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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정 간섭 지렛대 된 관세… 트럼프, 브라질에 '50%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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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정 간섭 지렛대 된 관세… 트럼프, 브라질에 '50%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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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 적자국인데도 10%서 대폭 상향
대선 불복 재판 前 대통령 구명 시도
‘反美’ 브릭스 견제 심산도 반영된 듯


2019년 3월 19일 집권 1기 당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브라질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이 열린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악수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9년 3월 19일 집권 1기 당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자이르 보우소나루 당시 브라질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이 열린 워싱턴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악수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자료사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교역 상대국 내정 간섭용 지렛대로 활용하고 나섰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 브라질을 상대로 오히려 50% 고율 상호관세 폭탄을 투하하면서다. 대선 불복 쿠데타 모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극우 성향 전 대통령 대상 구명 의도를 관세 통보 서한에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마녀사냥 동병상련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브라질 등 8개국 대상 관세 서한을 추가 공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7일 한국과 일본 등 14개국에 발송한 관세 서한을 소개했다. 부과 시점은 ‘8월 1일부터’로 같았다.

공표된 세율은 △필리핀 20% △브루나이·몰도바 각 25% △알제리·이라크·리비아·스리랑카 각 30% △브라질 50% 등 5의 배수로 깔끔하게 정리된 모양새다. 4월 책정된 기존 세율은 수입액 대비 적자 규모를 나라마다 일일이 반영하느라 어수선했다.

가장 눈에 띄는 나라는 브라질이다. 세율이 당초 10%에서 40%포인트 대폭 상향됐다. 서한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에게 미국 기업들의 디지털 교역에 대한 브라질의 불공정 무역 관행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브라질-미국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미국은 올 1분기 대(對)브라질 교역에서 6억5,000만 달러(약 9,000억 원) 흑자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50%라는 관세 폭탄을 떨어뜨린 것은 내정 간섭을 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수신인으로 지정된 서한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재판에 대해 “이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즉시 끝나야 할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했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성향의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2022년 대선에서 룰라 현 대통령에게 패한 뒤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며 국방·법무부 장관 등과 함께 일종의 불법 정변을 기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7일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기자회견을 히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EPA 연합뉴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7일 브릭스(BRICS) 정상회의가 열린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기자회견을 히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EPA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소송에 휘말린 해외 우파 정치인을 지지한 게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 극우 정당 소속 마린 르펜 의원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송사에도 마녀사냥이라며 참견했다. 그러나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다 재판에 넘겨진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겐 특히 동병상련을 느낀 듯하다. 7일 트루스소셜에 “내게도 10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고 썼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얼마나 다목적으로 이용하는지 보여 주는 예외적인 사례”라고 짚었다. 그가 취임 초 미국 내 마약류 펜타닐 유입 단속 비협조를 이유로 멕시코와 캐나다, 중국에 관세를 때릴 때와 비슷한 사용법이기도 하다.

룰라 "우리는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


이날 대브라질 상호관세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이끄는 비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를 견제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심산이 반영됐을 수도 있다. 그는 7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브릭스의 반미(反美) 정책에 동조하는 나라에는 10%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경고했다. 자신의 관세 정책과 이란 핵시설 폭격을 비판한 전날 브릭스 정상회의 공동 성명에 반발한 것이었다.

룰라 대통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일 브릭스 회의 취재진에게 “세상이 변했다. 우리는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날 관세 부과에도 곧바로 반응했다. 그는 긴급 내각 회의 주재 뒤 엑스(X)를 통해 양국 간 무역이 미국에 불공정하다는 비난은 거짓이라고 지적하며 미국이 대브라질 무역 흑자국임을 환기시켰다. 또 “일방적인 관세 인상은 브라질의 경제 상호주의 법을 고려해 처리할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 가운데 협상이 진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유럽연합(EU)과 인도로 발송되는 서한은 9일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예고한 대로 이날 트루스소셜을 통해 “8월 1일부터 구리에 50%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
박지영 기자 jypark@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