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사육곰 구출, 정책 실패 책임을 시민에 떠넘기나 [왜냐면]

한겨레
원문보기

사육곰 구출, 정책 실패 책임을 시민에 떠넘기나 [왜냐면]

속보
뉴욕증시, 약세 출발…나스닥 0.07%↓
2022년 강원 동해시의 한 사육곰 농가의 곰이 철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2022년 강원 동해시의 한 사육곰 농가의 곰이 철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다솜 |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올해 말, 웅담 채취용 사육곰 산업이 40여년 역사를 뒤로하고 막을 내린다. 이 산업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해볼 수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방식은 ‘국가에서 사육 허가한 곰을 시민이 구출하는 방식’이다. 산업의 시작은 정부였지만 끝맺음은 시민의 손에 맡겨지고 있다.



사육곰 산업의 종식을 위해 시민단체·농가와 협약을 맺는 과정에서 환경부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호를 위한 변화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반달가슴곰은 정부가 사육을 허가했던 처음 그 시점에도 이미 국제적 멸종위기종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보호해야 할 야생동물이 아닌 적이 없었으며, 정부는 처음부터 멸종위기에 놓인 야생생물의 거래를 허락한 것이다. 이 정책은 실패한 정책이다. 그리고 이 실패의 결과로, 지금도 전국에서 260여마리의 사육곰이 철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철창 속은 비좁고 열악하다. 몸과 마음이 아프고 배도 고프다. 그 시간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는 이들은 사육 허가를 기반으로 길러진, ‘합법적 감금 상태’에 놓인 멸종위기 동물이다.



이 잘못된 국가 정책을 바로 잡는 일을 시민이 해왔다. 철창 속에서 더 이상 사육곰이 태어나지 않게 하는 일, 사육곰을 구출하여 죽지 않아도 되는 삶을 선물하는 일, 그리고 야생생물법 개정을 이끌어내어 산업을 끝내는 일 모두 시민이 했다. 그리고 지금, 산업의 마지막 단계에서도 구출 활동은 시민의 손에 맡겨져 있다. 산업 종식을 결정했지만, 정부가 한 것은 119마리의 사육곰이 들어갈 수 있는 시설 마련뿐, 구출에는 선을 그었다. 정부는 명확한 로드맵을 내놓지 않았다. 산업 종식 시기에 맞춰 농가가 ‘알아서’ 사육곰을 정리하든지, 시민단체가 후원금을 모아 구출하든지, 보호소에 들어갈 수 없는 나머지 곰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곰을 매도하지 않은 농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외주화하는 것이다.



사육곰 문제 해결 방식이 오직 ‘구출'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결국 눈앞의 고통만 덜어주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왜 그런 철창이 존재하게 되었고, 또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면 구조의 반복은 끝나지 않는다.



이 구조는 사육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식물과 동물에 대한 정부의 재배, 사육 허가는 늘 존재해왔다. 애완 목적, 산업 목적, 관광 목적 등 수많은 명분으로 들여온 생물들이 유기된 뒤 생태계를 교란하고, 결국 그 책임은 국민의 세금이나 시민의 후원으로 뒷수습한다. 사육곰 문제의 이면에 자리 잡은 ‘허가→방치→민간 책임’ 구조는 사육곰뿐 아니라 수많은 야생동식물을 대상으로 반복하고 있다. 이 정책 실패의 외주화 고리를 끊지 않는 한, 또 다른 사육곰 문제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정부 정책을 국민이 떠안아 해결하는 것을 우리는 반복해서 보았다. 실패한 정책의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 시민이 기금을 마련하여 곰을 구출하는 것은 철창 속 고통받는 사육곰이 있다는 ‘현상의 해소’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 철창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육곰을 구출하는 일은 생명을 향한 시민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가능하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 해결은 정부가 정책을 바로 잡고, 앞으로 이러한 철창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제도를 고치는 것이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