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산재 사망 문송면 37주기
막을 수 있는 죽음의 고리 끊어야
소년공 대통령, 노동자 장관 기대
열다섯 살(호적상 나이로 실제는 열일곱 살로 알려졌다) 소년은 고향 충남 서산(현재 태안)에서 상경했다. 야간 공고 진학을 위해 온도계공장에 취업했다. 공장 안은 수은 증기로 뿌옇고 바닥엔 액체 수은이 널려 있었다. 주 업무가 수은 주입이던 그는 몇 달 만에 수면 장애, 구역질, 전신 통증에 시달렸다. 감기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자 귀향했다. 굿을 하고 4곳의 병·의원을 전전한 두 달 후 "어디서 일했냐"는 서울대병원 의사의 질문 덕분에 검사를 받고 수은 중독, 즉 직업병 진단을 받았다.
회사는 산업재해(산재) 신청서에 도장을 찍어 주지 않았다. 대신 '업무상 요인으로 발생한 상해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했다. '온도계공장 근무 15세 소년, 두 달 만에 수은 중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뒤에야 업무상 재해 승인을 받았다. 산재 지정병원으로 옮긴 지 이틀 만에 숨졌다.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떠들썩하던 1988년 7월 2일 사망한 소년공 문송면의 사연이다. 당시엔 또래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신문사에 입사해 뒤늦게 사건을 마주하고 산재가 잠깐의 부주의보다 구조의 문제,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의 비극임을 깨달았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찾아보니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제 '이름 없는 문송면들을 기억하며 함께 걸어요'가 얼마 전 고인이 잠든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의 고리 끊어야
소년공 대통령, 노동자 장관 기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게티이미지뱅크 |
열다섯 살(호적상 나이로 실제는 열일곱 살로 알려졌다) 소년은 고향 충남 서산(현재 태안)에서 상경했다. 야간 공고 진학을 위해 온도계공장에 취업했다. 공장 안은 수은 증기로 뿌옇고 바닥엔 액체 수은이 널려 있었다. 주 업무가 수은 주입이던 그는 몇 달 만에 수면 장애, 구역질, 전신 통증에 시달렸다. 감기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자 귀향했다. 굿을 하고 4곳의 병·의원을 전전한 두 달 후 "어디서 일했냐"는 서울대병원 의사의 질문 덕분에 검사를 받고 수은 중독, 즉 직업병 진단을 받았다.
회사는 산업재해(산재) 신청서에 도장을 찍어 주지 않았다. 대신 '업무상 요인으로 발생한 상해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했다. '온도계공장 근무 15세 소년, 두 달 만에 수은 중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뒤에야 업무상 재해 승인을 받았다. 산재 지정병원으로 옮긴 지 이틀 만에 숨졌다.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린다고 떠들썩하던 1988년 7월 2일 사망한 소년공 문송면의 사연이다. 당시엔 또래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신문사에 입사해 뒤늦게 사건을 마주하고 산재가 잠깐의 부주의보다 구조의 문제,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의 비극임을 깨달았다.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찾아보니 산재 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제 '이름 없는 문송면들을 기억하며 함께 걸어요'가 얼마 전 고인이 잠든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무려 37년, 한 세대가 훌쩍 지난 지금 비극은 멈췄는가. 고 김용균씨, 고 김충현씨 등 다른 이름이 지면을 채우고 있다. 죽고 또 죽는다. 전쟁터가 아닌 일터에서, 살기 위해 일하다 숨지는 모순이 반복된다. 노동자 1만 명당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사고사망만인율)는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다. 이름 없는 수많은 문송면은 요 며칠 신문만 챙겨 봐도 확인할 수 있다.
6일 인천 계양구 맨홀 안에서 작업 중 쓰러진 뒤 실종된 노동자는 900m 떨어진 하수종말처리장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대구에서 출장 온 그는 퇴근하지 못했다. 산소 마스크를 쓰지 않은 그의 사인은 가스 중독으로 추정된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7일 경북 구미시 아파트 공사장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앉은 채 쓰러져 숨졌다. 사망 당시 체온은 40.2도. 그의 첫 출근은 마지막 출근이 됐다. 폭염 경보가 내려져 내국인 노동자는 혹서기 단축 근무를 했지만 이주노동자는 정상 근무를 했다고 한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막을 수 있는 죽음'이라고 쓰고 허망하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는' 노력은 반짝 타올랐다가 잔인하게 꺼진다. 2018년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김용균씨가 숨진 발전소에서 2025년 기계에 몸이 끼어 사망한 김충현씨 사건이 그 방증이다. 앞서 적은 6, 7일 사건은 어떤가. 등장인물과 일시, 장소만 다를 뿐 사건 전개는 전에 수없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이재명 정부가 노동안전 종합대책 논의를 시작한다고 최근 밝혔다.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다. 사후 약방문이라는 비판에 공감하면서 한편으로 기대한다. 그것은 노동 현장을 몸소 체험했을 소년공 출신 대통령, 철도 노동자 출신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한 바람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내내 영화 '다음 소희'의 대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아야 하는데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이번 논의가 구조적 원인 규명과 해법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한 바 노동에 대한 관점도 시나브로 바뀌길 소망한다.
고찬유 경제산업부문장 jutdae@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