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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백두산에서의 만물 조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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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백두산에서의 만물 조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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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먼지의 집적, 무수한 체세포의 집합, 반투과성 막(膜)들의 연결이라는 그 언저리에 내 몸은 있다. 옷으로 가꾸고 등산화로 가둔 이 불룩한 부피를 실은 나도 잘 모른다. 전모를 동시에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언제나 바깥을 향해 기웃거리고 방황하는 중이겠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삼면이 바다이고 멀리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이 우뚝하고 사이사이 앞산과 뒷산, 그 어디쯤에 나는 산다. 삼시세끼로 생명을 유지하지만 입안을 통과해 그 어디로 넘어가는 것들, 그것에 대해서도 실은 아는 바가 없다.

마음 길게 내어 백두산 천지 가는 길. 해발 2744m에 지상 174㎝의 내 키가 더해졌다. 우리 영토의 가장 높은 곳을 받들었으니 이제 지하삼림에서 가장 낮은 것을 관찰한다. 이것은 기생꽃, 저것은 나도범의귀, 여기에 풍선난초. 이크, 저기에는 분홍노루발. 여기선 쉽게 툭툭 이름을 부르지만 남한에서는 발음하기에도 송구할 만큼 고이 받들어 모셔야 할 귀한 야생화들.

저 꽃 앞에서는 몸을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사진 찍다 눈길을 들면, 하늘에서도 누가 플래시를 터뜨리는 듯 울창한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내려꽂힌다. 그것은 숲과 하늘이 몰래 내통하는 듯 장엄하고 엄숙한 광경이다. 비도 곧 한줄기 할 기세.

바닥은 이끼와 고사리가 어울린 그야말로 초록의 바다. 그 진한 물감을 퍼담아 머리까지 들어 올리는 나무들은 허공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숲과 하늘이 서로 호응하며 궁합을 꽉 맞추는 풍경 앞에서 생각나는 시 한 대목. “자연은 하나의 신전, 거기 살아 있는 기둥들은/ 어쩌다 혼돈스러운 말을 흘려보내니/ 사람들은 정다운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는/ 상징의 숲을 건너 그곳으로 들어간다.”(<악의 꽃>의 ‘만물 조응’, 보들레르)

그렇게 백두의 꽃들에 둘러싸여 <악의 꽃>을 검색하다 이런 구절까지 만났다. “삶이라는 작은 차원에 갇혀 있던 인간이 어떻게 하면 존재 내부의 수많은 차원을 발휘할 수 있는가.”(황현산) 문득 공중의 조리개가 열리고 숲에서 안개가 풀려난다. 그러자 내 안의 오랜 숙제 하나도 풀리는 느낌. 앞으로 나는 얼마나 많은 돌, 이끼, 고사리, 꽃, 나무 등등의 막(膜)들을 지나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