이후 버킨백 대기 명단은 이전보다 세 배 이상 늘었다는 연구 논문도 있다.
2025년, 제인 버킨이 실제로 사용했던 '첫 번째 버킨백'이 소더비 경매에 등장했다. 그리고 전 세계 핸드백 중 가장 비싼 가방이 됐다. 당신이 그 소식에 놀랐다면, <섹스 앤 더 시티>의 매장 직원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건 버킨이 아닙니다. 바로 그 버킨이죠. It's not a Birkin. It's the Birkin."
2. 제인 버킨도 4년을 기다린 '버킨'
1981년, 에르메스 회장 장루이 뒤마는 파리행 비행기에서 우연히 제인 버킨 옆자리에 앉았다. 제인은 어린 딸과 함께 짐을 선반에 올리다가 소지품을 쏟았고, "아이 짐까지 들어가는 실용적인 가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뒤마는 그 자리에서 '그저 가방 하나'를 스케치했다.
1985년, 그 가방이 제인에게 전달됐다. 그 가방은 제인의 성을 따 '첫 번째 버킨백' 혹은 '오리지널 버킨백'이라 불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제인 버킨조차 그 가방을 받기까지 4년을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버킨백은 처음부터 버킨이었다.
3. 제인 버킨이 사용한 가방
제인 버킨은 영국 출신 배우이자 가수로, 프랑스 대중문화의 상징이었다. 세르주 갱스부르와의 협업, 독자적인 예술 활동,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스타일은 많은 여성에게 영감을 주었다.
정작 제인은 누군가 자신을 패션 아이콘이라 부르면, "그냥 입고 싶은 걸 입었을 뿐"이라 답했다.
제인은 버킨백도 특별 대우하지 않았다. 매일 사용했고, 낡은 채로 들고 다녔다.
손톱깎이를 스트랩에 걸어 다닌 것도 유명하다. 매니큐어보다 단정한 손톱을 선호한 제인은 손톱 정리를 위해 늘 손톱깎이를 지녔다. 소더비의 감정 보고서에서도 이 손톱깎이에 주목하며, "자연스럽고 실용적인 미감이 이 가방의 진정성을 더했다."고 평가했다.
제인에게 버킨백은 '모시는 명품'이 아닌 '표현 수단'이기도 했다. 우리가 종종 자동차에 스티커를 붙이듯, 제인은 자신이 지지하는 유니세프와 국경없는의사회 스티커를 버킨백에 붙였다. 대중에게 그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제인은 버킨백을 특별 대우하지 않았다. 무거워지자 들지 않았다. 버킨백 자체도 무게가 있지만, 제인이 안에 이것저것 넣고 다닌 탓에 더욱 무거웠다. 그러면서 "이젠 남자들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고 밝혔다.
사실 그건 제인이 버킨백을 애초 목적 그대로 사용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제인에게 버킨백은 딸과 외출할 때 짐을 넣기 편한 가방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 딸은 자랐다.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참고로 그 아이가 <귀여운 반항아>(1985), <멜랑콜리아>(2011) 등의 배우로 유명한 샤를로트 갱스부르다.
4. 자선단체에 기부한 버킨백, 소더비에 나오기까지
1994년 10월 5일, 제인은 버킨백을 프랑스 AIDS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낙찰가가 미화 기준 2000달러(당시 기준 162만원)로 추정된다.
2000년 5월 12일, 프랑스 풀랭-르 퓌르(Poulain-Le Fur) 경매사에서 한 수집가에게 낙찰됐다. 최종가는 비공개였다.
2023년 7월 16일, 제인이 프랑스 파리 자택에서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25년 6월 6일, 제인이 기부했던 그 가방이 뉴욕 소더비에 전시됐다. 경매를 위해 뉴욕 소더비에서 먼저 공개됐다. 닳은 모서리와 손때 묻은 가죽, 그리고 손톱깎이까지 그대로 보존된 상태였다. 박제된 기념품이 아니라, 실생활의 흔적이 담긴 살아 있는 아이콘이었다.
2025년 7월 10일, 프랑스 소더비에서 경매가 시작됐다.
5. The 비싼 가방
오후 4시, 프랑스 파리 소더비 경매장에서 경매가 진행됐다. 입찰은 사전 승인자 9명만 참여할 수 있었다. 예상 낙찰가는 요청자에게만 별도 제공됐다.
1분 동안 설명이 이어졌고, 경매는 100만 유로에서 시작됐다. 단 한 번의 입찰만으로도 2021년 에르메스 화이트 히말라야 나일로티쿠스 크로커다일 다이아몬드 리투르네 켈리 28이 세운 핸드백 최고가 기록(약 5.85억원)을 단번에 넘어섰다.
입찰가가 400만 유로에 도달하자 장내에서 탄성이 터졌고, 600만 유로가 넘어서자 장내에서 박수가 나왔다. 그리고 숨 고르기가 시작됐다.
8분 35초. 700만 유로가 나왔다. 11분 11초, 해머가 두드려졌다. 수수료까지 포함해 최종 858만2,500유로(한화 약 138억 원)였다. 그렇게 그 가방은 일본인 전화 응찰자에게 돌아갔다.
6. S&P500보다 수익률 높은 가방
명품 가방 리세일 전문 플랫폼 '백헌터(Baghunter)'는 2016년 자사 보고서에서 에르메스 버킨백의 수익률을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버킨백은 1980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14.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금(1.9%)이나 미국 S&P500 지수(11.7%)보다 높다. 보고서는 버킨백이 "수익성과 안정성, 그리고 브랜드 신뢰도 면에서 가장 뛰어난 투자 자산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2025년 현재까지도 가치 하락 없이 상승세를 이어가며, 일부 리세일 시장에서는 연평균 16% 안팎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7. 우연한 아이콘에서 필연적인 아이콘으로
"우연히 탄생한 아이콘", 미국의 패션 저널리스트 마리사 멜처는 버킨백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 우연이란 사전에 기획된 마케팅이 아닌 실용적 필요에 비롯한 디자인이었다. 한 여성이 불편을 말했고, 브랜드는 그 목소리에 응답했다. 그 여성은 본래 쓸모대로 사용했다.
에르메스는 이 우연을 철학대로 관리했다. 버킨백을 극소수 고객에게만 판매했고, 생산량을 통제했다. 에르메스와 오랜 관계를 통해 축적된 신뢰하는 고객만 버킨백을 소유할 수 있게 했다. 마케팅 부서가 없는 회사의 명백한 마케팅이었다.
<생각보다 이상한 경제 이야기>의 저자 앤 루니는 명품 소비 계급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귀족(patrician)은 그것을 '사용'한다. 벼락부자(parvenu)는 '과시'한다. 허식가(poseur)는 '흉내' 낸다. 노동자층(proletarian)은 구매할 수 없으니 '관심 없다'. 버킨백은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한, 희소성과 상징성의 정점에 선 것이다.
그렇게 버킨백은 셀럽과 수집가의 손을 거치며 문화적 기호에서 상징으로 격상되었다. 이를테면, 버킨백은 누구나 알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볼 수도 있지만 아무도 살 수 없는 '모나리자'가 된 것이다. 결국, 아이콘으로서 '우연히' 태어났지만 '필연적으로' 완성된 것이다.
8. 다시는 재현되지 않을 디자인
이번 경매에 등장했던 첫 번째 버킨은 비단 셀럽과 스토리만 있는 건 아니다. 제인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이 가방에는 이후 재현되지 않은 일곱 가지 디테일이 담겨 있다.
스트랩은 본체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어 일반적인 유연한 구조와 다르며, 크기는 '버킨 35'의 너비와 높이에 '버킨 40'의 깊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구성이다. (버킨백은 너비에 따라 25·30·35·40으로 구분되며, 숫자는 센티미터 단위를 의미한다.)
하드웨어는 일반적인 금도금이나 은빛 팔라듐이 아니라 무광 황동이 쓰였고, 닫힌 금속 링 구조는 승마 가방 HAC에서 유래한 것이다.
바닥에는 무게를 줄이기 위한 소형 스터드가 사용되었으며, 지퍼는 에르메스가 전용 제작사 Riri와 계약하기 전 쓰이던 '에끌레르' 지퍼였다.
마지막으로, 가방 전면에는 제인의 이니셜 'J.B.'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여기에는 신뢰가 담보되어 있다. 에르메스가 언제까지나 그 디자인을 다시 정식으로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다.
9. 기억의 가격, 860만 유로
경매 전 6월에 진행됐던 뉴욕 전시에서 첫 번째 버킨백은 브랜드나 소재가 아닌 이야기와 기억으로 구성된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소개됐다. 그냥 가방이 아니라 가죽 질감, 닳은 모서리, 그리고 손톱깎이까지, '기억을 이야기하는 가방'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겐 첫 번째 버킨백은 '그저 가방'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삶과 한 시대의 감각이 함께 들어 있다. 실물이면서 동시에 추상일 때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낙찰가 860만 유로는 희귀성보다 그 기억에, 그 예술에 부여된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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