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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과 ‘진실’의 성폭력 다큐멘터리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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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과 ‘진실’의 성폭력 다큐멘터리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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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블랙박스 다이어리’ 포스터.

다큐멘터리 ‘블랙박스 다이어리’ 포스터.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지지난 주말, 18회 여성인권영화제에서 ‘블랙박스 다이어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주인공은 2015년 취업 면담을 하러 갔다가 일본 티비에스(TBS) 워싱턴 지국장에게 준강간을 당했다. 나도 2017년에 들어 알던 일본의 대표적인 #미투, 이토 시오리 사건이다. 피해자는 기자이기도 해서, 자기 사건을 취재하고 탐문한다. 담당 경찰은 처음엔 아리송한 이유를 대며 수사할 수 없다고 하다가 겨우 의지를 보여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는데, 잠복 중 윗선에 가로막힌다. 가해자인 야마구치 노리유키 지국장은 평소부터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자신의 절친이라고 과시했는데, ‘총리’라는 책을 출판한다. 책이 나오고 준강간 사건은 곧 불송치 결정. 주인공은 2017년 이러한 성폭력 은폐 과정을 공론화하고, 재수사를 요청한다. 책을 쓰고,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다. 소송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라운 것은 기자가 된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모든 장면과 상황을 ‘영상’으로 담았다는 것이다. 이 다큐가 너무나도 ‘웰메이드’인 이유는 우리가 아주 익숙하게 보던 성폭력 사건 규명과 관련해 전형적인 폄훼와 방해를 질문으로 품고 시작했다는 점이다. 공감은 세계적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나아가 다큐가 박진감이 넘치는 이유는 피해자를 폄훼하고 성폭력을 부정하는 현장에 카메라를 들고 찾아갔다는 것이다. 또 여운이 깊은 이유는 오랜 시간 피해자가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지, 연기도 연출도 없이 영상으로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토 시오리는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꺼내 놓는 진실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녹음하고 기록한다. 이 녹취와 폐회로텔레비전(CCTV) 장면은 이 다큐에서 중요한 ‘입증’을 담당한다. 폐회로텔레비전 화면엔 가해자가 만취한 피해자를 택시에서 끌어내리려다 잘 안되자 차 안에 다시 깊숙이 들어가 피해자 신체를 끌고 나와서 가는 장면이 길게 나온다. 중요한 녹취 중 자기 말이 동의 없이 녹음되었다고 반대하는 사람들로 인해 ‘블랙박스 다이어리’는 일본 상영이 막혔다고 한다. 이토 시오리는 이는 ‘공익’을 위해서이며, 자신이 자랑스럽지 않은 장면도 등장하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감독으로서 피해자의 강인했던 순간도, 무너져 내렸던 순간도 다큐에 기록했다. 이 작품은 올해 오스카상 장편 다큐 후보로 오르고, 피보디상을 받았다. ‘객관’은 당사자가 말하느냐 제3자가 말하느냐가 아니라 가장 적확한 질문을 뽑고, 정확한 현장에 찾아가고 답변을 모아 큰 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재구축되며, ‘진실’은 사건을 통해 파괴하거나 보호하게 된 것이 무엇인지 질문할 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새기게 된다. 피해자이자, 기자이자, 감독으로서 이토 시오리가 재구축한 객관과 진실 덕분이다.



고위층에 의한 성폭력을 다룬 또 다른 다큐가 있다. 바로 ‘박원순다큐멘터리제작위원회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이 만든 ‘첫 변론’이다. 이와 관련해 피해자는 2023년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과 손해배상 소송을 냈고, 지난 3일 1심 법원은 1천만원 배상명령과 상영금지, 상영금지를 어길 경우 1회당 2천만원 부과를 선고했다. 제작사는 ‘첫 변론’ 포스터에서 “박원순 다큐멘터리: 세상을 변호했던 사람. 하지만 그는 떠났고,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를 변호하려 한다”고 썼고, “팩트 체크”라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 다큐가 합리적인 질문이나 의견 표명을 한 정도가 아니라고 보았다. “(성희롱 피해 진술이나 증거 등이) 진실된 사실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결국 상영금지의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 절차 및 관련 행정소송 절차에서 충분한 심리를 거쳐 (성희롱이) 여러차례 인정되었”음에도, 피해자가 이를 허위로 제기한 것처럼 다큐를 만든 것은 인권침해이기 때문이다.



애도와 추모는 중요하지만, 상실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해야 다큐다. 객관과 진실은 좋은 질문이 있을 때 가능하다. “미투는 가짜 아니냐?” “여성운동이 편향 아니냐?”는 질문은 답이 정해진 이들을 만드는 닫힌 권력행위일 뿐이다. “성폭력을 저지른 권력자는 왜 피해자의 신뢰를 추락시키는 데 더 큰 권력을 사용하는가?” 이것이 나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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