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시프트] 풍력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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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막아도 구글이 산다…TSMC 위해 해상풍력 늘리는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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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해상풍력 설치용량 추이/그래픽=김현정 |
"TSMC와 같은 반도체 기업에게 녹색 에너지 확보는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성공의 관건입니다. 대만 정부 역시 이들 기업에 충분한 녹색 전기를 공급해야 합니다."
대만 에너지 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 에너지국의 천중현 국장은 지난 3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대만 대기업들은 다른 재생에너지 보다 안정적 전력을 제공하는 해상풍력 확대를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만은 이미 총 3.5기가와트(GW)의 전력을 만들 수 있는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가동 중이다. 2016년까지 '제로'던 자국 해상풍력을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키웠다. 현재 설치용량 기준 전세계 5위다.
정책 초창기 해상풍력 발전단가를 낮추는 데 방점을 뒀다면 3단계(2026~2035년)는 시장 조성에 초점을 둔다. 민간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해상풍력 전력을 사고 파는 거래가 일어나도록 제도를 뒷받침 한다는 의미다. 국책금융사를 통한 프로젝트 금융지원 등의 방식으로다. 최근 2년간 전세계 풍력업계를 덮친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은 대만에도 감속을 초래했으나, 정책 지원과 수요는 지난해 대만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규 해상풍력 설치(1.8GW)를 달성하게 했다.
구글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처음 체결한 해상풍력 CPPA(기업전력구매계약)가 대만에서 이뤄졌다는 점 역시 대만이 아태지역에서 해상풍력으로 다진 입지를 보여준다. 구글은 덴마크 투자운용사 코펜하겐인프라스트럭처파트너스(CIP)가 대만에서 개발해 2027년 준공 예정인 495MW 규모 펭미아오 단지 전력을 구매하는 계약을 올해 맺었다. 구글 외에 미디어텍, UMC, 원동통신, 타이완모바일 등 대만 반도체, 통신사들도 같은 발전단지의 전력을 사는 계약을 체결했다.
마리나 슈 CIP 대만 대표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대만에서 강력한 반도체 산업은 물론 통신산업, 심지어 석유화학, 시멘트, 철강 등 전통산업들도 탄소 배출 감축 필요를 강력하게 느끼기 때문에 이로 인한 재생에너지 수요가 확고하다"며 "유럽과 대만에서 부과될 탄소비용을 감안하면 전력을 매우 많이 쓰는 반도체, 통신사에게 재생에너지 확보가 필수적"이라 했다.
2024년 국가별 해상풍력 신규 설치량/그래픽=윤선정 |
특히 제조업 기반 수출 중심 경제를 보유한 대만에서 재생에너지의 수요가 뚜렷한 배경은 최근 기업들에게 재생에너지를 쓰도록 하는 가장 큰 압력이 고객사 요구여서서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같은 규제는 특정 업종에 적용되지만 애플, 구글 등 미국 테크기업들과 유럽 완성차 기업 등이 협력사들에게 가하는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는 전방위적이다.
애플을 주고객으로 둔 대만 TSMC가 2040년까지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달성하겠다고 공표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TSMC는 대만에서 920MW 규모의 해상풍력 전력을 20년간 공급받는 PPA를 이미 2020년 체결했고, 이후 재생에너지 조달 계획을 업데이트 하고 있다. 대만 안에서 재생에너지 공급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계획이다. 천 국장은 "우리는 2025년, 2030년 등 연도별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를 설정해 뒀고 이를 반드시 달성할 것"이라 덧붙였다.
대만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보가 투자를 불러오는 선순환도 만들어 지고 있다. 미국 빅테크들이 대만에 데이터센터를 짓겠다는 발표를 연달아 하고 있는데,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수인 안정적인 청정에너지원 확보가 대만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예측 가능해서다. 천 국장은 "데이터센터들이 대만에 투자하고 싶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만이 강력한 녹색 에너지, 특히 해상풍력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풍부한 청정전력 제공과 동시에 전력망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 등을 활용한 다양한 해법을 추진할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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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료한 정책이 핵심…해상풍력 '제로'에서 세계 5위 된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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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중현 대만 경제부 에너지국 국장이 7월3일 부산 벡스코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하는 모습/사진=권다희 기자 |
대만이 2010년대 중반까지 전무했던 해상풍력 발전규모를 약 8년만에 세계 5위로 성장시킬수 있었던 배경에는 '명료한 정책'이 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단계별로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지원과 규제를 병행하면서 공표한 수치만큼 공급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한 정책 방향이 시장의 신뢰로 이어지며 해외 투자 유입과 실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는 것.
천중현 대만 경제부 에너지국 국장은 부산에서 열린 해상풍력 공급망 컨퍼런스 전시회 참석차 한국을 찾아 지난 3일 머니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만에서도 해상풍력 개발 초기에는 어업과의 갈등이 있었다"며 "당시 아시아에는 해상풍력에 대한 충분한 경험이 없었고 어민들이 해상풍력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2016년 에너지청 주도로 어업협회와 해상풍력 선도국인 영국으로 대표단을 파견해 어업과의 갈등 해결방법 등을 배웠다"고 전했다.
해상풍력 확대 초기 대만 정부는 주민수용성을 정부 주도로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에너지청이 어업을 담당하는 수산청과 협업 체계를 마련해 정보 공유와 논의를 했다.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어업계와 소통하고 보상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대만 정부는 해상풍력 단기 개발에 따른 어민 보상액을 도출하는 공식을 갖고 있다. 이 공식을 기반으로 실제 피해를 입는 어민들에게 시공 초기 1~2년 간 보상금을 지급한다. 개발사들이 개별적으로 주민들과 접촉해 보상 문제를 해결하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아울러 에너지국은 생태계 보호, 어업, 안보 측면 등을 고려해 해상풍력이 가능한 지역을 구분해 입지 정보를 제공해 왔다. 천 국장은 "규제를 투명하게 운영해 개발사들에게 명확한 기준에 따라 인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또 그는 "정부 다른 부처들은 해상풍력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청이 다른 부처들과 조율을 위한 협의 플랫폼을 운영한다"고 했다.
풍력발전 국가별 설치용량/그래픽=김현정 |
대만 정부는 해상풍력을 2035년까지 3단계에 걸쳐 확대한다. 1단계는 시범 단계다. 유럽과 달리 태풍과 지진이 많은 대만의 자연환경에 맞는 해상풍력단지를 건설한 기간이다. 2017년 2개의 시범 터빈을 세웠고, 2021년 두 곳의 100MW대 해상풍력 단지를 완공했다. 2단계는 정부가 발전차액지원제도(FIT)로 해상풍력 용량을 늘리고 경쟁입찰도 본격화했다. 지난달 기준 100MW 이상 7개 단지, 총 3.5GW의 해상풍력 단지가 운영 중이다. 3단계(2026~2035년)에는 두 단계로 나눠 15GW를 추가로 건설한다. 2035년 18.4GW 달성이 목표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사업비가 뛰며 이미 낙찰된 프로젝트들이 최종투자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천 국장은 "정부는 해상풍력 발전단가가 높아질 수 있다는 현실을 고려해 국영 은행의 금융지원과 공기업의 전력 구매 등으로 낙찰된 사업이 기업 전력구매계약(CPPA)을 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민간사업자들의 송전망연계 비용과 항만이용료 부담 등을 낮추기 위한 방법도 검토 중이라 한다. 그는 "터빈 가격 등 민간의 영역에는 정부 개입이 어렵지만, 공공부문의 비용 부담과 인허가, 요금체계 등의 측면에서 최대한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부분의 개발사들이 올해 말까지 금융 종결을 마무리할 계획이고, 2027~2028년께 상업운전 시작이 가능할 것"이라 했다.
이미 태동 단계를 지난 대만 해상풍력의 최대 과제는 해양공간 확보다. 천 국장은 같은 날 열린 컨퍼런스에서 2050년까지의 해상풍력 목표량인 40~55GW를 달성하기 위해 이해관계자들과 협의해 더 많은 입지 확보를 하는 게 현재의 가장 큰 과제라 짚었다. 아울러 그는 금융을 확보하는 일과 함께 "많은 개발사들이 희망대로 대만 정부는 앞으로 규제완화로 사업의 위험을 낮출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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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손잡고 '토종' 기업 키웠다…대만 해상풍력 공급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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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WE 발주로 만들어진 해상풍력 설치선 '그린제이드'/사진제공=CDWE |
"아시아에서는 해상풍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다 위에 거대한 기계가 세워진 정도로만 인식했죠. 해양 엔지니어링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단기간 내 역량을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했기에 국제적으로 뛰어난 파트너를 찾았고, 그 결과로 CDWE가 탄생했습니다. CDWE가 없었다면 대만의 해상풍력 개발이 지금처럼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대만 해상풍력 EPCI(설계, 조달, 건설, 설치) 기업 CDWE(CSBC-DEME Wind Engineering)의 로버트 정 회장은 타이베이 본사에서 진행한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2019년 만들어진 회사의 설립 배경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CDWE는 대만 조선사 CSBC와 벨기에 해양 엔지니어링 기업 DEME의 합작사다. 대만 정부가 해상풍력발전 확대를 본격화하며 주력했던 공급망 자립 지원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바다에 수백 메가와트 규모 해상풍력단지를 짓는 건 육상 건설과 다른 영역이다. 단시간 내 자체적 역량을 키우려면 해상풍력 경험이 풍부한 유럽 기업과 손잡는 게 최선책이란 게 CSBC의 판단이었다. 합작사 설립 후 300MW 규모 중닝해상풍력 단지에 운송·설치(T&I) 공정을 책임지며 트랙레코드를 쌓았다. 정 회장은 "대만 최초로 대만 계약자가 T&I 전 과정을 맡아 수행한 사례"라 했다.
'토종' 해양엔지니어링 기업을 키우는 건 국가차원의 해상풍력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핵심이다. 스티븐 린 CDWE 부사장은 같은 인터뷰에서 "해상풍력단지를 지을 때 가장 큰 비용은 일정 지연"이라며 "외국 업체에 전적으로 의존하면 일정을 통제하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고유한 자연환경에서 해상풍력 단지를 건설해 보는 경험도 필요하다. 대만은 해상풍력에 강점인 '센 바람'을 갖고 있지만 대신 태풍과 지진 등 난점이 있다. 유럽의 엔지니어링 기업에겐 낯선 환경이다. 린 부사장은 "태풍을 겪은 중닝 프로젝트를 매끄럽게 마무리하며 대만이 자체적 EPCI 역량을 보유했다는 걸 증명했다"고 했다.
CDWE의 로버트 정 회장(사진 왼쪽)과 스티븐 린 부사장/사진=권다희 기자 |
조선사를 모회사로 둔 이점도 살렸다. 대만 최초의 해상풍력 설치 전용 선박 '그린제이드'를 CDWE가 CSBC에 발주해 2023년 만들었다. 216 미터 길이, 4000톤을 들어올릴 수 있는 대형 설치선으로 중닝에 이어 1GW 규모 하이롱 해상풍력 단지 건설에 투입됐다. 해상풍력단지를 정해진 기한 내 완료하기 위해 핵심인 설치선 확보를 기존의 제조업 기반과의 시너지로 풀었다.
린 부사장은 대만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내 해상풍력을 확대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고 그 다음으로는 탄탄한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이라 했다. 특히 대만 내 해상풍력단지가 형성되면서 공급망 성장이 함께 갈 수 있었다고 했다. 린 부사장은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게 금융조달 가능성(bankability)이고, 조달 가능성을 높이는 게 실제 성과"라며 '안방'에서 트랙레코드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더 큰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몇년간 전세계 해상풍력 시장에 타격을 입힌 인플레이션과 공급망 병목의 영향은 규모 확대에서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거라 봤다. 정 회장은 "프로젝트당 설비 용량을 더 키우는 게 개발자는 물론이고 EPCI 계약자 입장에서 장점"이라며 "1GW급 대형 프로젝트가 계획되면 선박 배치, 장비 운용 등 전체 작업을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대만 역시 현재는 공급망 부족과 인플레이션으로 비용이 다소 높아졌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정될 것"이라며 "앞으로 프로젝트의 대형화가 해상풍력 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핵심이 될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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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부산=권다희 기자 dawn2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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