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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가짜출근’ 보도와 헌법소원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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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가짜출근’ 보도와 헌법소원 [슬기로운 기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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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1일 헌법재판소에 접수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 김채운 기자

지난달 11일 헌법재판소에 접수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 김채운 기자




김채운 | 정치팀 기자





지난달 말,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국회 출입 기자단의 만찬이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기 전 우 의장을 따라 공관 주변을 한바퀴 돌 때였습니다. 공관 뒤 언덕에 오르자 한남대로가 내려다보이더군요. “여기 건넛집이 바로 대통령 관저”라는 우 의장의 설명을 들으며, 새삼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곳 한남동 공관촌을 취재하다 벌어진 일로, 2주 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낸 참이었거든요.



어쩌다 한겨레 정치부 막내 기자가, 팔자에도 없는 헌법소원까지 내게 된 것일까요? 사건은 7개월 전인 지난해 1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 저는 윤석열 대통령의 ‘가짜 출근’ 의혹과 불법 관저 증축 공사 의혹을 취재하고 있었습니다. ‘한남동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보면 취재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한남대로에 있는 한 빌딩 옥상에 올랐는데, 때마침 저를 발견한 대통령경호처 직원과 경찰들이 빌딩으로 들이닥쳤습니다.



출동한 경찰들은 저를 붙잡고 처음엔 “군경 행렬을 찍는 것은 불법”, 그다음엔 “군사보호시설인 대통령 관저를 찍는 건 불법”이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런데 제 가방과 휴대전화 사진첩 휴지통까지 샅샅이 뒤지고도 정작 아무런 사진을 찾지 못하자, 이번엔 “기자놀이, 영웅놀이를 하고 싶었느냐. 이거 문제 되면 김 기자 결혼도 못 한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돌연 저를 건조물침입(건물 무단 침입) 혐의로 입건해버렸습니다. 그 빌딩은 주거 시설도 아니었고, 옥상 문은 아무런 출입 통제 표시 없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 말이지요.



수사기관은 속전속결로 움직였습니다. 5시간 동안 이뤄진 첫 경찰 조사에선, 강력계 수사관이 ‘윗선’의 전화를 받으며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더군요. “○○일에 대통령실 주변에 있지 않았느냐”며 그동안의 제 동선을 다 알고 있다고도 했고요. 조사 바로 다음날, 저는 “범죄 혐의가 인정돼 검찰에 불구속 송치”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제 사건은 윤석열 정부의 언론 탄압 사례 가운데 하나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도 ‘검찰은 ‘입틀막’ 언론 탄압 미몽에서 즉각 깨어나라’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지요. 다만 절묘하게도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은 다음날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검찰의 추가 수사는 없었고, ‘윤 대통령의 가짜 출근’ 보도는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지난해 11월29일 오후 1시9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실제 탄 것으로 추정되는 ‘진짜 출근’ 차량 행렬(붉은 동그라미)이 이동하고 있다. 경찰청 도시교통정보센터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 갈무리

지난해 11월29일 오후 1시9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실제 탄 것으로 추정되는 ‘진짜 출근’ 차량 행렬(붉은 동그라미)이 이동하고 있다. 경찰청 도시교통정보센터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 갈무리


그런데 지난 3월, 갑자기 검찰로부터 ‘기소유예’ 처분 통지서가 날아왔습니다. 기소유예는 ‘혐의는 인정되지만 재판으로 넘기진 않겠다’는 처분인데요, 재판을 통해 유무죄를 다퉈볼 수 없어, 유일한 불복 수단이 바로 헌법소원입니다. 그렇게 지난달 저는 ‘팔자에도 없는’ 헌법소원을 내게 된 것입니다.



헌법소원 청구서에는 침해된 권리를 적는 칸이 있는데, 저는 ‘평등권과 행복추구권, 그리고 언론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혐의가 없음이 명백하고, 건물주도 처벌을 원치 않는 사건을 검경이 무리하게 수사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그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킨 것이니까요. 비록 저를 ‘탄압’한 이는 직에서 파면당한 뒤 10일 다시 구치소 신세를 지게 됐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로 헌법소원까지 하는 불행한 기자가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 정부의 언론 개혁도 정치부 기자로서 두눈 부릅뜨고 지켜보겠습니다.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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