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5년 7월6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 등산로에 설치된 끈끈이롤트랩. 이 트랩엔 러브버그 외 다른 다양한 곤충까지 붙어 피해를 입었다. 새 깃털이 뽑힌 흔적도 확인됐다.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는 1년 동안 360일가량을 알·애벌레·번데기 상태로 숲속에서 산다. 매년 6월 말, 러브버그는 불과 사나흘 동안 날개를 단 어른벌레가 된다. 이 짧은 짝짓기 시즌, 러브버그는 등산로나 사람 사는 마을에 나타난다. 한국의 수도권에선 2022년 이후 매년 6월 말부터 한두 주 정도 러브버그가 무리 지어 출현하고 있다. 사람을 물지도, 질병을 옮기지도 않는다. 낙엽 등 유기물을 분해하고, 꽃가루를 운반해 수분을 매개하며,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든다.
![]() |
2025년 7월3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에 나온 주진우 기자. 유튜브 화면 갈무리 |
익충까지 대대적으로 없앨 조례 마련한 서울시
하지만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미움이 집중되고 있다. 일부 유튜버는 이런 감정을 이용해 러브버그에 대한 불안감과 혐오를 자극하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일부 정치인까지 이에 호응하며 ‘더 빠르고 더 강력한 방제’를 주문한다. 러브버그 방제로 불거질 생태계 교란을 우려하는 환경단체에 대한 혐오 정서도 심심치 않게 표출된다.
“나는 보고 싶지 않아. 러브버그, 징그러워 죽겠어요. 서울시는 왜 방제·방충 안 하냐고!”
2025년 7월3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에 나온 주진우 기자가 말했다. 그러자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맞다”고 호응하며 “일단 대발생하면 시민에게 피해를 준다”고 맞장구쳤다.
사실 서울시는 이미 2025년 3월 전국 최초로 ‘러브버그 방제 조례’(서울특별시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생태계에 미칠 영향은 고려하지 않은 채 해충이 아닌 익충(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곤충)으로 분류되는 생물까지 대대적으로 없앨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시민사회와 환경단체는 거세게 비판했다. 앞서 2024년 8월 이 조례 입법예고 과정에서 시민 380여 명이 반대 의견을 낸 끝에 제정이 한 차례 보류되기도 했다. 그런 서울시를 두고 여당의 중진 의원이 ‘왜 더 강한 방제를 하지 않느냐’고 요구한 것이다.
나영 은평민들레당 대표는 “박 의원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사람인데, 도시화나 막개발에 의한 생태계 교란 등이 러브버그 대발생의 원인일 수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시민 불편을 해소해주면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심각한 발언”이라며 “시민이 불편하면 꼴 보기 싫은 건 뭐든지 눈앞에서 치울 수 있다는 식의 굉장히 무서운 말로도 들린다”고 지적했다. 나영 대표는 2023년부터 러브버그가 최초 대발생한 봉산(서울 은평구) 생태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 |
2025년 6월27일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물. 인스타그램 갈무리 |
“살충제 뿌리면 생태계 불균형 더 강화”
정치권에선 법 제정까지 거론된다. 2025년 7월4일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러브버그 방제법’(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충이 아닌 익충이더라도 시각적 불쾌감, 도시 미관 훼손 등을 유발하면 방제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김 의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러브버그 박멸’ ‘러브버그 때려잡자’ 등의 게시글을 올리며 러브버그 해결사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7월1일 채널에이(A) ‘정치시그널’에 나와서는 “러브버그 잘 잡아주는 거로 (자신의 지역구인) 도봉구에선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고도 말했다.
일부 유튜버는 자극적인 연출로 ‘러브버그 공포심’을 자아내고 있다. 2025년 처음 러브버그 대발생이 일어난 인천 계양산을 6월 말~7월 초에 찾은 유명 유튜버만 수십 명에 이른다. 이들은 “러브버그 지옥” “재앙 수준” 등 극단적인 표현을 쏟아냈다. 계양산 등산로를 따라가며 스프레이형 살충제를 연신 뿌리고 “러브버그를 박멸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계양산 정상에 올라 “대통령님 도와주세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조회수가 수십만~수백만 회 되는 영상도 많다. 이들의 영상에는 ‘환경단체 사무실을 계양산으로 옮기자’ ‘러브버그를 환경단체에 반찬으로 보내자’ 등과 같이 신중한 방제를 주장하는 환경단체를 혐오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러브버그는 산성을 띠기 때문에 차 표면에 붙으면 도색을 새로 해야 한다’ 같은 가짜뉴스도 유튜브에서 유통된다. 신승관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는 “대부분의 생물이 죽어서 썩으면 산성이 되는 것이지, 러브버그가 특별히 산성을 띠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2024년 10월 학술지(Genome Biology and Evolution)에 러브버그 염색체 수준 유전체 분석 결과를 발표한 신 교수는 “우리나라 러브버그에서 살충제 저항성 관련 유전자가 많았다. (러브버그 방역이 강조되면서) 살충제를 뿌리면 러브버그는 안 죽고 다른 곤충들만 죽게 돼 생태계 불균형이 강화될 것”이라며 “유튜버들이 과장된 연출로 (러브버그가)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러브버그가 대발생하는 일정 기간만 입산을 통제하거나 등산로 등 주변 불빛을 끄기만 해도 이런 불편이 드러나진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
2025년 7월6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 등산로에 설치된 끈끈이롤트랩. 이 트랩엔 러브버그 외 다른 다양한 곤충까지 붙어 피해를 입었다. 새 깃털이 뽑힌 흔적도 확인됐다.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
‘불편해? 없애버려’ 조장하는 미디어
기성 언론도 가세했다. 7월5일 환경부가 계양산 러브버그 방제에 나선 것을 두고 ‘죽을 때 되니까 이제 와서’(MBN), ‘익충이라며 손 놓더니’(조선일보) 등과 같은 비판을 쏟아냈다. 7월1일 윤환 인천 계양구청장이 “(러브버그 대발생을) 우리 국민들이 참을 줄 알아야 한다”고 한 발언도 집중포화를 맞았다. 연합뉴스는 7월6일 ‘러브버그가 부른 각양각색 민낯들’ 기사에서 윤 구청장의 발언을 ‘시민의 불편함을 일축하는 태도’라고 비난했다.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은 “(러브버그 대발생의) 원인과 해결은 굉장히 복잡한 건데, 이런 콘텐츠와 정치인들의 발언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쉬운 해결책만 제공한다는 점에서 경솔하고 선동적이며, 성숙한 사회적 대화를 방해한다”며 “러브버그 등 곤충 대발생은 도시 주변 숲에서 많이 발생한다. 이를 두고 어떤 생물의 개체수가 자연적 조절이 안 될 만큼 우리 주변 생태계가 굉장히 약해졌다는 진단을 할 수도 있고, 생태적 재난에 대해 반성하는 접근도 가능할 텐데 그런 사고 자체를 멈춘 것 같다”고 지적했다.
봉산생태조사단이 7월6일 계양산을 모니터링한 결과, 은평구 봉산과 마찬가지로 계양산 역시 대규모 벌목·조림한 인공숲(치유의 숲)이 조성됐고 계양산성 주변 등에서 주기적으로 광범위하게 살충제를 살포한 사실이 확인됐다.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은 “언론이 서울시 러브버그 관련 ‘민원 폭증’이라며 방제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자세히 뜯어보면 민원이 늘어난 곳은 러브버그가 처음 대발생한 지역들이다. 러브버그에 대해 잘 모르고 처음 겪어 놀란 주민들의 민원이 많았던 것”이라며 “은평구처럼 이미 4년째 러브버그 발생 민원이 크게 줄어든 곳이 있는데, 이 점은 간과된다”고 말했다. 2022~2024년 서울시 러브버그 관련 접수 민원은 4418건에서 9296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은평구의 접수 민원은 3558건에서 982건으로 크게 줄었다. ‘러브버그가 이로운 곤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시민도 27%(2024년 5월 서울시의 시민 1천 명 설문조사)에 불과하다.
1940년대 이후 수십 년째 매년 러브버그가 대발생했고 다양한 방제가 시도됐던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러브버그가 매년 4월과 9월 두 차례 비행하는데, 이때를 봄가을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해서 ‘러브버그 시즌’(Lovebug season)이라고 부른다. 50여 년간 러브버그를 연구한 노먼 레플라 플로리다대학 교수(곤충학)는 2007년 논문 ‘러브버그와 살아가기’(Living with Lovebugs)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러브버그는 매년 짧은 기간 동안 나타난다. 그래도 러브버그가 성가시다면, 그냥 피하는 것이 가장 좋다.”
2025년 6월1일 지역언론(플로리다 미디어 나우)에 실린 ‘사랑은 하늘에-러브버그 시즌이 온다’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이번주 세 번 세차했는데도 (러브버그 때문에) 차가 다시 더러워졌다고 화내기 전에 기억하세요. 그들은 당신을 괴롭히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본능대로 행동할 뿐이에요.”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 |
2025년 7월6일 인천 계양구 계양산 등산로에 설치된 끈끈이롤트랩. 이 트랩엔 러브버그 외 다른 다양한 곤충까지 붙어 피해를 입었다. 새 깃털이 뽑힌 흔적도 확인됐다. 봉산생태조사단 제공 |
한겨레21 뉴스레터 <썸싱21> 구독하기
<한겨레21>과 동행할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네이버 채널 구독하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