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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쓸 데 없는 기초 연구가 세상을 바꾼다

조선비즈 오지원 연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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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쓸 데 없는 기초 연구가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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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원 연세대 의대 교수

오지원 연세대 의대 교수



“그래서 첫 분열 결과 나오는 두 개의 딸세포의 기여 비율이 다르다는 사실이 어디에 쓰이죠?”

2019년 의과대학에서 한 발표에서 받았던 질문이다. 과학을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특히 의과대학 발표장에서는 신기함보다 실용성이 먼저다. 연구비 평가서에는 ‘응용 가능성 부족’이라는 말이 날카롭게 적히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수많은 기술과 개념은, 한때는 쓸모없어 보였던 기초 연구에서 출발했다.

1895년 독일 물리학자 뢴트겐은 정체불명의 이상한 빛을 관찰하다가 손 뼈를 찍었다. 그것이 X선의 시작이었다. 1983년 예쁜꼬마선충의 모든 세포를 하나하나 추적한 연구는 세포자멸사 개념을 낳았고, 이는 오늘날 암 치료의 핵심 원리가 되었다.

2007년 박테리아가 자신을 공격한 바이러스를 기억하는 능력을 탐구한 연구는 효소 복합체인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로 이어졌다. 과학자들은 이 효소 가위로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편집해 난치병을 치료하는 유전자 치료제를 만들고, 병충해에 강하고 몸에 좋은 성분까지 만드는 농작물을 만들었다.

위대한 발견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실용성보다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산업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탐구였고, 그 탐구심이 상상도 못한 혁신으로 이어졌다. 19세기부터 21세기까지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노벨상 수상이란 결승선에 들어왔지만, 나중에 인류에 끼친 파급력을 생각하면 노벨상은 예선전에 불과했다.


이와 달리 처음부터 실용성을 앞세운 연구는 역설적으로 그 목적에 갇힐 수 있다. 응용이 명확한 만큼 한계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반면, 호기심에서 시작된 연구는 처음엔 쓸모없어 보일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면 어디든 조립 가능한 레고 블록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자리 잡는다.

내가 연구하는 체세포 모자이크(somatic mosaicism)도 마찬가지다. 한 개체에 유전적으로 다른 세포들이 함께 존재하는 현상인데 연구의 시작은 단순했다. “왜 한 사람의 세포 DNA가 시간이 지나며 달라질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이 현상이 암, 노화, 면역 질환의 시작점이라는 것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놀랍게도 가장 순수한 지적 행위인 과학과 자본주의의 첨병인 벤처 투자가 이 점에서 놀랍도록 닮았다. 투자는 열 번 중 아홉 번의 실패를 감수하고 단 하나의 성공이 모든 손실을 만회한다.


과학은 미래의 성공이 눈에 잘 보이지 않기에, 연구비가 깎이는 일은 다반사다. 기초과학은 그런 면에서 더 큰 불확실성을 안고 있지만, 그만큼 예기치 못한 세상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각자의 연구실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을 붙잡고 고군분투하는 모든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호기심은 언제나 쓸모를 앞선다.

오지원 연세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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