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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입고, 몸 잘린 아이들…“심판의 날 공포 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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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 입고, 몸 잘린 아이들…“심판의 날 공포 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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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의료진이 전한 참상
지난 5~6월 가자지구 남부 나세르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한 영국 성형외과 전문의 빅토리아 로즈.

지난 5~6월 가자지구 남부 나세르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한 영국 성형외과 전문의 빅토리아 로즈.


가자 남부서 의료봉사한 전문의
진료 환자 60%가 15세 미만 추정
“쌀 한 봉지에 목숨 걸 정도로 빈곤”

장비·연료 부족 호소한 간호부장
“신생아 넷이 인큐베이터 하나에”

“파편에 맞은 상처가 아니었어요. 몸의 일부가 그냥 날아가버린 상태였어요. 무릎이 없어진 채, 발이 없어진 채, 손이 없어진 채로 아이들이 병원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영국 성형외과 전문의 빅토리아 로즈는 지난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3주간 가자지구 남부 나세르 병원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했다. 로즈는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증 외상 환자들이 끊임없이 입원하면서 의료 시스템이 극심한 압박을 받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가장 끔찍했던 날은 지난달 1일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의 식량 배급소 근처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20명 이상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로즈는 “오전 10시쯤 되자 시체가 20구 이상이었고 총상 환자는 100여명쯤 됐다”고 회상했다. “사람들은 쌀 한 봉지 때문에 죽을 각오가 돼 있을 정도로 극심한 빈곤에 처해 있다”고 그는 말했다.

가자지구의 한 병원에서 연료와 장비 부족으로 4명의 신생아가 하나의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치료받고 있다. 파델 나임 엑스 계정

가자지구의 한 병원에서 연료와 장비 부족으로 4명의 신생아가 하나의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치료받고 있다. 파델 나임 엑스 계정


로즈는 2019년 처음 가자지구를 방문했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되자 당시 함께 일했던 현지 의사가 다리가 잘린 아이들의 사진을 보내며 “다리를 절단해야 할지, 보존해야 할지” 물었다. 로즈는 지난해 3월과 올해 5월 두 차례 가자지구를 찾았다. 그는 최근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의 화상이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환자들이 훨씬 많아졌다고 전했다.

로즈는 자신이 진료한 환자의 60%가 15세 미만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가장 어린 환자는 3개월 아기였고 폭발로 복부와 다리에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지난 5월 세 살 하템의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리기도 했는데, 전신 35%에 화상을 입은 하템은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하템은 다행히 이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로 이송돼 안전하게 치료를 받고 있다.

로즈는 가자지구의 열악한 위생 상태와 만연한 영양실조 때문에 환자들의 생존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영양실조로 환자들의 상처 회복력과 면역력이 떨어진 데 더해 항생제마저 부족한 상황에서 환자들의 감염을 막을 수도, 치료할 수도 없다고 그는 전했다. 이스라엘이 12주간 가자지구를 전면 봉쇄하면서 가자지구 230만 주민 전체가 기근 위기에 처했다.


가디언도 가자지구 의료진을 통해 현지 참상을 전했다. 모하메드 사크르 나세르 병원 간호부장은 최근 몇주간 발생한 대량 사상자를 직접 목격했다며 “‘심판의 날’의 공포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95%가 GHF 식량 배급소 인근에서 다친 이들이었다며 “대부분 가슴과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 환자들은 다리와 팔이 잘린 채로 병원에 온다”고 말했다.

가자지구 병원들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 필수적인 진통제, 항생제, 마취제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에 더해 연료 부족도 병원의 정상적 운영을 방해한다. 가자 남부 알아흐리 병원의 파델 나임 원장은 이날 엑스에 4명의 신생아가 하나의 인큐베이터에 들어가 있는 사진을 게시했다.

그는 “지금 가자지구 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참담하다. 신생아 집중치료실 부족으로 신생아 4명이 인큐베이터 하나에 함께 들어가 있다”며 “비극적인 과밀 상황은 단지 장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끊임없는 전쟁과 가자지구를 옥죄는 봉쇄가 의료체계를 무너뜨린 직접적 결과다”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북부 알시파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모하마드 아부 실미야는 “향후 수시간 안에 병원에 연료가 공급되지 않으면 3시간 이내에 운영이 중단될 것”이라며 “인큐베이터에 있는 22명의 신생아를 포함해 환자 수백명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CNN에 말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지난 5월27일 GHF 배급소가 문을 연 이후 이곳에서 식량을 구하려던 가자지구 주민 700명 이상이 사망하고 50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자지구에서 5만70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이 중 절반가량이 여성과 어린이로 알려졌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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