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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도 선풍기 끄는 노인들… 재난도우미가 직접 챙긴다

머니투데이 김미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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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도 선풍기 끄는 노인들… 재난도우미가 직접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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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구 '재난도우미' 김순복씨(67·여)가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치솟은 10일 낮 동네 주민 김모씨(80·남) 집을 찾았다. /사진=김미루 기자.

서울 송파구 '재난도우미' 김순복씨(67·여)가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치솟은 10일 낮 동네 주민 김모씨(80·남) 집을 찾았다. /사진=김미루 기자.



10일 낮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한 골목. 송파구 '재난도우미' 김순복씨(67·여)의 콧잔등에 땀이 맺혔다. 낮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치솟은 이날 순복씨는 동네 주민 김모씨(80·남) 집을 찾았다. 파란 페인트칠이 벗겨진 대문을 지나 폭이 좁은 길을 걸어가니 김씨 집이 나왔다. 약 33㎡(10평)이 채 안 되는 집에 김씨는 11년 전부터 홀로 살고 있다.

김씨가 사는 집은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총 3층인 연립주택의 1층이라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진 않았지만 옆집과 좁은 간격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 창문을 열어도 소용이 없었다. 낡은 선풍기 하나가 김씨 집의 유일한 여름 가전인데 이날도 틀지 않았다. 전기요금이 많이 나올까 봐서다. 김씨는 한낮엔 방, 화장실, 주방 불을 끄고 지낸다.

순복씨는 집에 들어서며 김씨의 끼니부터 챙겼다. "식사는 잘 하고 계시냐"며 냉장고 문을 여니 밥 반찬이 마땅치 않았다. 따뜻한 잔소리가 시작됐다. 하루 한끼라도 먹는 게 황송하다는 김씨의 너스레에도 순복씨는 김씨 손을 잡고 "세끼는 꼬박 드셔야 한다"며 "복지 서비스인 반찬을 신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10일 김씨가 집 천장 조명을 모두 꺼 어두컴컴한 모습. 유일한 냉방가전인 선풍기도 전기요금이 걱정돼 틀지 않는다. /사진=김미루 기자.

10일 김씨가 집 천장 조명을 모두 꺼 어두컴컴한 모습. 유일한 냉방가전인 선풍기도 전기요금이 걱정돼 틀지 않는다. /사진=김미루 기자.



재난도우미는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김씨의 거의 유일한 말벗이다. 그는 젊은 시절 신림동에서 여성 의류 공장을 운영하며 아내, 딸과 함께 살았다. IMF 위기가 찾아오자 공장 영업을 중단했다. 이후 중국으로 가 다시 사업을 꾸리며 가족들과 따로 살았다. 지금도 서류상으로는 혼인 상태지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사람을 만나는 게 쑥스럽고 부끄러워 에어컨이 있는 경로당이나 무더위쉼터를 찾지 않는다.

재난도우미는 더위, 질병, 결식 등 여러 위협에 도움을 준다. 이날도 김씨가 "인터넷에서 에어컨을 5만원에 판다는데 카드번호를 입력 못하고 있다"고 하자 순복씨를 비롯해 주민센터 관계자들이 사기 광고임을 알아채고 피해를 막았다. 김씨는 고마운 마음에 허리를 숙이며 여러 차례 인사했다.

서울 내 노인인구가 가장 많은 송파구는 통장, 방문간호사 등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재난도우미 1100명을 통해 약 3000가구의 어르신들 안부를 살피고 있다. 특히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재난도우미들도 바빠진다. 음식이 상하거나 더위에 건강이 나빠질 수 있어서다. 실제 지난달 30일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이후 이날까지 구청 어르신복지과에서 알림 문자를 보냈고 재난도우미들이 현장으로 찾아가 살피고 있다.


지난해 마천동 20통장이 된 이남덕씨(67·여)도 재난도우미로 활동한다. 남덕씨가 동네 어르신 이모씨(85·여) 집을 찾아 안부를 묻는 모습. /사진=김미루 기자.

지난해 마천동 20통장이 된 이남덕씨(67·여)도 재난도우미로 활동한다. 남덕씨가 동네 어르신 이모씨(85·여) 집을 찾아 안부를 묻는 모습. /사진=김미루 기자.



지난해 마천동 20통장이 된 이남덕씨(67·여)도 재난도우미로 활동한다. 남덕씨는 맡은 지역에서 어르신 8명의 안부를 관리한다. 그는 이날 오후 이마와 콧등에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며 이모씨(85·여) 집을 찾았다. 남덕씨가 딸보다 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씨는 "항상 엄마 보러 오는 것처럼 와서 항상 고맙다. 남인데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라고 했다.

남덕씨는 이씨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뜰하게 살핀 뒤 집을 나섰다. 그는 "더 못해드려서 마음이 항상 아쉬운데, 어떻게 자식만 하겠나"라며 "어르신들을 만나 하소연을 잘 들어주고 복지서비스와 연결할 수 있는지 주민센터에 물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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